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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4.22 17:50:5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 일흔 다섯 아버지, 남자를 사랑하다

"파티에 가면 남의 아내보다 그녀의 남편에 더 눈이 가곤 했지."

만약 75세의 당신 아버지가 '실은 나 게이다'하고 고백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빈 자리에 낯선 남자와 아버지가 다정한 연인으로 함께 누워 있다면? 만약 이러한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아마 부자간에 의절하거나 아버지에게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지 않을까?

하지만 38살 독신인 아들 올리버는 아버지의 모든 수발을 들어주며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쓴다. 아버지가 커밍아웃하고 젊은 남자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폐암 말기 선고를 받자 올리버는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간호한다. 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44년 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억누르고 결혼생활을 인내했으며, 아내가 죽자 비로소 새 삶을 살겠다고 선언했다. 아내가 먼저 청혼했을 당시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시켰지만 그녀는 "내가 당신을 고쳐 주겠다"며 결혼을 강행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루이 조르주에 의하면 이성애 문화에 비해 동성애 문화가 훨씬 포괄적이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중세 기사들과 가톨릭 사제들의 우정이나 우리 옛 선비들의 친교문화도 넓게 본다면 동성애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욕이 배제된 사랑이었다. 일부 의학자들은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동성애에 대해 뇌의 후두피질 기능장애나 호르몬 영향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동성애자를 선천성 질환자로 분류함으로써, 동정의 대상으로 보며 비정상인으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인권 문제의 위험 소지도 안고 있다.


# 슬픈 사람이 파티에는 왜 왔나요?

영화는 평범한 일러스트로서의 올리버의 삶을 따라가지만 자주 과거로 미끄러진다. 각자 방을 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건조한 결혼 생활을 오래 지켜본 올리버는 사람을 만나는 일, 특히 이성을 만나 교제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남편으로부터의 사랑이 볼에 닿는 가벼운 입맞춤이 전부였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과 교감마저 독특한 방식으로 표출하곤 했다. 아들에게 자주 총을 겨누는 손동작을 하고 아들은 그에 걸맞은 몸짓으로 죽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던 것. 심지어 성의없이 '죽어 버리면' 어머니의 주문에 맞춰 다시 '실감나게 죽어야' 했다. 이것은 보통의 어머니가 사내애들과 격의없이 껴안고 장난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상심에 차고 그로테스크한 표정의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죽음을 지시하는 장면은 좀 섬뜩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어른이 된 올리버가 친구와 연인도 없이 우울하게 지내는 것은 부모와의 어린 시절에 깊은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아버지가 남긴 잭 러셀 테리어 종인 개 '아서'이다. 말은 못해도 주인이 쓰는 어휘를 대강은 알아듣는 아서의 눈빛이나 고갯짓은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변주되는 연기력을 발휘한다.

그동안 영화에 등장하는 개들의 연기는 개답게 뛰고 구르고 탐정같은 활약을 펼치는 역동적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서의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의 열연은 견공이라 부를 만큼 탁월하다. 음울히 혼자 지내는 주인을 바라보는 아서의 눈빛은 주인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하다.

직장 동료들은 외톨이로 지내는 올리버를 보다 못해 파티에 데려간다. 각기 저명인사들의 캐릭터로 분장한 이 파티에서 올리버는 프로이트 박사가 되어 낯선 사람들의 심리 치료를 맡게 된다. 올리버 앞에 놓여 있는 장의자에 미모의 한 여자가 와서 눕는다. 후두염에 걸려서 말을 못한다는 여자는 올리버의 눈을 응시하며 수첩에 이렇게 적는다.

"슬픈 사람이 파티에는 왜 왔나요?"

# 사랑의 시작은 미숙해도

자신의 정신을 관통당한 그 한 마디에 올리버는 급격히 그녀 '안나'에게 끌린다. 프랑스 여배우라는 그녀의 아름다움보다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그녀에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열린 것이다.


둘의 사랑을 방해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떠돌이 생활을 즐기며 집보다 호텔을 더 좋아하는 안나의 자유분방함과 올리버의 인간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둘을 자주 머뭇거리게 만든다. 드디어 올리버가 안나에게 자기 집에 함께 살 것을 제안하고, 안나 역시 짐을 싸서 들어오지만 며칠이 지나도 짐은 가방에 그대로 쟁여져 있다. 풀어지지 못하는 짐은 둘의 마음을 대변한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봐 지극히 조심스러운 둘의 불안함은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배려의 마음은 상대방에게 사랑의 불확실성으로 다가가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안나는 떠나버리고 올리버는 잠시나마 집안에 머물렀던 안나의 체취와 흔적에서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그녀를 다시 찾게 된다. 다시 찾아온 올리버의 집에서 안나는 상자에 담겨 있던 한 장의 '자기 소개서'를 보게 된다. 셔츠의 단추를 가슴까지 풀어헤치고 활짝 웃는 노인(올리버의 아버지)의 사진과 함께 '저는 일흔 다섯이지만 아직도 삶을 즐기고 열정을 추구합니다'는 글귀에 둘은 마주보며 웃는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새 삶을 추구했던 아버지의 활력이 둘의 가슴에도 새로운 파동을 전했으리라.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게이 친구를 구하기 위해 썼던 '자기소개서'는 아들에게 가장 귀한 유산이 된 셈이었다.


#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주목할 만한 인물은 주인공인 올리버보다 그의 아버지로 나온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다. 올해 82세 된 이 배우는 '비기너스'로 2012년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수상자 중 역사상 가장 최연장자로 기록되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중장년층이라면 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기억할 것이다. 거기서 완고하면서도 사랑과 신념에 흔들림 없던 멋진 '트랩' 대령이 바로 크리스토퍼 플러머이다. 점차 고령화되는 사회에 이렇듯 건재한 노배우의 활약은 어쩐지 가슴 뿌듯함을 안겨 준다.

이 영화는 마이크 밀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실제 그의 아버지가 노인이 되어서 커밍아웃을 선언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감독은 화학물을 첨가하지 않은 천연 유기농 식품과도 같은 담백하고 속 깊은 맛을 영화에서 우려내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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