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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내 아내의 모든 것'

참을 수 없이 무겁고도 따뜻한 존재 '아내'

  • 웹출고시간2012.12.02 18:28:4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아무렇지도 않은 아내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정지용의 시 '향수'의 일부이다. 일제시대의 지식인층에게 아내란 고향에 두고 온 하나의 '풍경'으로 존재했다. 당시만 해도 부모가 정해주는 전통적 혼인방식을 따랐던 터라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혼인한 부부들은 그저 가족구성원으로서 서로 무덤덤히 살았다. 특히나 고학력 남편들은 배우지 못한 고향의 아내를 젖혀 두고 신여성과 연애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하여 그 시절의 아내들은 집안에 놓인 하나의 사물처럼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존재였던 것이다. 결혼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익숙해진 아내의 위치를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하기도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처럼 불타는 사랑과 연애를 거쳐 결혼한 오늘날의 젊은 부부 또한 상황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연애시절처럼 마냥 설레고 긴장된다면 그 또한 피곤한 일일 터.

영화에서 두현(이선균 분)과 정인(임수정 분)의 첫 만남은 지축이 흔들릴 만큼이나 강렬한 것이었다. 일본 나고야에서의 유학시절, 지진 소동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달콤한 열애 끝에 결혼 생활에 이른다. 스톱 모션으로 다양하게 전개되는 두 사람의 연애와 키스 장면은 모든 솔로들의 울분을 자극하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달달하고 예쁘다.


신문 넣지 마세요 -내 생활에 간섭하지 마세요

결혼 후 첫 장면은 정인이 신문 배달하는 남자와 신경전을 벌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신문 넣지 마세요." 정인이 이 팻말을 세워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배달원은 계속 신문을 넣는다. 일년 구독 조건으로 이미 자전거를 지급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까지는 봐야 된다.' '사은품이었던 자전거가 불량이었으니 그런 의무는 없다'는 설전은 이 영화의 부부간 의미를 짚어보게 만든다.


결혼서약이란 평생 부부관계를 보장받는 계약과도 같다. 하지만 같이 살아보니 여기저기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면 계약을 파기하고 싶을 것이다. 신문이야 넣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부부라는 관계는 그리 쉽게 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요리를 전공한 정인은 아침마다 각종 야채 주스를 만들어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와중에도 남편 입에 막무가내로 밀어넣는다. 식탁에서 식사하는 남편 발 밑을 청소기로 밀며 그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퍽퍽 피워대고, 출근길의 운전 중임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전화를 걸어댄다. 끊임없는 잔소리에 사사건건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드는 성격 탓으로 주변 사람들이 편할 날이 없다. 급기야 남편 앞에서 아무 감정 없이 속옷을 훌훌 벗으며 방귀를 뀌어대는 정인을 바라보면서 두현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우리 헤어지자'라는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회사일로 한동안 강릉에 기거하게 된 두현은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강릉집으로 퇴근하던 첫날 저녁, 집에는 여전히 공포의 도마질 소리가 가득차 있다. 도무지 정인에게서 벗어날 것 같지 않은 암담한 상황에서 두현은 하나의 묘책을 발견하게 된다.


아내를 유혹해 주세요

강릉의 옆집에는 불어와 스펜인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희대의 국제적 카사노바가 살고 있는데 이름 하여 장성기다. 장성기라는 인물은 배우 류승룡을 다시 재발견하게 해준 매력적이고 유쾌한 배역이다.

"이런 얼굴로 연기할 수 있게 앞서 길을 열어 주신 송강호, 설경구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대종상 남우조연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할 정도로 그는 미남 배우와는 거리가 멀다. '최종 병기 활'에서 청나라 장수 주신타의 살기 번뜩이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그 얼굴이 이리도 능글맞은 카사노바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활을 겨누던 신궁의 정밀한 손짓에서 젖소의 젖을 짜는 선정적 손놀림으로의 변신은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 배우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남이 아니기에 다양한 장기와 재능을 갖추어야만 카사노바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끊임없는 자기관리가 필요한 것이고, 바로 그런 점에서 여자들은 그같은 카사노바에게 환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기에게 두현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 달라는 제안을 하고 마지못해 수락한 성기는 우연을 가장하여 정인에게 점차 다가간다.

독설미녀, 그러나 속은 따뜻한 아줌마

정인은 강릉의 방송국에서 '바른 말 독설가' 역할의 게스트로 주가를 날리게 된다. 모두가 그러려니 지나쳤던 문제에 대하여 가려운 데를 긁어주듯 속시원히 일침을 놓으니 청취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게 된다.


성기와는 여기저기서 우연히 자주 마주치게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음악, 소설에 두루 해박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성기에게 정인은 자신도 모르게 차츰 이끌린다. 사실 그 '내 아내의 모든 것' 리스트는 두현이 작성해 준 것이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정인은 이렇듯 통하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성기 또한 정인에게 조금씩 빠져든다. 요리를 잘 하고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며 서정적 영화의 대사를 읊조리는 미모의 여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질투에 사로잡힌 두현은 만남을 그만두라고 성기를 다그치게 된다. 아내를 '투덜이'라고 치부해 버렸던 두현은 결국 그 또한 외로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많은 장점을 가진 아내를 다시 되찾고 싶어한다. 하지만 성기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며 두현과 우격다짐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성기와의 만남과 대화에서 줄곧 두현과 처녀시절 나누었던 연애를 떠올린 정인은 다시 남편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을 다시 이어준 건 카사노바 성기다.

"주변 공간을 침묵이 잡아먹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 사는 집에서는 소리가 나야 한다."

정인의 이 말은 가족이나 부부간의 참모습은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임을 일깨워 준다.

법정까지 갔던 두 사람이지만 점심시간, 그들은 따스한 한 끼 식사를 같이 하러 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법정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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