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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12.20 01:17: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선시대 중엽의 어느 고을, 천하에 박색인 춘향이가 살고 있었다. 얼굴이 너무 못생겼는지라 그녀의 얼굴을 보는 사람은 모두 외면하며 혀를 차곤 하였다. 그런 춘향이가 사또 자제 이몽룡을 사모하여 상사병으로 몸져누웠다. 보다 못한 어미 월매가 미모가 뛰어난 몸종 향단이로 하여금 몽룡을 유혹하 하여 방에 들게 한 다음 한밤중, 춘향과 바꿔치기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이를 알게 된 몽룡은 모녀를 나무라고, 이에 월매는 울면서 춘향의 상사병을 고백한다. 이를 가엾게 여겨 이 도령은 춘향이에게 정표로 손수건을 남기고 부친을 따라 한양으로 간다. 그런 이 도령을 기다리던 춘향은 그리움에 지쳐 한양 길 고갯마루에서 그가 남기고 간 수건으로 목을 매어 죽는다.

이상은 춘향전의 이본(異本) '박색춘향전'의 내용이다. 아마 옛날에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춘향전'에 싫증을 느낀 누군가가 천편일률적 이야기를 이렇게 비틀었나보다.

'춘향전'을 패러디한 '방자전'을 보며 자연스레 '박색춘향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 이야기의 외연을 넓히는 '방자전'의 날렵한 상상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생각에서이다. 우리의 민족 DNA에는 이렇게 한 작품의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물의 각도에서 이야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다면적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본다. 이는 '춘향전'이 기록문학이긴 하지만 그 뿌리는 구전문학인 설화에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상상력이 가미될 수 있는 유연성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2010년 '방자전'의 출현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고 그 구전의 특성상 오히려 늦은 감마저 있는 것이다. '방자전'은 우리의 모든 고전 문학이 무궁무진한 창작문학의 보고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고전이 현대의 예술문화 창달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뚜렷이 보여 준다. 춘향이 '절개의 상징'으로 이몽룡은 '정의감의 수호신'으로 우리들의 정서에 깊이 고착화되어 있던 이미지를 단번에 무너뜨리면서 인물들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 '방자전'은 변신된 이야기의 강한 흡인력마저 갖추고 있다.

'춘향전'이란 소설이 나오기 전, 사실은 '춘향전'이 춘향이를 위한 방자의 놀라운 사랑의 배려에 의해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으로 영화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리 고전의 대표적 명작이라던 '춘향전'의 이야기가 한낱 '방자전'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위작이었다면· 그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난다고 믿고 싶어 하는 대중들을 위한 전형적인 팬서비스 차원의 소설이라면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발칙한 상상으로부터 영화는 출발한다. 그 동안 영화 '춘향전'이 수없이 리메이크 되었어도 언제나 하류인생으로, 조연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몸종 방자가 단숨에 주연으로 승격된 영화가 바로 '방자전'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절대치는 무엇일까. 바로 남성미다. 방자 역의 김주혁은 싸움도 잘하고, 고기도 잘 굽는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싸움을 잘한다는 것'은 바로 여성이 자기 남자에게 기댈 수 있는 최고의 보험이다. 그런데 고기까지 잘 굽는다는 것은 여성의 마음을 읽는 섬세함까지 갖추었다는 것이니 양수겸장이 따로 없다. 거기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이면 어느 여성이 반하지 않겠는가. 다만 몸종이란 신분이 문제였지만, 사실 기생 딸인 춘향도 방자보다 그다지 나을 것 없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시대로 말한다면 '연애상대로는 딱'인 남자가 바로 방자인 것이다. 반면 이몽룡의 모습은 한 마디로 '결혼하기 딱'인 남자다. 고을 사또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그 시대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결혼 조건이다.

춘향은 이성적 매력이 넘치는 방자에게 끌리는 한편 사회적 신분상승의 매개체인 이몽룡에게도 슬쩍 발을 담그는 양다리 걸치기의 명수다. 방자의 사랑 표현은 은근하고 치밀한 반면, 이몽룡의 그것은 양반의 겉치레에 집착하고 표현은 지극히 마초적이다. 거기에다 방자에게는 '작업방법'을 조언하는 참모격인 마 노인이 있음으로 해서 춘향의 마음은 서서히 방자에게로 더 기울어져 간다. 하지만 또 하나의 변수가 있었다. 바로 월매의 '연애지략'도 남다른지라, 방자에게 빠진 춘향이가 이몽룡에게도 몸을 허락함으로써 본래의 '춘향전' 스토리를 근근이 이어간다. 이몽룡은 원전 '춘향전'과는 달리 지극히 세속적인 인물이다. 그런 까닭에 서울로 가면서 춘향이와의 하룻밤 언약서를 지워버리고 깨끗이 단절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춘향이의 농간으로 이몽룡은 방자의 서약서를 읽게 되면서 춘향에 대한 미묘한 심리에 휩싸인다.

영화 '방자전'을 더 맛깔나게 만든 숨은 힘은 단연 독특한 조연들의 설정이었다. 방자에게 '툭 기술' '뒤에서 보기' '은꼴편' 같은 연애기법을 전수해주는 마노인과 이에 맞서 춘향에게 남자를 밀고 당기는 비기를 알려주는 춘향엄마 월매와의 치열한 머리싸움은 관객들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돌게 만든다. 또한 "보다 많은 여자와 만나기 위해 현감이 되었다"는 변학도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묘한 심리적 공감을 경험한다. 마치 그의 말은 '남자들이 권력과 명예와 부를 탐하는 심리의 저변에는 성적 욕망이 깔려 있다.'라고 했던 프로이드의 말을 뒷받침해주는 듯하다.

영화 '방자전'에서 춘향과 이몽룡과 방자간의 삼각관계도 흥미롭지만, 훗날 서울로 올라가 장원급제한 이몽룡이 남원 현감으로 오는 변학도와의 인연을 미리 설정해 두는 반전의 기술도 뛰어나다. 정치적 출세욕심이 강한 이몽룡은 내시로부터 "성공하려면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듣게 됨과 동시에 변학도에게서도 "왕족들은 참 이상해요. 미담 엄청 좋아하죠. 벼슬도 그냥 막 내리고"라는 말을 듣고, 그로부터 출세할 수 있는 힌트를 얻는다. 자신과 춘향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미담)-주로 춘향의 정절을 부각시키는-를 통해 변학도라는 희생양을 만들어 높은 벼슬을 얻으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성(性)에 얽힌 현대인의 욕망과 사회적 신분상승욕구, 그러면서도 불변의 사랑을 꿈꾸는 우리들의 모순된 욕망을 군데군데 송곳처럼 드러낸다.

'일편단심 춘향이'를 잊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방자전'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전 '춘향전'으로부터 수세기가 흐른 오늘의 시점에서 2010년대의 현대적 여성성도 춘향의 옷을 한번 입어 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앤딩 장면에서 바보가 된 '방자전'의 춘향이는, '춘향전'의 춘향이보다 행복하다. '춘향전' 그 후의 이야기에 춘향이가 시부모될 이의 반대에 부딪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그만 자살한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무한한 사랑을 쏟는 든든한 남자의 등에 업혀 천진한 세월을 보낼 수 있는 '방자전'의 춘향이는 늘 아름다운 사랑의 꿈에 잠겨 있을 것이다. 방자가 불러주는 감미로운 '사랑가'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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