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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풍산개'

배우 노개런티 저예산 영화 입소문 흥행
김기덕 감독의 현명한 통일을 위한 외침

  • 웹출고시간2011.12.25 17:09:5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개에 관하여

프로이트는 개가 인간의 심리를 읽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진료실에 자기의 개를 들여 놓았고 개의 위치를 보고 환자들의 스트레스와 긴장 상태를 파악했다고 한다. 환자가 긴장하면 그로부터 떨어지려 했고 평온한 마음이면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프로이트는 개가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사람을 귀신처럼 알아채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영화 '풍산개'에서 '풍산개(윤계상분)'도 귀신같은 능력을 타고났다. 위험을 감지하는 반사적 능력과 싸움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야생의 상태로 발달되었다. 남북한의 군사분계선을 그는 한 마리 들짐승처럼 거칠 것 없이 자유롭게 오간다.

호랑이를 잡는 개라고 불리는 용맹스런 견종인 풍산개는 유독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그리하여 주로 경비와 사냥에 이용되는데 적수와 만나면 가장 앞장서서 끝까지 싸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영화의 '풍산개'도 일당백이라 할 정도로 싸움 실력이 뛰어나다. 그런데 주인공의 이름이 왜 하필 풍산개인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름도, 직업도, 출신도, 세상 것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도 그 어느 것 하나 짐작할 수 없는 들개같이 거친 한 남자가 유일하게 몸에 지닌 물건이 풍산개라는 담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야성의 풍산개가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충성하는 것은 어느 한 인간이 아니라 그때그때 그에게 주어지는 밀사(密事)였다. 이산가족의 애타는 사연과 그리움을 전하는 영상물부터 아름다운 여인을 배달하는 일까지…….

◇김기덕의 힘

제 6회 로마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는 오랜 공백 기간을 가졌던 김기덕 영화감독의 제작으로 이미 화제가 되었다. 감독을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그만의 색깔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간 그의 작품에서 보아왔던 불편함-엽기적인 선정성과 폭력성-이 많이 제거되었기에 그가 관여했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실제 저예산 영화치고는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흥행작이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이 사재를 털어 넣었고 배우들도 노개런티로 참여했다고 하니 영화의 예상외 흥행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오죽하면 해외에 있던 김기덕 감독이 풍산개 관람객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을까.

북한 담배 풍산개를 늘 피운다고 해서 풍산개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그의 소속은 북한도 남한도 아니다. 어디에 적을 두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개인사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풍산개가 주로 하는 일은 임진각에 붙어 있는 소원을 하나 골라 그 임무를 완수해 주고 댓가를 받는 일이다. 갖가지 색깔의 종이에 수천 수만의 사연을 품은 소원과 주문이 나부끼는 임진각은 분단이 빚어낸 비현실적 주술이 걸려있는 풍경이었다. 그저 잠깐 무엇을 사러, 또는 잠시 일을 보러 집을 나섰을 뿐인데 그 길로 어떻게 5, 60년을 가족과 생이별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너는 어느 쪽이냐


풍산개는 남북한을 오가며 이러한 가족의 근황을 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물건을 배달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풍산개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북한출신일 듯도 하고, 임진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서는 남한 출신일 듯도 하다. 영화 내내 그는 한 마디 말도 내뱉지 않는다. 딱히 벙어리인 것 같지도 않는데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캐릭터의 중립성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짐작이 든다. 또 이런 비극적 상황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는 장치일 수도 있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한의 국정원도 북한의 보위부도 심지어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의 고위간부도 풍산개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남쪽이야? 북쪽이야? 대체 너는 어느 쪽이야?"

거창한 이념의 대립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유아적 사고를 낳았다. 전쟁 영화를 볼 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누구 편이냐'는 것이다. 아이들 놀이의 중요한 기준도 '네 편 내 편'을 따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하면 남북한의 적대도 참으로 유치한 수준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 유치함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청준이 1971년 발표한 '소문의 벽'은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 남자 이야기다. 6·25 전쟁 중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전짓불로 상대방을 비추이며 '너는 어느 쪽이냐'를 묻던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수십 년이 흘렀어도 남북 간의 대립은 '너는 어느 쪽이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사랑만이 우리 편


이 영화의 미덕은 남북한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 어느 쪽에도 선의를 덧씌우거나 섣불리 정의를 내세우지 않는 세련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진일보된 모습이라 평가하고 싶다. 북한 망명인사를 대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태도나, 북한 보위부원들의 모습도 상당히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다만 풍산개의 초인적인 활약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과 평양을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여 3시간 만에 넘나든다는 설정은 만화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산개가 장대를 이용하여 철조망 위로 도약하는 모습은 장쾌하고 후련하다. 어쩌면 저리도 단단한 남북의 벽을 봉(棒) 하나로 쉽게 넘을 수 있는가. 최신식 무기를 장착한 채 서로 죽일 듯 겨누며 노려보고 있는 상황을 무색하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인 방법이다.

"니들 거기서 같이 뒹굴었지? 거기는 야생동물도 마음껏 뛰놀고 그러잖아."

풍산개가 좋아하게 된 북한여자 인옥이와의 관계를 캐묻는 국정원 직원의 말이다. 그것은 야유와 조롱의 말이었지만 그 비무장지대가 순수의 땅이라는 일면도 드러난다. 그곳이 역설적으로 남북한 사람 모두가 아무 가식 없이 모일 수 있는 우리 민족의 '광장' 같은 곳이 아닐까.

오로지 배달에만 충실했던 그가 '배달 물품' 인옥이에게 빠져 버림으로써 풍산개의 고난은 시작된다.

◇남한은 섬나라


김기덕 감독은 유독 여성에 대해 왜곡된 심기를 가진 것 같다.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한 불편함도 여성에서 비롯된다.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고위 인사는 가족이 아닌, 한 여자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나이차로 보아 불륜처럼 비치는 관계다. 그 남자 때문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걸 버리고 남으로 내려온 여자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에게 환멸을 느끼고 풍산개를 좋아하게 된다. 아무리 생사를 함께 했다고는 하지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설정이다. 또한 인옥에게 보석을 먹인 후 그 보석을 찾기 위해 시신을 훼손시키는 상황도 거북하다. 성적 학대와 인격적 모욕 등 이 영화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이자 희생양은 인옥이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여성성의 불운함을 드러내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계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그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물했던 2마리의 풍산개 '우리'와 '두리'중 두리가 건강이 나빠졌지만, 여전히 남한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비단 개뿐이 아니라 사람도 이제는 정말 서로 섞여 살아야 되지 않겠나. 북한과 남한이 별개의 나라로 존재하는 한 우리 땅은 한반도가 아니다. 대륙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남한은 다만 섬일 뿐이다.

나는 섬나라에서 벗어나고 싶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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