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그대를 사랑합니다'

누구에게나 사랑할 시간은 남아있다.

  • 웹출고시간2011.08.07 18:01:0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황혼의 사랑

가을날의 석양은 여느 계절보다 아름답다. 여름의 정염이 가시어진 자리에 삽상한 바람이 일렁이며 대기는 참으로 고운 색조의 노을을 만들어낸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고난 느낌은 가슴 저미게 스러지는, 아름다운 가을의 황혼을 접하고 난 느낌이었다.

그간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을 중심인물로 놓는 영화는 가족간의 관계를 주로 강조하는 것이었다. 특히 자녀와 갈등을 겪던 부모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헨리 폰다 주연의 미국 영화 '황금연못'이 그렇고, 우리나라의 가족영화들 또한 노인과 자녀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노인을 주체적인 자리에 놓고 그들의 정체성이나 사랑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노인의 성정체성 문제를 다룬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가 2002년 상영되었을 때 사회적 파장이 컸다. 노인을 성적으로 무성화해버리는 보통 사람들의 통념이 얼마나 폭력적인 시선인지를 반성케 하는 영화였다. 노인은 제 3의 성이 아니라 다만 노령기의 여성이고 남성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노인의 성적 경계를 지워버리고 중성화해버리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오해인지를 알려준다. 물론 '죽어도 좋아'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성적인 측면보다는 정서적으로 지순한 사랑의 전형을 그려내고 있다. 노인들도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로서 젊은이들의 사랑과 다를 바 없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강풀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든 이 영화의 완성도는 주연배우들의 힘이 크다. 이순재, 김수미, 윤소정, 송재호, 오달수 등 배우들의 이름만 보고도 연기가 아니라 그대로의 일상을 접하듯 자연스러움이 묻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유일한 존재로 부여받는 사랑의 이름

우유 배달부 김만석 할아버지와 파지 줍는 할머니 송씨가 처음 만난 곳은 언덕받이의 가파른 비탈길에서였다. 더구나 겨울이었다. 만물의 생기가 우주권의 어디론가 잠시 밀려 나가 있는 계절이다. 인생은 그렇게 춥고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가거나 조심조심 내려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두 노인의 처음 만남의 장소가 인생의 여정을 말해주는 것 같다. 다만 할아버지의 성격은 비탈길을 부릉거리며 올라가는 오토바이처럼 거침없이 활달하고, 송씨 할머니는 뒤꿈치에 힘을 주며 내려가는 길처럼 조신하달까.

조심조심 리어카를 끌고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던 송씨 할머니의 이마에 만석할아버지의 오토바이 바퀴에 튀어오른 돌이 날아와 부딪힌다. 사람의 인연에는 묘한 화학적 작용이 있다. 누구나 자신이 애용하는 물건은 그 사람의 신체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할아버지 오토바이에서 튕겨진 돌은 할머니의 몸에 맞으면서 두 사람에게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할머니가 순간 주저앉으면서 할아버지가 안위를 살피게 되고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말투는 퉁명스럽고 거칠지만 속은 한없이 따뜻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우유곽을 모아다 주기도 하고, 처음 만났던 그 비탈길을 오르내릴 때면 자신도 모르게 리어카 끄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염려하곤 한다.


어느 날 드디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데이트를 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글을 몰랐던 할머니는 망설이다가 주차관리인 장군봉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읽어달라 청하고, 저녁 6시 그 비탈길 언덕에서 만나자는 내용임을 알았을 때는 이미 8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씨발, 이거 바람 맞는거 아녀?"

두 시간째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만석할아버지가 이렇게 중얼거리는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만약 점잖고 근엄한 할아버지였다면 이런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안 오길래 복덕방 영감하고 저녁 먹고 오는 길여."

드디어 할머니가 도착하자 얼른 몸을 숨겼다가 그때서야 저녁 먹고 나타난 것처럼 능청을 떠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훈훈한 정감을 자아낸다. 자신의 자존심도 살리고 상대방의 미안함을 어루만지는 마음……. 이런 따뜻함은 송씨 할머니를 진정으로 살아가게 하는 사랑의 힘으로 나타난다. 사랑은 상대방의 존재감과 생명성을 진실로 살아있게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준다.

이름도 주민등록증도 없이 살았던 송할머니는 만석할아버지를 만나 비로소 이름을 부여받는다. 송이뿐……. 동사무소에서 독거노인 혜택을 받도록 해주며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이름을 지어 준다. 이쁘다는 뜻도 들어 있지만 송이, 즉 송씨 할머니뿐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는 멋진 작명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구처럼 송이뿐 할머니는 이제 할아버지에게 유일한 사랑의 존재가 되었다.


자연으로 회귀하는 사랑의 완성

주차관리인 장군봉 노인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도 존재 자체로서 살아있음이 행복한 사랑이다. 다른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아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그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여성으로서의 모습은커녕 대소변도 못 가리는 치매 아내에 대한 지극한 돌봄은 오래되고 진실된 사랑의 모습이 얼마나 숭고한 울림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군봉 노인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암에 걸린 아내와 동반하여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잘 가래이"

무심한 자식들이지만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불러다 놓고 군봉 노인은 작별 인사를 안다. 어두운 골목길을 내려가는 자식들 뒷모습에 나지막히 던지는 이 말은 단순한 헤어짐의 인사가 아니다. 그 어조에는 남은 너희들의 삶을 잘 꾸려가라는 애절한 당부가 담겨 있다.

"잘 자래이"

수면제를 먹인 아내를 눕히며 군봉 노인은 또한 다정히 마지막 인사를 한다. 세상에서의 모든 미련을 갈무리한 편안한 어조였다. 또 다른 세상에서 같이 만나자는 말이다.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잠든 두 사람. 얼마 전 행복전도사 최윤희씨 부부의 순애보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군봉 노인 부부의 죽음을 보며 송할머니는 고향으로 갈 결심을 한다. 평생 가장 행복한 사랑의 기억을 남겨준 만석할아버지의 죽음을 언젠가는 접해야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스페인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가 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에서 "소중한 추억은 영원히 진실한 친구와 같다"라고 했던 것처럼, 할머니는 영영 끝나지 않을 행복의 추억으로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을 간직하며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만석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고향집을 찾아온다. 오토바이는 달리며 하늘로 날아올라 치매할머니가 그렸던 벽그림의 보름달 속을 지난다. 그것은 죽음에 이른 만석할아버지의 환시다. 그때 언뜻 한 시인(장석남)의 사랑 고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 달의 한 자리를 터서
당신의 손을 붙잡고 들어서고 싶었습니다.
두근두근 떠오르는 달입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누구나 두근두근 떠오르는 당신만의 사랑이 느껴질 것이다.

/윤기윤 기자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