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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관상

내 마음의 움직임이 신의 한 수

  • 웹출고시간2013.12.29 19:20:07
  • 최종수정2013.12.29 19:20:07
현대의 신탁(神託)


"펜대 놀려서 먹고 살 운명이다."

십여 년 전 처가 이모댁에 갔다가 그 집에 와있던 어느 청년에게서 들은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직접 듣게 된 것은 아니고 그로부터 며칠 후 그 청년이 필자의 얼굴을 보고 난 후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은 것이다. 그 청년은 관상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물론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나보다도 어린 사람이 뭐 그런 말을 다할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겼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러한 관상이나 그 흔한 토정비결에도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지만, 사람이나 크게는 국가의 운명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약한 인간이 어떤 신적인 영역에 의지하여 삶을 풀어가고자 하는 심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연원이 매우 깊다. 나라마다 고유의 신화가 있고 서양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인간들은 생의 고비마다 신전을 찾아가 신탁을 받곤 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과 정보 매체에 둘러싸여 사는 현대인들이 점집의 아기동자를 찾아가는 것도, 토정비결을 보는 것도, 저마다 마음 속에 개인의 신전을 세워놓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역사적 서사 속에서 도드라지는 얼굴들


한양에서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소용돌이를 앞두고 있는 일촉즉발의 시간, 농염한 자태의 한 여인이 수하를 앞세우고 외진 바닷가의 오두막을 찾아든다. 몰락한 양반으로 처남 팽헌, 아들 진형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천재 관상가 김내경. 그는 찾아온 한양 기생 연홍의 신분을 한눈에 알아봄으로써 자신의 면모를 과시한다. 처음에는 한양으로 가자는 연홍의 제안이 탐탁치 않았지만 아들 진형이 청운의 꿈을 품고 집을 떠나자 내경도 처남과 함께 한양으로 입성하게 된다.

연홍의 집에서 노예계약처럼 일하다가 내경은 살인사건 용의자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밝혀냄으로써 김종서의 신임을 얻게 된다. 김종서는 내경에게 사헌부에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의 관상을 보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라 이르고, 그 일을 하던 중 내경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과거에 급제한 아들 진형을 만나게 된다. 사실 진형이 집을 떠나 학업에 전념하게 되기까지는 조카 사랑이 유별난 삼촌 팽헌의 남모르는 도움과 지지가 있었다.

뜻하지 않게 궁 안에서 부자가 나랏일을 하게 된 복록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형의 직언이 김종서의 분노를 사게 되고, 이를 빌미로 덫을 친 수양대군측의 교묘한 술수에 팽헌이 걸려든 탓이다. 김종서가 보낸 자객에게 진형이 눈을 잃었다고 오해한 팽헌은 수양을 치려던 거사 전 날, 이 같은 모의를 수양측에 전달한다. 이에 수양은 사전에 김종서를 제거해 버린다.


이 영화는 수양과 김종서의 인물간 대립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김종서로 분한 백윤식과 수양으로 분한 이정재 역시 강렬한 카리스마로 화면을 압도한다. 영화에서 당시 세간에는 백성들이 김종서를 호랑이상(像)으로, 수양을 이리상(像)으로 보았다고 하나, 실제 수양은 호랑이와 용이 혼합된 상이었다고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실제의 역사와 영화 속에서의 서사를 혼동하는 일이다. 영화적 흥미와 완성도를 위해 허구적으로 덧입힌 내용을 실제 역사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조가 된 수양은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즉흥적으로 죽이거나 하지 않았고, 내경에게 '목이 베일 운명'이라는 말을 듣고 평생 마음 감옥에 갇혀 전전긍긍하던 수양의 모사꾼 한명회가 실제로는 관상에 능통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수양은 김종서측 사람이었던 내경을 죽이지는 않으나 아들 진형을 주살함으로써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긴다. 자신의 세 치 혀로 모든 불행을 자초한 팽헌은 자신의 목젖을 제거하려다 목소리를 잃게 된다. 현존하는 국내 제일의 관상가 신기원씨는 관상의 완성은 목소리에 있다고 했는데, 팽헌이 목소리를 잃음으로써 스스로 가장 가혹한 형벌을 받은 셈인 것이다.

다시 바닷가 오두막으로 내려온 내경과 팽헌, 그들의 야심찬 한양 나들이는 아들과 자기 목소리의 상실이라는 극형으로 끝나고 말았다. 내경은 오두막까지 찾아온 한명회 앞에서 자조의 목소리로 뇌까린다.

"파도만 보았지, 그 위를 넘나드는 바람을 보지 못하였다."

실제 관상가 신기원 氏

만화가 허영만의 만화책 '꼴'의 감수자이자 국내 최고의 관상가로 평가받는 신기원씨는 영화 속 김내경이 신안(神眼)이기는 하지만, 아들의 죽음을 미리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영화적 모순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신기원 관상가는 타고난 관상이 사람의 운명을 철저히 결정짓는다는 신념을 지녔고, 이는 성형으로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대의 관상가를 곁에 두고 그 의견을 존중한 삼성가는 노조 없이 무탈한 반면, 관상의 중요성을 등한시한 현대가는 노조 왕국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타고난 복의 기운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고, 그리하여 결국 생긴대로 살게 마련이다."

이러한 관점을 지닌 그는, 사람의 운명은 얼굴에 들어 있고 이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개안(開眼) 정도의 실력이라고 말하는 그는 영화 '관상'의 흥행과 언론 인터뷰 후, 몰려드는 내방객으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보통 예상했던 바와 달리 중장년층의 부인네들이 아니라 실업으로 내몰린 젊은 청년 계층이 주로 신관상가를 찾아 왔다고 하는데, 삶의 연륜이 부족한 젊은이들은 무엇보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서 아주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고충은 찾아온 청년들이 삶의 깊이도 부족하지만, 단순한 어휘를 알아듣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온다. 이를테면 '재복'이란 말의 뜻을 몰라 낱말 풀이까지 일일이 곁들여 주어야 해서, 급기야 한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사람을 만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앞날을 신적인 기운이나 운명에 의지하기 전에 우선 공부부터 성실히 수행하는 근로정신을 가져야 할 일이다.

/ 윤기윤 기자 jaw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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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