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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빅 미라클'

빙벽을 녹인 기적

  • 웹출고시간2012.09.16 17:59:1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소설 '모비딕'에서 영화 '빅 미라클'까지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나는 너한테 묶여서도 여전히 너를 추적하면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겠다."

19세기 미국 문학의 최고봉으로 회자되는 허먼 멜빌이 쓴 소설 '모비딕'의 한 장면이다. 흰고래에게 다리 하나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의 이 같은 집요한 적개심은 결국 선장 자신과 선원들을 파멸시키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1851년 발표된 이 작품은 멜빌 자신이 포경선을 탔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것으로, 비극적 결말로 보아 작가는 이미 그때 지나친 고래 남획에 경종을 울리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로부터 백여 년의 세월이 흘러 1988년 알래스카 작은 마을 배로우에서 소설 '모비딕'과 정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새끼를 포함한 세 마리 고래 가족을 살리기 위하여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명까지 담보로 하는 사투를 벌였다. 영화 '빅 미라클'은 북극에서 일어났던 이 실제 이야기를 다시 재생하여 지구촌 작은 안방까지 그 훈훈함을 전달하고 있다.


서로를 보듬는 고래 가족

TV리포터로 일하는 아담은 알래스카 배로우 마을에 취재차 4년째 머물고 있다. 한적한 이곳에서 아담의 절친은 열두어 살 정도의 이누이트족 소년이다. 소년의 부탁으로 마을 아이의 스노보드 타는 모습을 촬영하던 아담은 우연히 빙벽에 갇힌 회색고래를 발견하게 된다.

"쇠똥구리나 곰팡이가 죽어가도 일일이 전화해야 되나?"

헤어진 여자친구이자 그린피스 회원인 레이첼이 방송에서 회색고래의 소식을 듣고, 아담에게 왜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냐며 따지자 아담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담의 이 말은 사실 의미심장하고도 해묵은 논쟁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고려말 대학자 이규보의 '슬견설'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개와 이가 똑같은 생명인데 이는 잡아 죽이면서 왜 개의 죽음은 슬퍼합니까?"

아담의 말도 작은 곤충의 죽음에는 태연하면서 다만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고래의 죽음에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는 의미로 읽힌다. 생물의 목숨을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잣대가 도대체 무엇이 기준이 되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철학적이고도 종교적이며 환경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짧은 식견으로는 우선 멸종 위기의 생물에 대한 보호, 인간과의 친연성, 생태계의 사이클 등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회색 고래 가족은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구하고자 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다친 새끼를 번갈아 등 위로 밀어 올려 숨을 쉬게 해주는 부모 고래의 행동은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의 연민을 자아냈다.


이 회색고래는 아가미로 호흡하는 어류와 다르게 직접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을 해야 한다고 한다. 호기심도 많고 붙임성도 좋아 사람이 탄 배가 지나가면 고개를 내밀고 관광객을 바라보며, 배가 많이 모여들수록 신이 나서 분수처럼 물을 튕기는 장난도 잘 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을 위험하게 하는 일은 없으며, 그 큰 덩치로 배를 뒤집을 만도 한데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온순한 성격임에도 이들의 영어 이름이 'Devil fish(귀신 고래)'라고 불리는 것은, 이들을 잡았을 때 강한 모성애 때문에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공격해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귀한 것은 '생명'

사실 회색 고래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히 자신에게 돌아올 반사이익을 계산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고래가족을 빌미로 환경정책의 실패를 회복하려는 정치가, 환경보호에 애쓴다는 이미지를 심고자 하는 석유개발업자, 특종을 터뜨려 승진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방송사 기자 등……. 다만 그린피스 회원 레이첼과 이누이트족인 에스키모인들만이 고래의 생명을 지켜주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애쓸 뿐이었다. 사실 이누이트족들에게는 고래를 잡는 것이 생업이었지만 다친 새끼고래의 신음소리와 그를 돌보는 어미 고래의 애달픈 몸짓은, 고래를 잡던 그들의 도구를 고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얼음을 깨는 도구로 바꾸어 놓았다.

고래가족의 숨구멍을 넓혀 주기 위해 사람들은 영하 4,50도의 추위와 싸우며 얼음을 깬다. 하지만 기온이 점점 내려가 고래가족이 유일하게 숨을 쉬던 얼음 구멍이 점점 좁혀지자 사람들은 고래의 물길을 뚫어주기 위해 6미터 간격으로 새로운 얼음 구멍을 만들어 준다. 동상에 걸릴 정도의 언 손가락으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얼음 구멍은 5마일에 걸쳐 400개가 넘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각자의 이익과 계산적 행동으로 모였던 사람들도 점차 오로지 고래 가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힘을 합한다.

"그들도 사람과 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나약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지요."

레이첼은 이렇게 말하며 주변의 만류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차디찬 바닷물에 뛰어들어 새끼 '뱀뱀'의 몸을 감고 있던 그물을 떼어내 준다. 에스키모인 할아버지와 손자는 종종 얼음 위에 엎드려 귀를 대고 그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새끼고래는 죽고 만다. 나머지 고래의 생명도 경각에 달린 즈음, 소련군 쇄빙선 아르셰니프호가 얼음을 가르며 다가온다. 미군측 방위군이 헬기 두 대로 쇄빙선을 끌고 오다 얼음 위에 갇혀버린 탓에 미대통령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아직 냉전이 종식되기 전이었던 그 시절, 자존심을 굽혀가며 소련군에게 부탁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흔쾌히 고래 가족 구하기에 동참을 수락한 소련군은 쇄빙선으로 빙벽을 깨기 위해 목숨을 건 속도로 돌진하여 결국 빙벽을 무너뜨린다.

비록 새끼는 잃었지만 프레드, 윌마 회색 고래 부부는 마침내 드넓은 바다로 나가 힘차게 솟구치며 약동하는 몸짓으로 사람들의 환호에 답한다.

놀랍고 신기한 세상

영화가 끝났다고 해서 성급히 채널을 돌리지 마시길. 엔딩 장면에서 실제 인물들과 영화와 흡사한 실제 영상이 펼쳐진다. 실화였다는 점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영화에 대한 몰입과 공감을 배가시킨다.

"뱃전 너머 바다 속을 들여다보니 수면 밑으로 놀랍고 신기한 세상이 펼쳐졌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들과 젖먹이들은 엄마 젖을 빨 때, 가끔 엄마의 가슴에서 눈을 돌려 다른 곳을 조용히 쳐다본다."

'모비딕'의 한 장면이다. 같은 포유류이며 매우 지적이고 새끼를 낳아 젖을 물리는 고래는 여러모로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알래스카 배로우 마을에서 사람들과 삶의 사투를 벌이던 프레드와 윌마의 후손도 지금쯤 드넓은 바다 속에서 잠시 눈을 돌려 사람들의 세상을 상상하고 있지 않을까.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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