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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늑대아이

모든 내 아이는 '늑대아이'

  • 웹출고시간2012.10.07 19:22: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추석, 영화관으로 나들이하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라진 명절 풍습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명절 영화 관람'이다. 추석이나 설 때면 새 옷을 차려 입고 삼촌이나 사촌들과 으레 극장을 가는 것이 하나의 정겨운 행사였다. 어릴 적 우상이었던 이소룡 영화는 명절영화의 단골 메뉴였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하여 이번 추석만큼은 아이들과 영화관을 찾고 싶었다. 온 가족이 보기에 가장 좋을 것 같아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손자가 오니 좋다. 가니 더 좋다"

이는 일본의 속담이라 한다. 아직 손자를 볼 나이는 아니지만 자식을 키워보니 씁쓸한 웃음을 베어 물고 절로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미숙한 생명과 인격체를 돌보는 어려움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부모와 자식은 말 그대로 2.30년의 세대 차이가 난다. 유전자외 모든 사고방식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부모는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으로 인한 깨달음이 최고의 선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자녀는 신세대 문화를 공감하지 못하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면서 결국 모든 '내 아이'는 '늑대아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내 아이라도 어느 때는 말과 행동에 있어 세대 차이 정도가 아니라, 영 새로운 종족을 접하는 기분이 드니 말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늑대인간을 사랑하게 되어 늑대인간 남매를 키우게 된, 당찬 인간 엄마의 육아일지다.

모든 자녀는 '늑대아이'

홀로 열심히 세파를 헤쳐 나가며 고학하는 여대생 '하나'는 어느 날 대학 강의실에서 한 남자의 쓸쓸한 뒷모습에 사로잡힌다. 둘은 점차 서로 가까워지고 그가 늑대인간이라는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그를 사랑하게 된 하나는 자신의 선택과 사랑을 거두어들일 마음이 없다. 일본에서 늑대는 대자연을 주관하는 신적인 존재로 신성시된다고 한다. 따라서 늑대와 연관된 초자연적 전설도 많다고 하는데, 하나의 선택은 그런 일본 전통적 자연관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그'는 이삿짐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하나 또한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알콩달콩 함께 살아나간다. 함박눈이 소담지게 내리는 날 딸아이 유키(눈)가 태어나고, 여름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 아들 하메(비)를 얻게 된다. 그런데 하메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아빠 늑대는 개천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늑대의 본성으로 사냥을 하던 중의 사고사인지, 아이들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그 죽음의 연유는 알 길이 없다.

홀로 남은 하나는 강인한 의지로 남매를 키우며 당차게 살아간다. 늑대의 본성을 가진 아이들은 보통 인간의 아이들보다 몇 배나 집안을 어지르고 끊임없이 먹어대며 엄마를 힘들게 한다. 어느 날 유키가 고열에 시달리자 엄마는 둘을 안고 업고 정신없이 뛰는데, 막상 병원 문 앞에서 소아병원과 동물병원 중 어디로 갈지 난감해 한다. 특히나 난처한 것은 활달한 성격의 유키가 걸핏하면 털 달린 귀와 꼬리를 쫑긋쫑긋 불쑥불쑥 내보인다는 점이다. 하나는 아이들을 위해 깊은 산 속으로의 이사를 결심한다.

위대한 모성에 대한 헌사

대자연속의 생활이라고 해서 마을 사람들과의 연을 단절할 수는 없다. 산 속 외딴 가옥에서의 새로운 삶은 아래 마을 사람들의 친절과 애정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 무뚝뚝하지만 농사짓는 법을 알려주는 할아버지 등 하나는 아이들과 시골 생활에 정착한다.


폐가와 다름없던 집안을 반짝반짝 정리하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열심히 밭을 일구어 농사짓는 하나의 모습은 '어머니는 강하다'는 명제를 새삼 상기시킨다. 하나는 아이들의 정체가 이웃에게 탄로날까 늘 조마조마하지만 언젠가는 그들이 선택하게 될 삶을 존중하리라 마음먹는다.

유키는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정작 학교를 다니고 소녀로 성장해가며 인간 사회에 남게 된다. 반면 내성적이고 연약했던 아메는 오히려 산 속의 늑대 스승을 만나 늑대의 야생적 삶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그 선택에 이르게 되기까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내는 과정은 녹록치 않다. 비록 반인반수(半人半獸)가 아니더라도 인간 또한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성장통을 겪기 마련이다.


따라서 '늑대아이'는 특별한 환타지 영화가 아니며 부모와 자녀의 애증, 아이들의 성장통, 남다른 비밀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아픔, 선택과 이별 등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적 삶이 켜켜이 깊은 층위를 이룬다.

하나는 어머니로서 자식과 생이별해야 하는 아픔을 겪지만, 아들과 딸이 떠난 그 자리에서 또한 변함없이 일상적 삶을 영위한다. 때로 뒷산을 깊이 울리는 아들 하메의 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밭을 일군다.

돌아가신 하나의 아버지는 하나에게 늘 웃으라고 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웃으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담담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하나의 모습은 '어머니'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났다.

아직 못 본 너의 모습 만나볼 수 있기를

배를 어루만지며 항상 바래왔었지.

어떤 표정 짓고 있을까. 어떤 목소리를 갖고 있을까.

어서 오렴 밥이 다 되었단다. 어서 오렴 산책을 나가보자.

울다 눈이 부은 채 무릎을 안고 있구나. 왜 그런 거니 모두 다 말해주렴.

세상은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단다.

두 갈래 길의 한 쪽을 선택하며 저 멀리를 바라보는 눈길

새로운 아침, 새로운 빛, 새로운 바람, 세상은 너를 위해 존재한단다.

네게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걸까

언젠가 네가 떠나게 될 그때는 반드시 웃으며 보내줄게.

조금은 쓸쓸할지 모르겠구나. 부탁한다 건강하게 지내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노래'는 서정적 멜로디와 더불어 가슴 뭉클하다. 이 노래를 끝까지 들은 사람들은 우리 가족 외에 몇 사람이 더 있었을 뿐이다. 부디 영화관에서는 엔딩이 완료될 때까지 성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일본 애니의 환타지는 섬세하고 인간적인 표현력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때로 실물보다 더 감동적인 풍경을 자아낸다는 데 있다. 하나가 아이들과 같이 공원 벤치에 앉아 일몰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나무에 쓸쓸히 번져 나는 석양빛, 도시의 밤에 깃든 집집마다의 불빛들, 다양한 날씨에 따른 섬세한 정경, 숲 속 일본 전통 가옥의 미세한 나뭇결 등 값지고 보배로운 풍경에 절로 찬탄이 새어나온다.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에는 호소다 마모루'라는 말이 있다는데, 정말 그렇다. 이 영화를 만든 이는 '호소다 마모루'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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