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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베리드'

한 개인의 죽음에 관하여

  • 웹출고시간2011.07.10 16:26:0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죽음의 방식

인간의 죽음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숙명적 죽음과 자발적 죽음……. 전자는 노환이나 병, 사고에 의한 것이고 후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자살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부조리한 삶의 세계는 죽음에 대한 제 3의 방식을 감추어 놓고 있다가, 제 삶의 궤도를 성실하게 순항하고 있는 인간들을 느닷없이 거꾸러뜨린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죽음, 즉 타살되는 죽음이다.

살인에 의한 죽음이라 하더라도 일격에 명이 끊어지는 죽음은 그래도 덜 가혹하다. 그리하여 최고의 검객은 상대가 고통을 느낄 틈을 주지 않고 단숨에 숨을 끊는 사람이라 했던가. 그런 점에서 '베리드'의 납치살해범은 가장 잔인한 악한이다. 이 영화는 서서히 조여 오는 죽음과 맞서는 한 단독자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 주고 있다. 좁은 관 속이라는 극히 한정된 공간, 한 명의 배우만이 등장하는 영화가 관객을 육박해오는 힘은, 수천 명이 등장하는 전쟁영화의 스펙터클함보다도 더욱 긴박하고 강렬하다.

빛, 그러나 절망의 통로

주인공 폴 콘로이는 미국내 군납업체의 한 회사에서 이라크에 파견되어온 트럭기사이다. 사막을 이동하던 도중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고 관 속에 넣어져 생매장된다.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좁고 어두운 관 속,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휴대전화, 라이터, 야광등, 랜턴 정도이다. 지상에서의 평범한 삶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일상의 소품에 불과하지만 폴에게는 절체절명의 생명이자 희망의 도구가 된다. 이들은 모두 빛을 지녔다는 점에서 폴에게는 구원의 메시지나 다름없다.

그러나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한 모든 바깥세계의 사람들과 폴은 소통되지 못한다. 거대한 관료제와 냉혹한 자본의 체계는 일개 트럭기사의 안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FBI는 냉철하고 사무적이며, 회사의 인사담당 관리자는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누명을 씌워 납치되기 전 이미 해고되었음을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그리하여 보험금이나 퇴직금을 지불할 수 없고 더구나 구출에도 관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규명하기에 급급하다. 아내는 계속 부재 중이고 아내의 친구로 짐작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는 장난으로 주인공을 희롱한다. 결국 휴대전화로 인해 주인공에게 되돌아오는 건, 단절과 절망, 상처 뿐이다. 그도 그럴것이 분명 납치범이 관 속에 함께 던져 넣은 휴대전화가 인간의 희망과 온기를 전달하리라고 생각하는 건 처음부터 오산이었다. 단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편의를 위해 인질에게 최소한의 것을 제공했을 뿐이다.

현존하는 인간의 불안

피땀이 배어나오는 거친 살갗, 공포에 질린 눈동자, 거친 호흡, 고개조차 돌릴 수 없는 좁은 공간, 발치에 있는 휴대전화를 집기 위해 핏대가 서도록 사력을 다하는 몸부림, 관객은 꼼짝없이 95분간을 주인공과 같이 사투를 벌여야 한다. 게다가 작은 틈새로 들어온 방울뱀이 독기가 든 혀를 날름거리며 주인공을 위협하고, 라이터 불빛마저 꺼져 영사사고라도 난 것처럼 암흑만이 화면을 뒤덮을 때면 플래시 백조차 보여주지 않는 감독을 원망하게 된다. 보통의 영화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잠시 행복하거나 평화롭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라도 비춰주면, 잠깐이라도 편한 숨을 쉴 수 있을텐데 감독은 도무지 그런 아량도 베풀지 않는다. 좁은 관 속과 몇 개의 물품만이 전부인 단조로운 미장센은 관객의 시야와 호흡마저 불편하게 만든다. 이 영화 시사회에서 왜 산소마스크를 나누어 주었는지 영화를 보면서 그제야 이해가 갔다.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은 이 영화로 "알프레드 히치콕을 무덤에서 돌아눕게 할 천재적인 연출"이라는 버라이어티지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세계적 영화잡지의 평가를 빌려 말한다면 이 영화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감탄할 '지금 여기'라는 인간 현존에 대한 처절한 불안"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극중 캐릭터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17일간의 촬영기간 동안 폴로 분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유보하는 희망

이 호흡곤란의 영화를 끝까지 인내하게 만드는 힘은 결국은 주인공이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지상의 햇볕으로 나서며 가족의 품에 안기는 환희의 마지막 순간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빠, 저러다 정말 죽는 거 아냐·"

"설마, 진짜 죽는 거 아니겠지·"

언제부터인지 내 옆에서 영화를 보고 있던 아이들은 영화 보는 간간이 내게 다짐을 두듯 말했다.

"그럼, 주인공이 저렇게 영화 내내 고생하는 것은 결국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야."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나 수사관들이 엉뚱한 관 앞에서 헤매고 있을 때, 미 공군의 폭격으로 관 속에 쏟아져 들어오던 모래더미가 결국 주인공의 마지막 코마저 덮어버린다. 망연자실한 결말이었다.

상영관에서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욕설을 뱉으며 나갔다는 것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다. 한 선량한 인간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영화가 끝나자마자 내게 항의하듯 따졌다.

"아빠, 안 죽는다며·"

마치 내가 주인공의 죽음에 책임이라도 있는 듯 작은 아이는 눈물까지 담은 눈으로 원망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아직 어려서 모르지만 인생이 항상 해피엔딩은 아닌 거야. 나중에 더 얘기하자."

나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얼른 자리를 피해 내 방으로 들어왔다. 한창 사춘기의 아이들을 쉽게 납득시킬 만한 삶의 모순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은 때로 이 영화보다도 비루하고 참혹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는 삶에 대한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영화 뒷이야기를, 아이들이 좀 더 자란 훗날로 유보해 놓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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