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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스탠리의 도시락'

오감(五感)을 즐겁게 하는 도시락 영화

  • 웹출고시간2012.08.19 16:38:5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도시락의 추억

지금의 30대 이후라면 누구라도 도시락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계란프라이가 덮여 있던 양은 도시락, 조금 더 진화한 스탠 보온 도시락, 난로 위에 겹겹이 쌓여 있던 네모난 도시락들, 도시락 속의 김치가 익어가던 냄새 등……. 책가방에서 덜그럭거리던 빈 도시락 소리까지 이제는 추억의 향음(鄕音)이 되었다. 요즘의 급식처럼 영양 권장량을 고려한 식단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먹으면 다양한 식품군은 저절로 섭취되었다. 게다가 엄마의 손맛을 느끼며 학교에서 먹는 점심시간의 도시락은 안온하고 따스했다.

요즘 학생들은 각자의 점심이 없다. 엄마들은 기겁할 말이겠지만 가끔 도시락이 부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옹기종기 모여 각자의 색깔과 향취가 담긴 도시락을 나누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무구한 눈동자의 인도 아이들

인도 영화의 강점은 큰 눈을 가진 아이들인 것 같다. 유난히 맑고 커다란 아이들의 눈동자는 그들이 처한 상황에 더욱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무구한 그들의 눈망울에는 어떤 가식이나 거짓도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천진과 따스함을 담기에 아름다운 눈동자다.

인도 뭄바이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생 스탠리 또한 누구한테 얻어맞고 다니는지 얼굴은 멍투성이지만, 언제나 교정 한 켠에 있는 성모상에게 기도를 드리고나서야 교실에 들어오는 착하고 순진한 아이이다. 스탠리는 글쓰기, 만들기, 노래, 춤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그런 스탠리의 유일한 약점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래는 모습은 우리의 5,60년대 풍경과 다르지 않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들이켜는 광경은 묘하게 엄마젖을 물려 애쓰는 아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먹는다는 행위는 생명 유지를 위한 인간의 원초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스탠리는 기본적으로 이것이 결핍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스탠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을 가진 식탐대마왕 베르마 선생님이다.


그러나 도시락이 없다는 공통점에선 같지만 두 인물이 도시락을 둘러싸고 빚어내는 풍경은 둘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현격하다. 스탠리는 친구들이 가엾게 여겨 어떻게 해서든 같이 먹으려 애를 쓰는데 반해, 베르마 선생님은 모두의 빈축을 산다. 그도 그럴것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는 주제에 자신의 식성대로 가려먹기까지 한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도시락은 누가 권해도 먹지 않는다.

베르마 선생님이 늘 호시탐탐 노리는 도시락은 4학년 F반에서 가장 부자인 아만 멜로의 4단 도시락이다. 그렇지만 아만을 비롯한 아이들은 스탠리를 먹이기 위해 베르마 선생님을 피할 궁리에만 골몰한다.

도시락으로 선생님과 맞짱뜨기

아이들은 선생님을 피하기 위해 점심 먹을 장소를 중앙계단, 운동장 등으로 둘러대며 베르마 선생님을 따돌린다. 배나온 중년의 남자가 아이들의 도시락을 빼앗아 먹기 위해 온 학교를 헤매며 이리저리 숨가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이 먹을 것을 놓고-그것도 아이들이 가져온 도시락을- 아이들과 진지하게 다투는 것에 대한 개연성이 없다. 아마 이 영화의 최대 약점이 아닐까 싶다.


결국 옥상의 한 켠에서 도시락 만찬을 들켜버린 스탠리와 아이들. 즐비하게 널려 있는 빈 도시락통들을 보고 분노에 솟구친 베르마 선생님은 스탠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면 학교에도 나오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다. 그리하여 스탠리는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데 마침 뭄바이시에서 뮤지컬 공연을 위한 각 학교 대표를 뽑는다는 공고문을 발표한다. 친구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스탠리는 혼자 공원에서 춤연습을 하던 중 공연 관계자의 눈에 뜨여 스카웃된다. 공연에서 오프닝 멘트와 주연을 맡게 된 스탠리는 공연 당일 모든 이들을 감동시킨다.

베르마 선생님은 스탠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학교를 떠나는데 끝내 베르마 선생님이 왜 도시락을 못 싸오는지, 아이들 도시락에 탐을 낼만한 그럴듯한 이유를 기다렸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 스탠리와 도시락을 나눠먹는 훈훈한 장면이 끝내 나오지 못한 것이 어쩐지 관객을 허전하게 했다.

먹을 것을 나누는 따스하고 원초적 기쁨

스탠리는 오토바이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식당을 운영하는 삼촌 집에 얹혀 산다. 이러한 스탠리의 가정환경은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삼촌은 스탠리의 학교 생활이나 점심 도시락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다만 조카를 떠안게 되었다는 울분을 스탠리에게 주먹질하는 것으로 해소하며 어떻게 하면 스탠리를 부려먹을 수 있을까 하는 데만 골몰하는 사람이다. 그런 스탠리에게 유일한 위로가 있다면 식당 주방장 아크람이다. 오히려 아크람이 친삼촌처럼 스탠리를 알뜰하게 돌보아 준다. 스탠리가 도시락을 싸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아크람은 스탠리를 위해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준다. 혈연 관계는 아니지만 스탠리의 잠자리를 따스히 보살펴 주고 먹을 것을 챙겨 준다.


이 영화는 어린 나이에 무엇보다 의식주를 따뜻하게 제공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준다. 아크람의 스탠리에 대한 안쓰러움이 담긴 마음과 식당 주방장의 기술이 융합된 스탠리의 도시락은 아마 세계 최고의 도시락이 아니었을까. 도시락 경연대회에 출품해도 우승을 할 만한 도시락이었을 것이다. 스탠리는 그 도시락을 선생님 친구들과 나누며 행복한 맛을 선사한다.

요리의 기쁨과 행복

형형색색 신선한 천연 식재료의 풍부하고 예쁜 색감은 미감에 앞서 시각적 즐거움까지 미리 선사한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과정의 기쁨을 새삼 일깨워준다. 요리도 하나의 작품이며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예술적 행위와 더불어 매우 헌신적인 일이다. 문학과 미술 음악 등의 창작 결과물은 영혼을 살찌우지만 요리의 결과물은 정신과 육체, 즉 심신을 모두 건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들보다 결코 뒤처지지 않는 예술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영화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촬영하여 아이들의 수업에 지장이 없게 했으며 하루 5시간을 넘지 않게 촬영했다'는 자막은 우리 영화에도 시사점이 크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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