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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호로비츠를 위하여'

참다운 스승과 제자·기른 모정의 절창
3번 울리는 3色 '트로이메라이' 인상적

  • 웹출고시간2011.05.22 19:56:0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원치 않는 이별'은 사람의 애간장을 녹여낸다.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도 그러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생이별은 더더욱 절절하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경민(신의재 분)을 독일로 입양 보내고 온 날, 창가에서 홀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지수(엄정화 분)가슴과 얼마 전 영화 '하모니'에서 어린 자식과 생이별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들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몸부림치는 정혜(김윤진 분)의 가슴이 한 몸으로 포개져 슬픈 화인(火印)을 남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어쩔 수 없이 입양 보내야만 하는 두 엄마(?)의 마음과 음악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 '하모니'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만든 어설픈 아마추어 합창단이라면,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세련되고 품위 있는 피아노 연주회였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가 시사해주는 것은 다양하다. 요즈음 세태에 더욱 그 마음을 되새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먼저 스승과 제자의 참다움이며, 기른 모정(母情)의 절창이다.

그다지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임에도 딸의 꿈을 도와주고 싶었던 아버지 덕택에 피아노를 전공한 지수(엄정화 분)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블라드미르 호로비츠(1904-1989)'를 동경했다. 하지만 경제사정상 유학도 가지 못하고, 교수에게 아부할 줄도 모르는 성격 탓에 자신의 꿈을 접고 변두리에서 음악학원을 차린다. 지수는 적당한 욕심쟁이에 새침떼기 아가씨다. 그런 지수에게 가슴속 꽁꽁 감춰두었던 열등감(대학 동기들의 월등한 경제력과 성공)을 보상하고, 자신의 학원을 알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 키워드는 바로 동네 말썽꾼 아이 경민(신의재 분)이다. 경민은 어릴 적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었다. 그래서 경민은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 담을 쌓고 홀로 살아왔다. 더구나 경민은 극도로 헤드라이트 불빛을 두려워한다. 과거 정신적 외상(外傷)을 갖고 있던 경민은 자신이 어려울 때마다 벽장 속에 짐승처럼 숨어든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민감해하는 경민의 설정은 바로 새로운 '갈등'에 대한 복선(훗날 경민은 피아노 콩쿨대회에서 스포트라이트 불빛에 오줌을 싸고 만다)이다. 경민의 유일한 혈육인 늙고 병든 할머니는 자신이 죽고 나면 완전히 혼자가 될 손자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호되게 대한다. 그래서 경민은 더욱 사람의 정이 그리웠던 것이다. 하지만 경민에게는 한줄기 빛처럼 천재적 음악성이 있었다.

영화 '호르비츠를 위하여'에서 3번 등장하는 피아노 연주곡 '트로이메라이'는 영화의 진행과정에서 전환점이 올 때마다 신호처럼 잔잔히 흐른다.


첫 번째 지수가 연주한 트로이메아리는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이다. 부모의 교통사고, 귀를 찢는 급제동 소리, 쏟아지는 헤드라이트 불빛…경민의 무의식속에 저장된 트라우마는 경민을 자꾸만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킨다. 경민은 상처를 받을 때마다 캄캄한 벽장 속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숨는다. 그때 벽장 밖 세상으로 경민을 이끌어낸 소리가 바로 피아노 연주곡 '트로이메라이'였다. 섬세하고 낭만적인 피아노 선율은 경민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던 천재적 음악성을 툭툭 치며 일깨우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트로이메라이'는 비통한 모정의 이별연주였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할머니에게 온갖 구박을 받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말썽만 부리는 천덕꾸러기인 경민을 우연한 기회에 떠밀리듯 지수가 보살피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아무렇게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경민에게 천재적 절대음감을 발견한다. 처음 지수는 경민을 통해 얄팍한 계산을 한다. 경민을 제대로 키워내면 학원홍보도 되고, 더불어 자신의 못다 이룬 꿈도 경민을 지도함으로써 이루어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경민에 대한 애정이 점차 생겨나면서 지수의 내면에 중요한 변화가 온다. 시집도 못가 본 처녀 지수에게 색다른 감정, 모정이 싹튼 것이다. 경민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지수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한다. 천재 제자이자, 아들과 진배없는 경민을 양자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자 할 수 없이 독일로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다.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지수의 친구를 만나 하우스 콘서트에 초대된 날, 경민은 스승이자 엄마 같은 지수를 위한 독주회를 펼친다. 경민의 재능은 유명한 독일 교수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학을 주선하게 되었고, 키울 능력이 없는 지수는 입양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린 경민은 지수와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엄마를 두 번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경민을 입양 보내고 난 후, 창가에서 지수는 홀로 두 번째 '트로이메라이'를 가슴 건반으로 연주한다.

세 번째 '트로이메라이'는 지수가 아닌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경민이의 화답곡이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경민이 지수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연주한 '트로이메라이'였다. 경민이 귀국 독주회에서 아무런 대사 없이 강렬하고,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8분의 시간은 영화의 또 다른 맛을 안겨준다. 그 곡 안에 녹아있는 선율을 따라 관객들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녹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민이 연주하는 곡은 바로 자신의 스승이자 어머니인 지수가 꿈꿨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생전에 즐겨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던 것이다. 그토록 열망했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에 비해 조금도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연주해내는 경민이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지수의 모습은 영화관객의 눈물샘을 터트린다. 수많은 청중이 객석에 들어찼지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우뚝 선 경민에게는 오직 자신의 스승이자, 어머니였던 지수에게 바치는 헌정 연주회였던 것이다.

또한 관객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던 장면이 있다. 어릴 적 천재였던 경민이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를 피아노로 자유롭게 표현했던 그때의 기억을 담아 익살스러운 연주를 시작하자 객석에서 눈물짓던 지수는 자신들만의 비밀스런 그 의미를 알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되고, 습관처럼 지수가 입양가기 전 끼워줬던 반지를 어루만지는 경민의 몸짓은 영화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낸다. 경민이 마지막으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며 연주한 곡이 다시 세 번째 '트로이메라이'였던 것이다.


영화 '홍반장',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명랑하면서도 엉뚱한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해 낸 엄정화가 아니면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여주인공 지수의 연기는 과연 누가 감당했을까. '아이들' '윈스 어폰 어 타임' 등에서 코믹한 사기꾼과 정감 있는 연기를 동시에 선보인 박용우도 여주인공을 흠모하는 순진남의 역할을 적절히 해냈다. 한국영화 최초로 시도된 음악영화였기에 상당한 부담이 있을 법했지만, 오랫동안 영화팬의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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