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멋진하루'

돈을 좇던 여인, 마음의 행로를 돌게 되다

  • 웹출고시간2011.11.27 18:34:2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반어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 빌려준 옛 애인에게, 돈 받으러 갔다가, 그 돈을 받아내기 위해, 하루를 같이 보낸다는 내용의 영화제목 '멋진 하루'는……. 사실 인간 관계에 돈문제가 접속되면 관계는 건조해지거나 서먹해지거나 틀어지거나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헤어진 연인간의 채무관계에 있어서랴. 그러나 아침부터 시작한 빚 받아내기의 여로는 어둠이 거리에 내렸을 무렵 채권자의 가슴에 작은 등불 하나를 켜놓는다.

정말 '멋진 하루'의 여정을 따라가본다.

◇초겨울의 오전-여자 희수, 돈 350만원 받으러 나타나다

이 영화의 첫 장면처럼 주인공이나 전체 내용과 연관 없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은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의 주시해서 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주인공과 좀 아는 정도의 남녀 두 명이 차를 세워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아는 사람이 부동산으로 돈 3천만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이어 카메라는 그들이 경마장으로 들어가며 때마침 경마장을 나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딘가로 삼삼오오 걸어가는 장면을 의미있는 듯 제법 오래 따라간다. 그 일상적 군상 속에서 희수가 뒷모습을 보이며 등장한다. 그런 모습은 희수가 어떤 통속적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들어가는 것일 거라는 분위기를 풍긴다. 딱 요즈음 같은 초겨울의 잿빛 날씨, 진한 스모키 메이컵에 다소 딱딱해 보이는 외투를 갑옷처럼 몸에 두른 희수는 오로지 돈문제 해결에 돌입한 여전사처럼 싸늘하다.

"돈 갚아! 내 돈 350만원."

1년 만에 만난 옛 애인에게 첫인사도 없이 내뱉는 희수의 말 한 마디는 돈 갚으라는 것이었다. 두 주인공이 만나는 첫 장면에서 관객은 직업도 없이 경마장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빈둥거리는 남자의 정체성을 한눈에 간파한 듯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더구나 지금 돈이 없으니 나중에 계좌이체해주겠다는 남자의 대답은 무책임하고 믿음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여주인공 희수는 오늘 꼭 받아내겠다며 남자주인공 병운과 동행하게 된다.

처음으로 돈을 받으러(사실은 병운이 빌리러) 간 곳은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어느 여사장의 회사내 옥상 골프연습장이었다. 그곳에서 병운은 여사장에게 애완용 강아지처럼 굴며 돈 백 만원을 얻어낸다. 병운이 써준 차용증을 보며 재미있어 하는 여사장에게 '사실 혈서로 사인하고 싶었지만 제가 빈혈이 있어서…'라며 병운은 너스레를 떤다. 이쯤 되면 백수에다 제비의 느끼남을 세트메뉴로 얹은 듯한 그의 언행에 조소를 날릴 수밖에 없다.


두 번 째로 만난 사람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젊은 여인이다. 허름한 제복을 걸쳤지만 밝게 웃는 여자는 성실하고 무척 단아해 보인다. 학교 동창이라는 이 여인에게서 돈을 못 빌린 병운이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은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 세미가 사는 고급아파트촌이다. 희수는 이런 병운과 동행하게 된 것에 어이없어하지만 돈을 받아내기 위해 할 수 없이 그를 조수석에 태우고 서울 곳곳을 돌아다닌다.

◇회색빛 점심-더치페이의 햄버거로 재회의 만찬을

세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하길 기다리는 사이 둘은 점심을 먹는다. 예전 둘이 사귈 때 자주 찾던 제주집이라는 식당을 찾아가 보지만 그곳은 희수의 마음처럼 굳게 닫혀 있다. 그들은 KFC에서 징거버거와 햄버거를 더치페이로 사는데 병운은 그 와중에 쿠폰 적립까지 신경쓴다. 희수 또한 병운에게 냉랭히 굴다가도 길거리에서 홍보하는 사람이 나눠주는 휴대용 화장지를 병운이 건네주자 망설임없이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또 주차비를 아끼기 위해 병운을 태우고도 이리저리 공짜 주차장을 찾아 헤맨다. 이쯤되면 개그콘서트 '생활의 발견' 코너는 이 영화에서 소재를 얻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병운은 얼마만에 같이하는 식사냐고 흐뭇해하지만 희수는 그런 병운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병운은 지하 주차장에서 만난 스키학교 제자에게 돈 10만을 빌려 희수에게 건네 준다. 찔금찔금이지만 돈을 갚으려 열심인 병운이 다소 안쓰러웠는지 희수는 그에게 캔커피를 사준다. 병운은 자판기나 캔커피같은 단순간결한 커피가 좋다며 감읍한다.

세미의 아파트까지 같이 가게 된 희수는 그 자리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이는 어정쩡히 서 있는 희수를 마주 비추는 거울의 카메라샷에서 그런 희수의 심리를 고스란히 반사해낸다. 설상가상으로 술집여자 세미는 별볼일없는 여자가 돈 때문에 남자 기죽인다며 희수를 조롱하고, 희수는 술집여자라 쉽게 돈벌어 이해못한다며 서로 몰아붙이는 언쟁을 벌이게 된다. 병운은 어쩔 줄 모르고 두 여자 사이에서 무릎을 꿇은 채 다 내 잘못이라며 둘 다에게 용서를 빈다. 그런 해프닝을 치르고 세미에게서 돈 70만원을 받아 나온다. 아파트 입구에서 대학교 후배 부부를 만난 그들은 후배 남편의 간곡한 요청으로 잠시 합석하게 된다. 커피와 녹차를 시키는 그들에게 후배 남편은 굳이 맥주를 강요하며 자기 아내와 병운이 대학시절 같이 잤는지를 노골적으로 캐묻는다. 병운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못하고 희수는 그런 그들을 환멸스럽게 바라본다.

◇비온 뒤의 오후-생활의 발견·남자의 발견!

이제 남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병운은 오토바이족 사촌형이 사는 옥탑방으로 간다. 이 건축물은 실제 서울 시내의 한 곳이라는데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두건을 두른 오토바이족들이 옥외에서 고기를 굽고, 실내 한 켠에서는 병운과 사촌형의 지인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던 중 누군가 '아버지 재산으로 사업하다 다 날리고 마누라 도망가고' 하며 병운의 신상을 아무렇지 않게 비양댄다. 순간 좌중은 얼어붙지만 병운은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희수가 발끈해져서 그만 가자며 일어선다. 병운은 뒤따라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아까 소시지를 찾았던 남자에게 소시지를 쥐어주고 간다. 참으로 무골호인이 따로 없다.

병운이 아는 사람의 문제아딸 소연이를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어느 여자중학교로 간 두 사람, 희수는 껌 떼는 벌을 받는 소연을 위해 같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껌을 뗀다. 싸늘하고 시니컬한 희수지만 한편 따뜻한 마음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나와 보니 차가 견인되어 가고 말았다. 때마침 내리는 비…. 둘은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차가 견인된 곳으로 찾아가는데 서두르는 희수 때문에 병운은 발목을 삐었다.

차를 다시 찾은 두 사람은 이제 어두워진 거리의 어느 골목에선가 서 있다. 병운이 차에 두고 온 핸드폰을 가지러 간 사이 희수는 다시 오전에 만났던 병운의 여자 동창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희수에게 낮 동안 어디선가 애쓰게 마련한 듯한 돈 40만원을 건네지만, 이미 병운에게서 혼자 딸을 키우는 이혼녀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희수는 차마 받지 못한다. 희수의 사양으로 그녀가 자존심상해 하자 희수는 그녀에게 절반을 다시 건넨다. 그녀는 병운에게 "봤지? 나 최선을 다했다"고 환히 웃으며 돌아선다. 밝고 성실히 사는 그녀가 그토록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는 남자, 병운…. 그만하면 병운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무언가가 내재해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낮 동안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큰돈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최선의 돈으로 병운을 돕기 위해 애썼다. 아까워하는 빛 없이 흔쾌히 자신의 돈을 내주었다. 허허실실이지만 세심하게 사람과 사물을 돌볼 줄 아는 남자, 대책없이 착하기만 한 남자…….



◇차용증

희수가 병운을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 언제 고쳐놓았는지 고장났던 와이퍼가 매끄럽게 작동된다. 차 안, 병운이 써두고 간, 아직 남은 20만원에 대한 차용증이 꽂혀 있다. 차츰 희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 차용증이야말로 '비포 선셋' 같은 이 영화의 '비포 선라이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