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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완득이'

가난과 부조리에 경쾌한'쨉'을 날리다

  • 웹출고시간2012.03.11 19:48:2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위선과 위악

"햇반 가져가는 게 쪽팔리는 게 아니라, 굶어서 뒤지는 게 쪽팔리는 거다, 이 새끼들아."

이런 상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 사람은 명색이 고등학교 사회 선생이다. 담임반 아이들에게 종례를 하다가 급식지원 받는 아이들이 자존심 때문에 나라에서 제공되는 급식물품을 챙겨가지 않는 것을 지적하며 전체 학생들에게 위와 같이 일갈한다. 소위 교사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절반 이상이 비속어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그의 이름 '이동주' 역시 비속화하여 '똥주'라 부른다.

"위선보다는 위악이 낫다"
대학시절, 윤리학 교수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위선이란 자신의 악을 감추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요, 위악이란 선을 감추고 악을 가장하는 것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선을 가장하는 것에는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있게 마련이지만, 악을 가장하는 것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희생시키는 숭고하고 깊은 속내가 감춰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영화 '완득이'의 이동주 선생이 바로 이와 같은 위악적 인물이다.


'똥주'선생의 위악

요즘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통'하는 교사는 서당훈장 타입의 그런 선생님이 아니다. 적당한 속어에 유행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학생들은 자신들과 소통이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의든 타의든 요즘의 교사들은 교수기법상 어느 정도 위악적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 '도완득'에게 이런 이동주 선생은 너무 얄밉고 불편한 인물이다. 숨기고 싶은 자신의 가정사를 아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까발린다.

"나 학교 짤리면 완득이 아버지와 같이 시골 장터로 마사지 채칼 팔러 다녀야 돼."
얼핏 들으면 아이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무개념 인물인 것 같지만 동주 선생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뒤이어 이와 같이 덧붙인다.

"몸땡이 멀쩡한 놈이 방안에서 그냥 뒹굴고 노는 게 장애다. 힘든 몸을 가지고도 열심히 일하시는 완득이 아버지는 진짜 훌륭한 분이다."


엄마 얼굴은 본 적도 없고 곱사등이 아버지, 반편인 삼촌(혈연의 삼촌은 아니고 아버지가 거두어준 길거리청년)과 같이 옥탑방에 사는 완득이의 마음은 열패감으로 응어리져 있다. 동주 선생은 이런 그에게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사가 감춰야할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양지로 끌어내어 풀어버리는 것이다.

늘 혼자인 완득이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끔찍하다. 친구도 없고 동주 선생 표현대로 항상 '말등(꼴등)'인 완득이를 담임인 동주선생은 사사건건 간섭하며 툭하면 불러댄다. 항상 "얌마 도완득!"이 입에 배어 있다. 완득이는 '얌마'를 자신의 아호로 여길 정도다.

학교에서 뿐만이 아니다. 선생은 완득의 옥탑방 앞집 옥탑방에 역시 혼자 세 들어 살고 있어 늘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처지다. 심지어 한밤중에 옥상에 나와 '완득아, 완득아!'를 외치며 햇반을 청하곤 한다. 햇반이 동주 선생의 방 근처에 착지 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떨어지면 달려 내려가 주워 와야 한다.


"제발 똥주 좀 죽게 해주세요."
집에 와서까지 이런 '착취'를 당하는 완득이는 집 근처의 교회에 찾아가 매일 이런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지원된 햇반, 즉 밥을 같이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사실 완득이에 대한 위로이며 동질감을 주는 행위이다. 선생님에게 햇반을 던지며 완득이는 서서히 선생님으로부터 무장해제 당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건 따귀고 이것이 '쨉'

이런 완득이에게 엄마가 나타났다. 교회를 열어 외국인 노동자의 쉼터를 만들어 주고, 외국인 불법 체류자를 위해 애쓰던 동주선생이 필리핀 사람이었던 엄마를 찾아준 것이다.

"잘 커줘서 고마워요."
엄마를 처음 보는 아들에게 미안하고도 어려워 엄마는 존대를 한다. 이후 완득의 옥탑방 앞에는 맛있는 밥과 반찬꾸러미가 놓여 있곤 한다. 동주선생의 관심과 사랑은 결국 햇반을 엄마의 밥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완득은 교회의 외국인 노동자 핫산의 소개로 킥복싱 도장에 가서 운동을 하게 된다. 첫날 시범 경기를 마치고 링 위를 내려온 완득을 세워놓고 관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건 따귀고 이것이 쨉이야. 싸움과 운동도 구분 못하나? 어디서 저런 조폭 같은 놈을 데려왔어? 다시는 체육관에 오지 마."
삶은 분풀이하듯 아무렇게나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에 정석으로 충실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완득이는 아침에는 신문을 배달하고 저녁에는 체육관에서 킥복싱 연습으로 자신의 나날을 단련시켜나간다. 그리하여 고등부의 전국 랭킹 3위 선수와도 대결을 펼치며 삶의 방향을 잡아나간다.


아버지는 동주선생이 교회를 중심으로 건립한 다문화센터에 댄스강사로, 어머니는 요리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옥상에서의 스승과 제자의 회동에 시끄럽다고 매일 호통치던 '씨불놈' 아저씨는 기실 화가로 센터 골목길에 그림을 그려 준다.

"호정씨는 요즘 내가 보는 것과 닮았습니다. 구름도 닮았고, 꽃도 닮았고 달과도 닮았습니다."
'똥주' 선생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쓴 연애편지다. 완득이가 여자 친구 윤하의 마음을 얻게 된 연애편지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스승이 인생의 반려를 얻는데 제자가 큰 도움을 준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피부색도, 성격도, 저마다의 사회적 위치도 모두 다르지만 가장 크게 닮은 점이 있다. 바로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닮았고,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부조리한 사회에 제대로 된 '쨉'을 날리는 것이다. '똥주' 선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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