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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죽음'으로 삶을 찾아가다

  • 웹출고시간2012.06.03 18:35:4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2011년 10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은 안타깝게도 설산 안나푸르나에 영원히 잠들었다. 왜 그들은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위험한 길을 굳이 자청하여 가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 얻을 수 있는 답이 아니다. 그저 그곳을 향해 가고 있거나, 그 영봉 앞에 서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보거나 꿈꾸지 않은 사람은 그 무모한 열정에 대해 함부로 단언하지 못하리라.

꿈을 향해 도전하는 실물의 풍광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히말라야 설산을 오르는 광경이 아닐까. 닿을 것 같지 않은 아득히 높은 곳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걸음이야말로 꿈의 여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히말라야', 이 영화에는 대사가 별로 없다. 주인공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목소리 대신 자리를 채우는 것은 설산의 흰 이마와 바람이다.

신들은 바람에 실어 우리에게 전한다.

선을 행하면

황무지에서 많은 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네팔 사람들이 부르는 이 소박한 노래에는 삶의 진리가 숨어 있다. 선을 행하여 얻는 것이 고작 '물'이냐 하겠지만 물이야말로 인간의 육체를 생성하는 근원적 생명 아니겠는가. 따라서 주인공(최민식 분)이 네팔 노동자의 유골을 전해 주러 히말라야 가족을 찾는 것은 '죽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으러 가는 여정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

"배우는 무당이고, 배역은 귀신이고, 무당이 귀신을 불러내듯 그 캐릭터를 불러내는 것이 연기인 거죠. 귀신이 몸 속에 들어왔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체험해 본 사람은 알겠죠. 또 내 몸을 빌어 실컷 놀다가 귀신이 빠져나갔을 때 버려진 내 몸뚱아리가 얼마나 허전한지도……."

이런 체험담을 풀어 놓는 배우 최민식에 대한 평소 신뢰도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파이란'이나 '올드 보이'에서의 가히 신적 경지에 오른 연기에 감탄한 적이 있기에 그가 다소 긴 공백기를 깨고 출연한 영화에서 이번엔 어떤 무당이 되어 삶의 춤사위를 풀어냈는지 보고 싶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의 연기는 마치 영화가 아니라 한 편의 히말라야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안겨 주었다.


기러기 아빠로 살던 주인공 '최'는 회사에서 대기발령 신세가 되자 동생의 심부름으로 네팔을 향해 떠난다. 동생의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도르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골함을 여행 가방에 싣고 비행기에 오른 것.

히말라야 산 밑 고원지대에 살고 있는 도르지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걷는 여정은 등반 못지 않게 험난하다. 끝도 없이 위로 위로 이어진 자갈길을 양복에 구두 차림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는 최의 모습은 위태롭기만 하다. 그의 이런 외양은 여행으로 네팔을 간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별다른 준비 없이 떠났음을 말해 준다. 최의 짐을 지고 가는 네팔 짐꾼과도 한참 뒤쳐져 걷다 최는 급기야 고산증으로 쓰러지고 만다.

눈을 떠보니 일고여덟 살짜리 작은 소년이 피리를 불어 주고 있다. 도르지의 아들이다. 연로한 도르지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도르지의 아내는 한국에서 남편의 소식을 가져온 최를 극진히 간호한다. 최는 이 가족들에게 차마 도르지의 죽음을 알리지 못하고 선물과 돈 만을 전하며 도르지는 잘 있다고 말한다.

도르지의 아내는 순박하면서도 고운 여인이다. 낯선 방문객 앞에서도 가슴을 드러내고 어린애에게 젖을 먹인다. 가족들을 위한 일상의 영위에 정성을 다하는 이 젊은 엄마에게 최는 안식과 더불어 묘한 갈망을 느낀다. 아마 오랜 기러기아빠 생활, 현재 미국의 가족들로부터 받는 냉대 등으로 인하여 더욱 이 가식없는 여인에게 이끌리는 마음이 있었으리라.

도시에서 찾던 당신을 여기서 만났네

이 영화에서 도르지의 가족들에게는 이름이 부여되지 않는다. 심지어 수시로 이름이 불릴 법한 작은 소년의 이름도 명명되지 않는다. 어쩌면 자연과 일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나그네를 위하여 피리를 불고, 우유를 입에 머금었다가 병든 양의 입에 넣어주는 어린 소년의 모습은 히말라야 설산만큼이나 아득하면서도 청량하다. MP3를 귀에 꽂은 채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차량들 사이를 아슬아슬 걸어다니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겹쳐 놓고 볼 때 어쩐지 가슴이 답답하다. 첨단 문명이 곧 인류사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인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결국 가족들은 도르지의 유골함을 발견하게 되고 도르지의 아버지는 최에게 당신의 일을 다 마쳤으니 이제는 떠나라고 말한다. 가족들은 언덕에 올라 도르지의 유해를 바람에 실려 보낸다. 도르지의 아들은 '사람이 죽으면 바람이 산 너머 협곡으로 영혼을 실어가 안식을 주는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이야기해 준다. 깊은 골짜기에는 바람이 머무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나그네와 소년의 주위로 장엄하게 둘러친 희고 푸른 산맥은 그들의 모습과 대화를 영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히말라야에서 고작 그 정도 영상밖에 못 얻었느냐고 하지만,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를 염두에 둔 영화가 아니다. 영상미를 생각했다면 충분히 불록버스터급이나 특수시각적 효과로 표현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 영화는 자연의 본령과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데 있었다.

네팔을 떠나기 직전 최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흰 말이 두 번 나타난다. 말을 따라가다 헤매고 돌아온 최는 병을 얻어 앓아 눕게 되고, 다시 도르지의 아내에게 간호를 받게 된다. 그녀는 그의 상체를 안고 여기저기 손을 조심스럽게 갖다 대며 '신이여 속히 낫게 해주시옵소서'란 주문을 반복하여 속삭인다. 흰 말이 상징하는 것은 '신적 계시'이다. 최는 도르지 아내와 끝내 에로틱한 관계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녀에게서 모성적 위안과 평화를 얻는다.

바람을 닮아, 깊고 단조롭게 울리는 음악소리와 함께 최는 이제 혼자서 여행 가방을 끌고 길을 나선다. 스스로 짐을 질만큼 힘을 얻은 것이다. 설산에 닦여진 그의 마음 자락이 오랫동안 평화를 주리라.

정보화 기기의 고산증으로 어지러운 내 마음도 히말라야의 흰 봉우리가 오래도록 마음을 시리게 밝혀줄 것 같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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