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휴고

인간과 동고동락하는 기계의 삶

  • 웹출고시간2012.05.20 18:17:5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누구나 잠든 깊은 한밤중에도 잠들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어쩌다 불 꺼진 거실로 나가보면 낮의 소음에 묻혀 있다가 여기저기 조용히 제 몸 돌아가는 소리를 내는 것들이 있다. 전자제품 중에서도 늘 가동되어야 하는 정수기, 냉장고, 김치 냉장고 등에 부착된 푸르고 붉은 표시등은 마치 눈시울처럼 깜박이며 상시 제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아내가 얼마 전에 기존의 항아리형 김치 냉장고와는 별도로 새로 구입한 키 큰 김치 냉장고는 동그란 불빛의 센서가 문짝에 붙어 있어 마치 외눈박이 거인을 연상케 한다.

생각해 보면 가전제품의 기계류는 식구 수의 몇 배를 상회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물품들은 이제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이며 동고동락(同苦同樂)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지금 사람들의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보라. 지난 해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전력 사고의 혼란과 부작용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기계적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숙고(熟考)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영화 '휴고'는 기계와 기술 문명에 흐르는 휴머니즘에 대한 영화이다. 과학기술 문명이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정서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소통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또한 과거와 현재가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옛 사람들과 하나의 시간대 안에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눈앞에 실현시켜 보여 주는 것이다.


첨단의 기술로 구현하는 가장 고전적 감성

첫 장면은 1930년대의 파리역, 역사(驛舍)의 시계탑 뒤로 에펠탑이 서 있는 아름다운 파리 시내의 전경이 펼쳐진다. 특히 시계탑 안에서 시계의 숫자와 숫자 사이로 보이는 파리의 야경이 뿜어내는 색감은 애니메이션처럼 환상적이다. 최첨단의 영화 기술로 가장 오래된 색깔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표현한다는 것에서 아이러니한 매력이 넘친다.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 음악상, 음악효과상, 시각효과상, 미술상 등 기술적인 면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은 영화로서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또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감독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동안 '택시 드라이버', '비열한 거리' 등 주로 어두운 사회상을 다루어왔던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감독의 이력에 커다란 반전을 안겨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특히 이 영화 속 주인공 소년 소녀의 영화 관람 장면으로 삽입되는 초창기 영화의 여러 장면들은 곧 영화 제작자들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 '기차 도착시간'과 영화의 거장 조르주 멜리아스의 '달나라 여행'은 이들에 대한 마틴 스콜세지의 헌사이다.


주인공 소년 '휴고'는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역 안의 시계탑 안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시계태엽과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이곳은 휴고의 유일한 보금자리이다. 원래 시계지기인 삼촌이 살던 곳이었지만 주정뱅이 삼촌은 이곳을 휴고에 맡긴 채 종적이 묘연하다.

휴고는 시계를 관리하며 역 안의 인형 가게에서 수시로 인형 부품들을 훔친다. 하지만 어느 날 가게 주인 조르주 할아버지에게 들켜 모든 걸 빼앗기는데, 거기에는 아버지가 남긴 수첩도 포함되어 있다. 수첩에 모사된 기계장치와 로봇인형의 그림을 보고 할아버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끝내 수첩을 휴고에게 되돌려주지 않는다. 휴고는 수첩을 되찾기 위해 할아버지의 집에 갔다가 또래 소녀 이자벨을 만나고 둘은 친구가 된다.

기계로 인간의 사랑을 확장하다

"고장 난 기계를 보면 슬퍼.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니까. 사람도 쓰임을 잃으면 고장 난 거와 같아."


휴고는 이자벨에게 애타게 수첩을 찾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로봇인형을 작동시킬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수첩에 그려져 있던 열쇠였던 것이다. 그래서 휴고는 수첩에 그려진 열쇠를 만들어보려 애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수첩속의 그려진 열쇠가 이자벨의 목걸이에 달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덕분에 둘은 수첩 없이도 로봇 인형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로봇 인형이 펜으로 묘사한 내용은 뜻밖에 '달나라 여행'을 주제로 한 영화 포스터였다. 로켓이 하늘로 날아올라 달의 눈(眼)을 뚫고 달에 안착하는 내용의 그림이었다. 이 '달나라 여행'은 놀라운 상상력과 환타지적 요소를 결합해 만든 것으로 영화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영화 제작자인 조르주 멜리아스가 바로 휴고의 수첩을 되돌려 주지 않은 이자벨의 양할아버지 조르주 멜리아스였던 것이다. 위대한 영화 제작자였던 그가 1차 세계대전으로 영화 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서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역사(驛舍) 안에서 자신의 과거 신분을 감춘 채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르주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가져온 '달나라 여행' 그림을 보고, 자신이 그 로봇 인형을 만들어 박물관에 기증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 인형에 자신의 상상력과 영혼을 불어넣었음을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작동시킨 인형이 '달나라 여행'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고쳐드립니다.

한편 파리역의 역무원은 특별히 나쁜 인물은 아니지만,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거리의 고아는 보호받아야 되므로 당연히 고아원에 넘겨야 된다고 믿기 때문에 끈질기게 휴고를 잡으려고 추적한다. 쫓기던 휴고가 선로에 떨어져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역무원이 기차에 치이기 직전의 휴고를 끌어올려 목숨을 구해주는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다. 역무원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왼쪽 다리를 잃은 아픔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역 안의 꽃집 아가씨를 사랑하지만, 결정적인 사랑의 고백 순간에 의족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고 만다. 휴고가 의족을 고쳐주자, 역무원은 자신감이 생겨 꽃집 아가씨와의 사랑을 이루어간다. 자신의 솜씨로 사랑이 성사되어가고, 역무원과의 따뜻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자 휴고는 "나는 이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기계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어. 기계는 모든 부품이 완벽하게 들어맞을 때 움직일 수 있잖아. 그러면 이 세계 안에 있는 나도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역할이 주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해"라고 이자벨에게 말한다. 고아로 떠돌다 좀도둑질까지 하는 처지였지만, 자신이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존재임을 각성하는 순간이다.

'시네마천국'에서 어른이 된 토토가 지난 영화필름을 천천히 돌리며 과거의 행복한 순간들을 회상하듯, 영화는 조르주 멜리아스의 회고전이 열리고, 마침내 조르주의 새 식구로 받아들여진 휴고와 관람객들이 모두 함께 시간을 되돌리는 영화의 마법 속으로 행복하게 빠져든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