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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고지전'

전쟁, 풀리지 않는 삶의 암호

  • 웹출고시간2011.12.11 19:30:4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거대한 전장터, 한 개인의 죽음

산 옆의 외딴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모윤숙,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中

수십만 전사자의 수치보다 한 사람의 개별적인 죽음은 강렬하다. 죽음으로써 반추되는 한 생애의 소소한 사연들이 남은 자의 가슴을 치기 때문이다. 모윤숙 시인이 6·25 전장터에서 어느 젊은 소위의 주검을 만났을 때처럼…….

시인은 6·25 전란 시 피난 도중 광주 산골짜기를 헤매다가 이 죽어 넘어진 젊은 장교와 맞닥뜨렸고, 혼미한 정신의 와중에서도 나뭇가지를 들어 떨리는 손으로, 문학적인 표현 따위를 생각할 겨를 없이'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를 땅에 썼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웅혼한 조국의 노래는 후세의 전후 세대에게 뜨거운 조국애를 불러 일으키는 애국시의 전형이 되었고, 나 또한 군대 시절 전방에서 무료하게 보초를 서다 문득 이 시를 떠올릴 때면 결연히 몸을 추스르며 그 비장미에 가만히 몸을 떨곤 했다.

모윤숙 시인은 당시 야생의 표현밖에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 전장의 죽음에 그 어떤 문학적 수식이 필요했겠는가. 영화도 마찬가지다. 총알과 파편에 팔다리가 끊겨 너덜거리고 육탄전으로 서로의 피가 뿜어지는 데 어떤 영화적 장치로 그를 덮을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고통에 대한 현미경

영화 '고지전'은 6·25 전란 시 군사적 전략 요충지인 '애록고지'를 빼앗기 위해 피아간에 얼마나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는 백마고지 전투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6·25 전쟁으로 인한 대한민국 국군의 전사자 수만 14만이 넘고 부상과 실종자까지 합하면 98만이 넘는다고 한다.

만 단위 이상의 숫자란 그저 얼얼할 뿐 피부에 현실감 있게 와 닿지 않는 수치이다. 따라서 가지가지의 고통으로 사라져 간 생명의 숫자가 수십 만이 넘는다 해도 사람들은 그 죽음의 실체가 도저히 실감되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저 많은 인명 피해가 났구나 하는 정도로 여겨질 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죽음의 과정은 얼마나 큰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었던가. 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에게 얼마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각인시키는 것인가. 따라서 지휘관, 장교, 병사 들이 어떻게 스러져갔는가 그 구체적 죽음의 현장을 영화에서 세밀히 묘사하는 것은'잔혹하다''끔찍하다'고 하여 외면할 수 없는'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어째서 마치 친절이나 베푸는 것처럼 비참한 광경들을 지나치게 세밀하고도 절망적으로 느껴지도록 묘사하였는가?"

오늘날의 적십자를 탄생시킨 앙리 뒤낭은'솔페리노의 회상'이란 책 뒷부분에서 이렇게 자문하고 있다. 이탈리아 통일 전쟁인 솔페리노 전투를 생생히 기록하여 적십자 창설의 계기를 부여하고, 제 1회 노벨평화상을 받은 앙리 뒤낭이 참혹한 병사의 시체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그 이유는 오직 단 하나, 한 생명이 얼마만큼 소중한 것인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영화'고지전'에서 가장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도 열일곱 한 소년병사가 죽어가는 장면이다. 고지전에 투입된 악어부대의 부대원들이 수색 도중 인민군측 특등사수의 공격을 받는다. 목표물을 사살하는데 2초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2초'라는 별명이 붙은 이 저격수에게 소년병 남성식은 유인표적이 되어 몸의 곳곳을 한 발 한 발 맞아가며 서서히 죽어간다.

주인공 강은표 중위(신하균 분)은 어떻게해서든 살려보려 애쓰지만 김수혁중위(고수 분)은 2초를 찾아내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차갑게 저지한다. 부대원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때로'전선야곡'을 처연히 불러 향수를 달래주던, 군인이기 전에 소년이었던 남성식……. 수만 명의 전사자 수치가 전해주는 둔중한 아픔에 앞서, 남성식 한 개인이 한 발 한 발 몸을 찢기며 죽어가는 장면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스라치는 분노의 고통을 느낀다. 울부짖는 강은표를 향해 김수혁은 말한다.

"남성식이 오늘만 죽은 게 아니야. 어제도 그제도 수많은 남성식이가 죽었어."

◇전쟁, 풀 수 없는 삶의 암호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며 젊은 아빠였던 그들 하나하나의 죽음을 떠올리면 그 억울함이 생의 풀 수 없는 암호처럼 아득하다.


고지전의 주인공 악어부대 대원들은 휴전 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끈질기게 모두 살아 남았다. 그들의 생존에는 적을 사살한 것뿐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같은 아군을 몰살한 처절한 전쟁 트라우마도 드리워져 있었다. 살아남은 그들 목숨은 전쟁의 참혹한 부산물이었던 것이다. 김수혁의 말대로 그들에게 있어 전쟁의 승리란 '살아남는 것'이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현장의 병사들에게 이념이나 명분은 너무도 먼 이야기였다.

애록고지를 번갈아 탈환하는 과정에서 피아간에 일정 장소에다 술이나 편지 사진 등을 남기는 것도, 사실 서로에게 싸울 명분이 없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이었다.

휴전 협정이 발표되어 모두들 기뻐하는 것도 잠시 악어부대는 정전 효력이 발생하는 12시간 동안 다시 싸울 것을 명령받는다. 휴전선의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하는 양측의 첨예한 신경전은 다시 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아이들 사진을 쓸어보며 기뻐하던 아빠도, 사진 속 소녀에게 마음을 주던 청년도, 광복군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전선에서 조국을 지키던 나이든 애국자도, 결국 12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한다. 끊임없이 돌덩이를 산 위로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 신화는 현대에서도 인간의 삶에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고지전에서 인물들이 풀어야 할 암호는 '왜 싸우느냐'이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적이라 하여 죽고 죽이는 행위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영화의 앞부분에서 "니네들이 이 전쟁을 왜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는 거다"라고 확신에 차 있던 인민군 장교 현정윤은, 다시 애록고지의 비밀 장소에서 조우하게 된 강은표 중위가 왜 전쟁을 하는가 다시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 그때는 확실히 알고 있었어. 그런데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렸어."

이는 전쟁의 무의미함을 상징한다. 몇몇 리더의 이념적 대립이나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 전쟁이 시작되지만 종국에는 그러한 명분조차 사라져 버리고 참혹한 살육만이 도드라져 남는다.

지구상의 국지전이나 내전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마 인류가 종속하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의 부딪침에서 생겨나는 갈등 구조는 어쩔 수 없이 인간 본연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구상에서 전쟁의 종식이란 곧 인류의 수명이 다하는 날이 아닐까 하는 비감한 생각까지 든다.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을 나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유쾌히 아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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