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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킹콩을 들다'

스승과 제자의 간극을 파고든 진정성의 힘

  • 웹출고시간2011.02.20 00:00:0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눈물에도 종류가 있다면 영화 '킹콩을 들다'를 보고 흘린 눈물은 농도 100%의 순수한 자연눈물이다. 공해 없는 시골마을의 공기가 그대로 관객의 마음으로 유입되어 다시 마음의 창으로 흘려낸 보석 같은 눈물이다. 한마디로 촌스럽게 눈물을 빼는 영화다. 내가 본 이 영화를 하나의 점으로 응축하자면 바로 공개된 메인 포스터의 모습 그대로 역도 대회에서 우승한 후 역도 코치인 이지봉 선생님(이범수)을 헹가래 치는 순간을 포착해낸 밝고 경쾌한 장면이다. 환희로 가득 찬 역도선생 지봉의 표정과 조안, 전보미 등 순수한 역도 소녀들의 밝게 웃는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뻥 뚫어주고 있다.

정직하고 단순한 운동인 역도의 특징을 그대로 닮은 영화는 내내 우직하게 관객의 앞에 펼쳐진다. 요즈음은 아마추어 동호인들도 어떤 운동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드는 장비가 만만치 않다. 그런 면에서 역도는 아주 경제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운동이다. 단순하게 무거운 바벨을 누가 많이 드느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바벨사이의 그 작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순간포착 운동이다. 마치 찰나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내야 하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봉(이범수)은 88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였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둔 후 우여곡절 끝에 시골여중 역도부 코치로 부임한다. 역도에 대한 불신과 환멸을 느끼고 있던 그에게 찾아온 우연한 인연, 순박한 여섯 소녀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어 간다. 개성도 외모도 제각각인 여섯 소녀들. 낫질로 다져진 튼튼한 어깨와 통짜 허리라는 타고난 신체조건의 영자, 멋진 교회 오빠를 사랑하는 빵순이 현정,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가 FBI가 되겠다는 엉뚱한 모범생 수옥, 아픈 엄마를 위해 역도선수로 성공하고 싶다는 효녀 여순, 힘쓰는 일이 천성인 보영, 섹시한 역도복이 입고 싶어 역도부에 가입한 민희가 그들이다. 영화는 바벨보다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소녀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드러내면서 점차 리얼한 생기와 활력의 옷을 입게 된다.

이 영화는 2000년 전국체전 때 시골 학교 소녀 역사들이 여자 역도 15개 금메달 중 무려 14개의 금메달을 따낸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박건용 감독 '킹콩을 들다'는 영화 '국가대표'와 핸드볼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같은 스포츠 영화면서 실화를 기초했다는 맥락을 같이 한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비인기종목의 서러움과 열악한 환경이 예견되는 스토리를 통해 관객들의 준비된 감동을 꾸밈없이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픽션은 허황되지만, 논픽션은 리얼리티가 주는 삶의 엄중한 무게감이 가미된다. 거기에 신파처럼 설정된 가혹한 핍박과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내는 주인공들의 뜨거운 열정이 더해지면서 관객에게 안기는 감동의 무게는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의 양과 비례한다.


코치는 어린 선수의 얼굴을 세차게 두드리며 정신통일을 주문한다. 선수는 한 오라기의 정신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부릅뜨며 코치와 눈을 맞춘다. 단상에 올라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손과 목덜미에 잔뜩 바른다. 바벨로 다가서며 기합을 크게 외치고, 역기를 어깨에 걸친다. 마지막으로 '저크' 손을 번쩍 들어 역기를 올리는 순간, 그녀는 세상(世上)을 들었다.

혹독한 훈련 뒤, 시합 전날 "내일 너희들이 들어 올려야 할 무게는 너희들이 짊어지고 온 무게들보단 훨씬 가벼울 것이다. 난 너희들을 믿는다."라고 격려하는 지봉코치의 말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녀들이 들어야 할 바벨의 무게와 삶의 무게가 교차한다. 이미 역도의 길을 밟아왔고, 그 세상으로부터 환멸을 느낀 선배 지봉코치는 어린 후배들에게 "외로울 것이다.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그래도 너희들은 누구하나 관심 없는 이것을 선택하겠느냐·"라고 묻는다. 이 물음은 어쩌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니었을까. 무엇인가를 이루내고 싶고, 극복해보려는 자들에게 던지는 출사표(出師表)가 아니던가.


선(善)은 늘 악(惡)을 이긴다는 영화의 지상명제는 '킹콩을 들다'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된다. 악(惡)의 상징인 중앙여고 코치의 부당한 처사에 소녀들이 대항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자신의 가슴에 단 '중앙여고'글자를 뜯어내는 것. 코치에게 죽도록 얻어맞으면서도 돌아가신 선(善)의 상징 '이지봉'선생의 이름을 써넣고 있는 소녀 역사들의 처절한 장면은 오랜 동안 가슴을 울린다.

역도란 운동은 순간적으로 사람과 바벨사이의 틈을 파고드는 운동이다. 영화 '킹콩을 들다'는 어쩌면 오늘날 스승과 제자사이의 간극을 절묘하게 파고들어 무엇이 진정한 사제관계인지 알려주는 영화다. 그런 면에서 킹콩(스승)을 드는 역도 소녀들의 모습은 오늘날 스승을 대하는 학생들의 진정성과 모범답안을 세상에 내어놓은 것이다. 폭력이 없는 진정성만이 서로의 마음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영화 '킹콩을 들다'에 맞는 캐릭터를 위해 주인공 이지봉역의 이범수는 엄청난 인내로 몸무게를 빼고 다시 늘리는 과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88올림픽 모습을 재현할 때는 수개월간 몸짱으로 변신하더니, 순식간에 의욕 상실한 시골학교 역도선생 역을 위해 배불뚝이로 변신했던 그였다. 이 영화가 끝나면서, 이야기 속 실제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엔딩 크라딧은 더욱 관객의 가슴을 먹먹히 파고든다. 영화가 실제 현장과 맞물리면서 오랜 여운의 감동을 각인시킨다.

'2000년 제81회 부산 전국체전에서 여자 중, 고등부 15개중 금메달 14개 은메달 1개를 수상한 이 기록은 대회사상 처음이고 지금까지 깨지 못했다. 일 년 후, 정인영 선생은 49세로 순직했다. 그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역도 금메달 전병관 선수를 발굴한 역도인이었다.'

영화 '킹콩을 들다'는 2009년 개봉한 영화다. 그리고 지난 설날에는 TV에서 재상영하여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영화다. 그런 면에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바로 '킹콩을 들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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