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127시간'

바위에 팔이 끼면서부터 팔을 자르기까지

  • 웹출고시간2011.07.24 18:23:3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이끌린다는 건 운명이다. 특히 거칠고 험한 산악과 암벽에 이끌리는 사내들의 삶은 운명이라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때로 제물 바치듯 산자락에 자신의 사지를 헌납하고도 그들은 또 제 발로 그곳을 잊지 못해 찾아 간다. 발을 잃었다면 의족을 하고서라도……. 그러니 운명이라 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2005년 난공불락인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 등반 성공 후 하산 길에 당한 사고로 손가락 8개를 잘라낸 알파인 등반 전문가 박정헌씨도 그런 경우다. 손가락이 없어 암벽 등반이 어렵게 되자 이번엔 패러글라이더로 8월부터 6개월간 히말라야 6000km를 종주한다고 한다. 손가락 대신 날개를 달은 셈이다.

"나는 산만큼 아름다운 곳을 보지 못했다. 히말라야는 수많은 내 친구가 죽은 곳이고 나도 죽을 뻔했던 곳이다. 그럼에도 정상에 오르면 늘 산이 먼저 다음 목표를 알려 준다."

그의 말은 산에 뼈를 묻기를 각오한 산사내의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옛날 뱃사람들은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순결한 처녀를 바다에 바치곤 했다. 산도 어쩌면 때로 건장한 사내들의 육신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수많은 산사내들의 다리나 팔, 심지어 생목숨이 산기슭에서 그대로 풍장되었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산으로 간다.

여기 산에 이끌린 또 하나의 사내가 있다. 애런 랠스턴이라는 미국 산악인 청년 이야기다. 그도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니언 협곡에 그의 오른팔을 바쳤다. 그리고 살아 돌아와 자신의 사투를 그린 영화 '127시간'을 가족과 함께 관람하는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오른팔이 의수인 그는 아직도 산을 오르고 있다.

◇무심한 대자연과의 사투

'바위에 팔이 끼인 남자가 홀로 사투를 벌인 끝에 스스로 팔을 자르고 탈출에 성공한다'


서사는 짧고 단순하지만 임팩트가 무척 강한 내용이라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내볼 만하다. 하지만 섬세하고도 다양한 디테일의 표현력이 없다면 영화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러한 난점을 '슬럼독 밀리어네어' 로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쓸었던 대니 보일 감독은 그에 대한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고 훌륭하게 극복해냈다. '무결점의 영화'라는 뉴욕타임스의 극찬도 쏟아졌다. 영화의 주인공역인 제임스 프랭코도 실존인물 못지않게 역할을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실제 인물 애런도 "친구들이 모두 '너랑 완전 똑같다'며 놀랄 정도였어요.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 너무도 완벽하고 깊이 있게 표현해 내 놀라울 따름이죠."라고 말했다.


영화의 대부분은, 블루 존 캐니언의 암벽을 등반하다 깊고 좁은 협곡으로 추락하던 중 굴러 떨어진 바위에 팔이 끼어버린 사내가 6일 동안 500ml 물 한 병으로 버티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담고 있다. 가진 장비라곤 로프와 무딘 칼 하나……. 무심한 대자연은 그에게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비좁은 바위틈으로 보이는 흰 구름이 몇 조각 떠 있는 하늘, 내리쬐는 뙤약볕, 검은 먹구름 속에 몰려오는 폭우, 바람에 쓸리는 모래먼지, 약 올리듯 자유롭게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 등 무위자연의 모습 그대로다. 그 속에 바위에 팔이 끼인 채로 생명이 사위어가는 한 남자까지도 자연은 그의 풍경 중의 일부로 포섭할 뿐이다. 우연히 굴러 떨어진 바위에 팔이 끼어버린 것처럼, 또한 자연은 중력의 힘을 다시 작동시켜 우연히 바위를 슬쩍 밑으로 떨어뜨려줄 법도 하건만, 자연은 그런 아량이나 기적을 베풀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애런이 그런 자연에 대적하는 것은 자신의 팔과 바위의 틈새를 벌리기 위해 칼로 바위를 갈아보는 것뿐이다. 날이 바뀌도록 꾸준히 갈아보지만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다.


3,4일이 지나자 까마귀가 머리 위에 날아와 배회한다. 인간보다도 인간의 죽음을 더 빨리 알아채는 녀석이다. 아껴가며 물을 마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탈진상태에 이른 애런은 바위를 갈던 칼을 급기야 자신의 팔로 옮긴다. 뼈를 부러뜨리고 인대가 끊어지고 ……. 차마 지켜보기도 힘든 광경을 애런은 실제로 해냈다니 생명에 대한 인간의 의지에 숙연해진다. 또한 "이래서 싸구려 중국산 칼이 아니라 스위스제를 사야 돼."라는 말까지 했다니 그 유머감각에 경외심마저 든다.

시사회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너무도 끔찍해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했을 때 모두가 이 고통스러운 영화에서 벗어난다는 데 기뻐했다"고 말하자 애런이 "나도 실제로 팔을 자르는 데 성공한 후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고 말했다 한다. "5분 만에 혼자 뼈를 부러뜨린 후 팔을 자르는 데 한 시간이 걸렸었죠. 그 시간을 반드시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자신의 127시간을 캠코더에 담았다.

이 비디오는 영화를 만드는 데 아주 유용한 자료로 쓰였다.

◇다시 쓰는 희망

"모든 게 무너져 버릴 뻔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 동료, 친구 등 저를 향한 그들의 사랑이 저를 붙잡아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출하기 직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미래에 저만의 가정을 꾸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환시 같은 것을 봤어요. 이것이 저에게는 큰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애런의 말처럼 영화는 가족들과의 행복했던 과거와 미래에 자신이 꿈꾸는 가정의 모습을 애런의 환상 속에 보여 준다. 아버지와 함께 떠난 여행, 차 안에서 곤히 잠든 아들을 깨워 모포를 두르고 같이 그랜드캐년의 해돋이를 바라보던 추억, 온 가족이 화목하게 둘러앉아 듣던 누이동생의 피아노 연주등을 회상하며 애런은 절망의 상황을 버틴다.

"그 일을 겪고 난 후 제 인생은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으로 변했어요. 못 이겨낼 것이 없단 생각이죠."

애런은 영화의 끝장면처럼 그 사건 이후 결혼해서 아들까지 두고 있다. 영화는 애런에게 특별한 선물도 안겨 주었다. 영화 후반, 주인공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소파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애런의 진짜 가족들과 친구들로서 그들을 영화에 참여케 한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머니가 제 손을 너무 꽉 쥐셔서 제 남은 한 손까지 없어지는 줄 알았어요. 제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렇게 마음을 졸이시더라고요. 영화가 끝났을 때 절 와락 끌어안고 '고맙다 고맙다' 하시는데 정말 뭉클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가 '선물'과 도 같은 이유입니다."

지난번 '베리드'의 영화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잠시 희망을 유보해 놓았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베리드'는 지구상의 어디에선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가상한 영화지만, '127시간'은 실화를 그대로 옮긴 영화다. 영화보다 남루한 현실이지만, 애런의 실화는 때로 영화보다 실제의 현실이 더 강력한 희망을 품고 있음도 알려 준다.

영화 속 애런이 입었던 붉은 셔츠의 해바라기 문양이 예사롭지 않다. 언제나 태양을 향하여 꿋꿋한 해바라기처럼, 인간의 유전자에는 어떤 순간에도 숙명처럼 '희망'이 내재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