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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헬프'

흑백을 넘어선 여인들의 우정과 용기

  • 웹출고시간2012.02.12 18:34:0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피보다 진한 것은 진실

"피보다 진한 것은 진실의 먹물이다"

중국 태생의 세계적 작가 루쉰의 말이다. 여기에서 '먹물'은 '필름'으로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 영화는 물론 팩트(사실)가 아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는 때로 팩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바로 진실성이다. 그리하여 진실성이 담긴 좋은 영화는 긴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1960년대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흑인의 인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사랑스럽고 경쾌하게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흑인노예를 다루는 낙인이나 채찍질같은 잔혹한 장면이 없어도 가슴깊이 '차별'에 대한 근원적 메시지를 남긴다. 젊고 혁신적인 케네디 대통령의 시절에도 백인우월주의자들인 KKK단의 흑인무차별 살상, 극심한 인종차별과 같은 전근대적 사고가 존재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흑인에 대한 인권탄압이 가장 오랫동안 혹심했던 남부 미시시피주가 배경이고 보면 그다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다

"그전에는 내 삶이 어떤지 아무도 물어오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흑인가정부로 살아갈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중년의 흑인여성 에이블린, 작가지망생인 백인상류층 미혼여성 스키터가 책을 쓰기 위해 에이블린에게 삶의 내력을 묻자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백인들의 눈총이 두려워 입을 열지 않던 에이블린은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떠올리며 차츰 스키터에게 마음을 연다. 그동안 17명의 백인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작 자신의 아들은 직접 돌보지도 못했던 에이블린은 장성한 아들이 건설현장에서 백인들의 무관심과 방치로 죽게 된 상처를 가슴에 화인처럼 안고 있다. 그러한 희생으로 백인아이들을 키워주었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 상전이 되면 또다시 그들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받게 되는 아픔도 감수해야 한다.

에이블린의 믿음직한 이모 같은 느낌의 연기가 무척 푸근하고 인상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없이 주변인들을 지켜낼 것 같은 사람이다. 자신을 억압하고 고통을 주는 백인들이지만 그들의 아기는 정성과 사랑으로 돌본다. "너는 친절하고, 너는 똑똑하고, 너는 가장 소중한 존재야."

예쁘게 태어나지 않아 친엄마의 외면을 받는 서너살 짜리 백인 아기 메이 모블리에게 보모 에이블린은 늘 이렇게 노래해 주며 자긍심을 심어 준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 삶을 버티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주문이었을 수도 있다. 에이블린이야말로 친절하고 똑똑하며 멋진 여성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에이비가 내 진짜 엄마야'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진실하고 헌신적이다. 일해왔던 집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나면서도 여주인에게 자기가 키워왔던 여주인의 친딸을 '우리 아가도 좀 사랑해줘요'라고 부탁한다. 에이블린 역을 맡았던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이 영화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미국배우조합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가진 자들의 소유의식과 위선

영화의 주무대인 잭슨 마을은 당시 백인상류층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의 사교모임은 거의 자선행사를 빌미로 이루어진다. 부인회에서는 늘 아프리카 결식아동 돕기 모금이나 물품모으기 행사 등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행사를 구실로 그들은 흑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카드게임과 댄스파티를 벌이곤 한다. 그들에게 있어, 특히 사회적 직업이 없는 부유한 상류층 백인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자선행사가 취미활동이자 사회적 치장일 뿐이다.


백인 여인들은 '아프리카의 결식 아동을 돕기 위해' 그들이 부리는 흑인들이 만든 산해진미아래 화려한 옷차림으로 모여 삶을 즐긴다. 가장 가까이 있는 흑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언제나 누군가를 돕는다는 구실을 내세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흑인과는 화장실도 같이 쓰지 않을 정도로 경원시하고 경멸하면서 그들의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아이를 맡긴다는 점이다. 즉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생명과 직결된 것을 그들로부터 얻는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가장 가까이서 그들의 사생활을 접하는 흑인 가정부들이야말로 그들의 위선을 잘 알고 있다. 흔히 하는 말에 위인의 반열에 오른 이들도 자녀로부터 진정한 존경을 받는 이는 드물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근거리에서 인간의 품위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늘 설움과 멸시 속의 흑인가정부들이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모시고 사는 백인 여주인들의 사소한 흉을 보는 것이다. 음식이며 바느질 솜씨, 육아 등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거만한 시선으로 흑인들을 대하는 그들에게 스스로 아무리 권위를 세운들 흑인들의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 중에서도 자선재단 이사장이란 직함으로 가장 위선적이고 허식적 인물인 힐리가 마을 소식지 '잭슨저널'에 실린 물품 기부 문구로 인해 날벼락처럼 수십 개의 변기를 받게 되는 것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이는 '낡은 코트'를 '낡은 변기'로 바꾼 잭슨저널 기자 스키터의 아이디어였다. '이 달의 정원'으로 뽑힌 자신의 푸른 정원에 설치미술처럼 여기저기 놓여있는 변기들에 둘러싸인 힐리가 울부짖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까.


◇가족애보다 더 끈끈한 여인들의 우정

하지만 백인 여주인들이 모두 힐리같지는 않다.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온 스키터는 또래 친구들의 안온한 결혼생활에는 관심도 없이 신문기자나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쓴다. 특히 자신과는 한 마디 상의없이 자신을 키워줬던 흑인 보모 콘스탄틴을 내쫓은 어머니와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스키터는 친구 힐리의 집에 놀러갔다가 '유색인 화장실 발의안' 운운하는 힐리의 말에서 흑인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에이블린으로부터 시작된 흑인가정부들의 인터뷰는 점차 잭슨 마을의 모든 가정부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이르른다. 처음에는 책으로 인한 파장이 두려워 발언을 꺼렸던 흑인 여인들은 차츰 한두 명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바깥에 있는 흑인 화장실을 쓰지 않고 실내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힐리의 집에서 쫓겨난 미니의 수모가 큰 영향을 끼쳤다. 미니는 이후 힐리가 좋아하는 초콜릿 파이를 만들어 갖다 주는데 그 재료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힐리는 이 사실을 알고도 창피함에 미니에게 제재를 가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미니가 힐리에게 쫓겨난 것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는데, 순수하고 마음씨 따뜻한 여주인 셀리아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헤프고 실없는 웃음 속에서 말못할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던 셀리아. 남편 몰래 세 번씩이나 혼자만의 유산을 치러내야 했던 그녀는 미니를 만나 비로소 자신의 아픔을 위무받을 수 있었다. 미니에게서 요리를 배운 그녀가 오로지 미니를 위해 밤새워 성대한 만찬을 차려놓고 미니를 놀라게 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유쾌하며 감동적이다.

◇개성있고 당찬 여인들의 아름다움


흑인가정부들의 아픔을 기록한 '헬프'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책 출판에 참여했던 에이블린, 미니를 비롯한 가정부들은 난생 처음 인세라는 것을 받게 되고 새롭게 주어진 삶의 경험에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책이 발간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그들의 삶이 마법처럼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출판사의 전속작가로 일하게 된 스키터, 자신도 작가의 꿈을 갖게 된 에이블린, 폭력적인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 미니…….

이 영화의 문제 제기 방식이나 해결 기법은 과하지 않다. 안락한 식탁에서 차 한 잔 나누며 누군가 조근조근 자신의 아픔을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스러하게 풀어놓는 편안함이 강점이다. 거기다 밥 딜런과 레이찰스의 음악, 미국 남부의 자연 속에 어우러진 당시의 생활 풍속 등을 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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