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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불꽃처럼 나비처럼'

명성황후와 호위무사 사랑…여인모습 초점
멜로의 서정성 깬 현란한 CG·과도한 액션

  • 웹출고시간2011.04.10 18:40:2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나는 조선의 국모다."

황후라는 신분은 서슬 푸른 칼 앞에서도 인간의 절대 본성인 공포마저 사라질 수 있게 하는 것일까. 조선의 국모이기에 견디어야 하는 중압감과 자존감 속에 일말의 두려움은 없었을까.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시작은 인간적인 여인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영화에 흐르는 시간의 강물은 끊임없이 불행한 죽음의 바다로 흐른다. 그 암울한 운명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야만 하는 여인 자영(수애)의 삶은 두려움의 연속선이다. 두려움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삶의 방식은 바로 사랑이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인정해주고 지탱해주려는 '사랑의 위대함'을 온 몸으로 보여주려는 영화가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다.


오프닝은 다분히 서정적이다. 우포늪의 깊은 풍광과 신두리 해안사구 같은 서정적 촬영 장소들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푸르스름한 어둠을 배경으로 나룻배 위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사랑의 시작은 관객들의 가슴을 부풀게도 한다. 고종과의 혼례를 앞둔 어느 날, 자영(수애)은 알 수 없는 운명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바닷가를 찾는다. 힘들 때마다 늘 용기를 주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통해 용기를 얻기 위함이었다.

어스름한 강물은 기연을 만들어준다. 밤에는 자객으로 낮에는 뱃사공으로 살던 무명(조승우)은 우연히 그녀를 배에 태우며 그들의 운명은 뒤섞인다. 마치 아버지의 혼이 씌워진 것과 같은 자객 무영의 자신감을 통해 자영은 뜻밖의 용기를 얻게 된다. 반면 무명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리며, 운명처럼 사랑하게 된 자영을 어머니처럼 무기력하게 잃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둘의 만남은 그렇듯 절묘한 인연으로 얽힌다. 그 둘이 같은 배에 올라타 바다로 흘러갔듯이, 그들은 함께 운명의 강물을 거슬러 슬픔의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의 배를 흐르게 하는 물살은 그들이 극복해야 할 운명이었고, 그 둘은 사랑을 무기로 함께 거대한 물살에 맞서 바다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왕비와 호위무사의 사랑 이야기'는 전형적인 멜로다. 엄청난 신분과 천한 신분인 자객과의 사랑은 금지된 사랑이라서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더한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래서 그 사랑의 유혹은 더욱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촛불처럼 위태로운 사랑을 지켜가는 방식에 관객들은 마음을 졸인다. 명성황후에게 숨겨진 사랑이 있었다는 역사적 설정은 자못 흥미롭다. 그러므로 허구의 상상력은 늘 재미있다. 그동안 우리가 인식했던 명성황후의 이미지는 철의 여인상이었다. 기울어져 가는 조선 왕조의 서민 출신 왕비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많은 드라마와 뮤지컬에서 날 선 여인으로 묘사됐다.


영화'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두터운 고정관념에 과감하게 틈을 낸다. 강한 이미지의 명성황후라는 거대한 벽에 조그맣게 난 틈새로 엿보는 관객들은 행복한 관음증을 즐긴다. 세상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존재하는 법이다. 완벽한 이미지의 명성황후 속에, 소녀처럼 청아한 모습하며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애태우는 보통 순정파 여인으로 탈바꿈 시켜버렸다. 영화 '셜록 홈즈'에서 1891년 영국의 시대적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를 통해 그 당시의 템스 강과 시장통, 도살장, 조선소 등의 풍경들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보여준 것처럼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도 조선말의 풍경들이 시공을 초월해 화면에 가득 펼쳐진다. 한반도에 최초의 전깃불을 밝힌 전기 점등식 장면을 위해 공수된 전구는 실제 에디슨 전구 회사에서 100여 년 만들었던 방식 그대로의 밝기와 깜빡임으로 리얼리티를 살려냈으며, 고종의 침소에 배치된 디테일한 소품부터 고가의 고풍스러운 매트리스 등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해 아름다운 조선의 모습들을 재탄생시켰다. 그 몽환적인 역사적 풍경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밝음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다. 감독은 영화에 너무 많은 재료를 한꺼번에 넣다보니 음식 본연의 맛을 잃어버렸다. 관객들이 영화에 한참 몰입하려는 시점에 느닷없이 찬물을 끼얹는 장면은 아연케 한다. 그것은 바로 시대극에 등장한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의 남용에 있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멜로극이 아닌가. 하지만 대원군이 보낸 자객과 무명의 칼싸움의 장면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뜬금없다. 21세기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한 현란한 액션장면은 관객들을 혼란케 한다. 19세기의 시공간에 느닷없이 21세기의 기법을 꿰맞추니 가당키나 한 발상인가. 아마 세계 최고의 CG전문 회사인 ILM에에서 '캐리비안의 해적' '트랜스포머' '아이언맨' 등 대작들의 주요 CG를 담당했던 홍재철이 합세하니 그 재능을 버리기가 아까웠던가보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음식에 맞지 않으면 때로 버릴 줄 아는 지혜가 아쉬웠다.


이 영화의 축이 되는 인물은 명성황후와 무명 그리고 대원군과 무명의 숙적 뇌전이다. 특히 무명의 숙적이며 대원군의 충실한 부하인 뇌전의 역할은 엉뚱하다. 무명의 사랑을 이해하는 듯"어떠냐? 지킬 수도 다가갈 수도 품을 수도 없는 존재 곁에 있는 고통"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서 관객들은 혼란스럽다. 무명의 심정을 잘 대변한 말이기는 하지만, 대원군의 수족이 한 말로는 도무지 혼란스럽다. 명성황후를 시해하려던 일본 낭인에 동조하는 척 하다 마지막에 무명의 편에서 비장한 최후를 맞이하는 설정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원군이 개심해서 "내 며느리를 지켜주게."라고 한 말을 지키기 위함이라면 사전에 군사를 모아 대항함이 논리적이 아니었던가. 무명이 대원군과 궁궐로 몰려든 그의 군사들과 혈혈단신 맞이하며 장렬히 싸우다 불현 듯 멈춰 서서 "너희들 때문에 마마께서 힘드시다."라며 훈계하는 장면 또한 어이가 없다. 그나마 관객들을 100만 이상이나 끌어 모은 힘은 분명 존재한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영화의 흠집을 충분히 채우고 남는다.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여인 자영의 붉은 댕기를 손에 감고 최후를 맞는 장면은 비장하고 가슴을 저리게 한다. 주인공 무명이 사랑하는 여인 자영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면서도 다리의 신경을 스스로 끊고, 칼로 자신의 발등을 찍어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처절한 모습으로 철의 여인 명성황후의 눈물을 이끌어내고, 마침내 관객의 억눌린 눈물까지 이끌어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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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