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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아버지'

이 풍진 세상, 너의 희망은 무엇이랴

  • 웹출고시간2010.11.21 18:13:3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한 편의 영화는 시이며 그림이고, 소설이기도 하다. 대형스크린 앞에서 모르는 타인들과 암묵적 공감에 휩싸여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좋지만, 한 편의 예술을 일회적으로 일별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다. 하여 감독의 공력을, 그 삶의 에너지를 좀 더 온전히 받기 위해서는 때로 지나간 장면을 자유자재로 되돌려가며 볼 수 있는'거실 영화'또한 특별하다.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놓치기 아까운 영화가 어디 한둘인가. 때로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세대 간의 공감으로 한 편의 영화를 편안히 감상할 수 있다면'시네마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세월은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시절을 관통해 강물처럼 꾸역꾸역 시공을 넘나든다. 이 영화의 기저에 줄곧 낮은 베이스 톤으로 깔려 안개처럼 관객의 마음을 휩싸고 도는 노래 '희망가'는 애절하다. 노래 '희망가'는 마치 영화관의 팝콘처럼 영화를 감상하는 감칠맛을 더해준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노래의 제목은 희망가이지만, 그 내용과 멜로디는 세상을 탈속하고 싶은 서민들의 애환이 환(丸)처럼 농축되어 있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60~70년대 농촌의 가난한 아버지다. 그 시절 풍진세상을 만나, 자식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질곡의 삶을 기교를 줄인 영상으로 관객 앞에 내 놓았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도, 관객도, 모두 그 시절 농촌의 가난한 아버지가 일구어낸 우리나라의 자식들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위대한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평범한 아버지다. 가장이라는 굴레를 거쳐, 이제 노인이 된 우리들 아버지의 초상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함께 이 영화를 본 나의 아들은 "아빠,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왜 아빠가 중학교에 가지 못하게 해·"라고 묻는다. 이제 우리나라 보통의 삶에서 상급학교로의 진학은 당연한 것이자 의무가 되어 버렸다. 학교에서 공부 할 수 있다는 그것 하나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요즈음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어른과 아이 모두 자기 삶의 자리를 추슬러 보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공감(共感)으로 빚어진 삶의 페이소스(pathos)


영화는 타임머신처럼 홀연히 40년 전의 '그때 시절'로 우리들을 되돌려 준다. 마치 내 주변의 옛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다. 잊고 있었던 오래된 풍경과 소리 그리고 언어들을 영화는 새록새록 일깨워주고 있다. 거기에 그 시절의 해학과 위트를 주면서 중년의 관객들은 그저 자신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바스락'하고 깨어먹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서 씹히는 맛과 향기는 온전히 자신의 기억회로에서 우려낸 진짜 맛과 향기일 것이다.

호적상 나이로 서로 '형님입네, 동생입네'하고 티격태격하는 아버지와 친구의 모습은 바로 중년관객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다. 농촌의 아버지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외도(·)는 읍내 다방 미스 김과 노닥거리는 것. 아버지 친구는 걸핏하면 읍내 다방 미스 김을 거론하고, 몇 푼 안 되는 술값 같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장면은 오히려 애교스럽다. 배가 고파 끼니를 술찌게미로 때울 수밖에 없던 봉구의 현실과 술에 취한 채 학교에 등교한 봉구를 매로 다스렸던 선생님, 그리고 나중에 가난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임을 안 선생님이 사과의 의미로 자신의 도시락을 갖다 먹이는 장면은 다소 상투적이지만, 여지없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멀쩡한 고무신을 엿과 바꿔먹는 코 찔찔이 친구, 그리고 신발을 잃어버린 친구 아버지의 황당한 표정과 엉뚱하게 애꿎은 강아지가 혼나는 희화적 장면들을 대하면 슬며시 미소가 풀려나온다. 그 미소에는 공감으로 빚어진 삶의 페이소스(pathos)가 진득하게 담겨있다.

#희망은 다시 흐르고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연극을 준비한 초등학교 교사와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들. 아버지는 주변 이웃들을 선동해 연극연습이 한창인 학교로 난입하여 "처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뭔 노무 광대 짓이여!"라며 소리친다. 이 아버지의 대사에 등장하는 '먹고 살기도 힘든 것'은 현실이고, '광대 짓'은 희망의 다른 말이 아니었을까. 이때의 아버지는 철저하게 무식하고 무지한 가해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버지 자신이 어쩌면 거대한 자본의 피해자이면서, 자신의 작은 힘을 이용해 또 다른 대상을 핍박하는 모순을 보인 것이다. 그 모순은 결국 배운 자식들에 의해 균열을 일으킨다. 평생 농부가 자신의 천직임을 알고 살아 온 아버지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완고하다. 자신의 삶의 형태를 지켜내기 위해(그것이 옳다고 여겼고, 사실 그것 말고는 배운 것이 없기에) 힘겨운 틀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반전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야학을 통해 열악한 농촌현실을 극복하고자 했던 큰아들이 결국 버거운 삶에 좌절하여 급기야 자살을 하고 만 것이다. 큰 아들의 자살을 계기로 아버지의 삶은 흔들린다. 그리고 그렇게 반대하던 둘째 아들 기수의 연극에 참석하면서 아버지는 자신만의 틀이 무너짐을 느낀다. 고단한 하루의 삶을 그저 막걸리 한 잔에 털어버리며 '희망가'를 부르던 아버지의 시선이 말없이 둘째 아들의 어깨에 얹혀지고 있었다. 그렇게 희망은 진화하여,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눈이 아닌, 가슴으로 보는 영화


영화 '아부지'는 요즈음의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어쩐지 허술하다. 장규성 감독의 '선생 김봉두'를 연상시키는 개그맨 같은 초등교사(박철민 분) 특유의 말장난은 저예산 영화의 몸부림 같아 애처롭기만 하다. 하지만 그것을 저예산의 현실이라고 하기엔, 의도적인 엔틱풍의 기법이 은연중 감추어져 있다. 작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아류작이라는 세간의 평을 넘어, 직접 접해보면 또 다른 감동이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다. 거실 소파에 편히 앉아 비디오로 영화 '아부지'를 감상하는 맛은 보다 색다를 것이다.

비 내리는 처음 장면과 눈 내리는 엔딩장면은 감독의 의도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소를 돌보며, 위인전 <시바이쩌>를 읽던 주인공 기수는 친구들과 노느라 그만 소를 잃어버린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들판에서 기수는 소리쳐 '누렁이'를 부른다. 소 '누렁이'를 찾은 아버지는 화가 나서 그 길로 기수의 교과서를 빗속에 던져 버린다. 빗속에서 시작하던 영화는 이제 마지막 엔딩 장면을 눈 내리는 벌판으로 끌고 간다.

아버지가 빗속에 내던져버린 교과서로 공부한 아들이 시험 보는 날 아침, 소 '누렁이'에게 귓속말로 "누렁아, 니가 우리 집 농사 다 지어불었는디. 내 맘 알제·"라며 아버지는 소의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들판을 누렁이가 끄는 수레를 타고 아버지와 주인공 기수가 함께 시험을 보러간다. 그 길은 시험을 보러가는 길이기도 하고, 누렁이를 팔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동안 아버지의 희망이었던 소 '누렁이'는 이제 기수의 책이 되고 입학금이 될 것이다. 눈 내리는 벌판에 아득히 멀어져 가는 수레는 '희망가'를 남긴 채 멀어져 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희미하지만,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아들의 목에 걸어 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식에게 자기 살을 파 먹이는 염낭거미의 모습과 자꾸만 겹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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