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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마당을 나온 암탉'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야

  • 웹출고시간2011.11.13 18:34: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오히려 어른이 보아야 할 애니메이션

"아유, 다 큰 학생이 그런 만화 보러 갈지 몰랐네."

중학교 3학년 때쯤이었던가 동생들 손잡고 지금은 사라진 청도극장에서 로버트 태권브이를 관람하고 오니 어머니가 이웃집 아주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더라며 웃으셨다. 후에 생각해 보니 굳이 그런 말을 내게 전하신 어머니도 '만화 보러 너까지 극장에 가느라고 돈들일 필요가 있겠니'하는 속마음을 은근히 드러내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지 않은 아버지 월급으로 우리 형제들을 키우시느라 늘 허리띠를 바짝 조이시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당시 주위 어른들의 편견을 생각해 볼 때 요즘 부모와 같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아이들은 확실히 행복한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부모님으로부터의 특별한 공감적 지원이 없어도 당시 동생들과 나는 만화영화가 그저 즐겁기만 했다.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본떠 만들었다는 태권브이가 일본의 마징가 제트보다 훨씬 멋있었고,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마치 내가 구국의 영웅이 된 듯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내가 극장에서 태권브이를 보며 정작 마음을 빼앗긴 것은 태권브이가 태권도로 악당을 물리치는 것보다 만화 특유의 색감으로 이루어진 서정적 장면들이었다.

특히 주인공 훈이와 철이, 영희가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는 숲 속에서 자유롭게 뛰놀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올 때 그 서정적 매력에 흠뻑 취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우리 집에는 컬러 TV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만화의 몽환적 색채감은 처음 접해 보는 것이었다. TV로 톰과 제리, 아톰 같은 만화를 많이 접하긴 했어도 워낙 작은 화면에 흑백으로 보는 것이어서 그런 색감의 향연은 무척이나 황홀했던 것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첫 장면이 펼쳐지던 순간, 나는 30여 년 전 가슴 두근거리며 극장좌석에 앉아 있던 그 시절로 순식간에 되돌아갔다. 그와 더불어 푸르고 노란 봄날의 향기를 가득 품은 몽환적 색채감이 거실을 환하게 채웠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극장을 나온 암탉'이 되었다가 이즈음 드디어 '안방에 나온 암탉'이 되었다. 나는 우리 동네 비디오점에서 처음 DVD 비닐 개봉을 뜯은 1차손님이 되었다.


◇원작과의 거리 좁히기

황선미 작가의 원작은 동화라기보다는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문학성 높은 일반 소설이다. 보통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한 문학 작품을 영화로 각색할 때 중요한 점은 비유와 암시로 이루어진 행간의 의미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그러므로 항용 원작만한 영화가 없게 마련인 것이다. 즉 원작의 여백에서 주는 상상력의 공간을 영화의 화면에서 그만큼의 감동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독의 인문학적 교양과 철학적 가치관, 영화적 기법이 최대치로 버무려져 발효될 때만이 표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망 높은 문학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 아주 잘해야 원작의 근사치가 될까 말까다. 원작을 넘어선 고유의 영역으로 꽃피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 점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도 상당 부분 아쉽다. 즉 극의 초반 암탉 잎싹이 왜 양계장을 나가고 싶어 하는지 원작에서는 세밀한 심리와 주변 묘사가 곁들여진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저 굶은 지 며칠 만에 손쉽게 나가는 것으로 비교적 가볍게 처리된다. 이것이 내밀한 묘사가 가능한 문학과 영상에 치중해야 하는 극영화의 차이점이라면 어쩔 수 없는 간극인 것이다.

◇모성의 꿈

"잎사귀는 꽃의 어머니야. 숨쉬고, 비바람을 견디고, 햇빛을 간직했다가 눈부시게 하얀 꽃을 피워 내지. 아마 잎사귀가 아니면 나무는 못살 거야. 잎사귀는 정말 훌륭하지."

잎싹은 원작에서 청둥오리에게 자신이 스스로 잎싹이라 이름지은 내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양계장의 암탉들과 달리 잎싹이 애초부터 갖고 있었던 모성의 지극함을 알 수 있다. 이 모성에 대한 곡진함을 영상으로 어느 정도 표현해 내느냐가 이 애니메이션의 관건이다.

오로지 자신의 알을 품어 어엿한 자식을 갖고 싶다는 소망 하나만으로 안온한 양계장을 박차고 나온 잎싹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당이라는 공간은 야생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기는 하지만 권위적이고 압제적인 수탉, 신경질적인 암탉, 집단이기적인 오리들, 늙고 줏대 없는 개 등 누구도 잎싹을 환영해 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불편함만을 먼저 생각할 뿐이다. 인간사이든, 동물의 세계이든 관계의 그물망이란 이리저리 얽혀 힘들기만 하다.


잎싹은 마당으로 벗어나 자연의 숲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때 족제비로부터 잎싹을 지켜준 것이 청둥오리 '나그네'이다. 나그네로부터 잎싹의 거주지 확보를 의뢰받은 부동산 중개인-원작에는 없는 인물이다-이 바로 수달 '달수'이다. 이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성공한 캐릭터가 바로 달수가 아닐까 싶다. 명품 조연으로 각광받는 박철민이 더빙을 맡았는데 수다스럽고 구수한 사투리의 매력이 극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그에 반해 다른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다소 실망스러운 편이다. 잎싹(문소리), 나그네(최민식), 초록이(유승호) 등은 차라리 전문 성우가 연기를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준다.

나그네가 남긴 분신(청둥오리 알)을 지극정성으로 품어 잎싹은 드디어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자식을 갖게 된다. 잎싹은 초록이를 키우며 엄마가 된 행복감을 맛보고 더불어 초록이의 어린 시절을 향유하는 행운을 누린다. 하지만 초록이는 자라면서 청둥오리의 기질이 서서히 나타나고 청소년기로 접어들며 엄마와 대립한다.

◇나는 엄마와 달라

"나는 엄마와 달라, 다르다구!"

청둥오리인 초록이가 암탉인 잎싹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히 오리와 닭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초록이가 하는 말의 본래 의미는 사춘기 아이 특유의 반항적 기질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도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인간의 삶에서도 자녀와의 세대 차이는 종의 차이보다 오히려 진폭이 더 크다고 할 정도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게 이렇게 저항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처럼 기기문명의 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서는 어른들이 보기에 아이들의 행태가 신종족의 출현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바가 많다.

날지 못하며 아예 날겠다는 생각이 없는 잎싹과 달리 초록이는 날고 싶어 견디지 못한다. 늘 새로운 세계로의 비상을 꿈꾼다. 어느 날 족제비에게 잡힐 뻔했던 초록이는 드디어 날게 되고, 자신과 같은 청둥오리 떼를 만나게 된다. 또래들과 날기 시합을 벌인 끝에 초록이는 아버지 나그네가 그랬던 것처럼 무리의 파수꾼으로 뽑혀 먼 나라로 계절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그게 바로 사랑이야

"나를 먹어"

영화에서 족제비에게 목숨을 내놓는 잎싹의 이 대사는 너무 직설적이다. 좀 더 비유적이고 암시적인 처리 방법이 있었을 터인데 아쉽다. 물론 족제비 역시 자신의 새끼를 키우려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날랐던 어미라는 것을 확인한 후 잎싹은 족제비와 깊은 동질감을 느끼게 것도 스스로 먹이가 된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청둥오리 무리에서 파수꾼이야말로 족제비의 첫 번째 공격대상이 됨을 알고 그런 초록이를 지키기 위한 마음으로 잎싹이 족제비 먹이가 된 것이므로 더욱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족속이 달라도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갈등과 대립의 세계를 구원하는 모성이야말로 가장 크고 위대한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이 보여 주었다. 계란공장과도 같은 양계장의 똑같은 닭들 속에서 모성을 갈망하던 잎싹의 꿈처럼 한국 애니메이션도 세계인들에게 모성과도 같은 깊은 감동을 안겨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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