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 에세이 -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섬에 갇혀 살던 그녀가 낫을 들었다

  • 웹출고시간2011.01.23 18:41: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며칠 전, 비디오가게를 가니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최신코너에 꽂혀 있었다. 비디오가게 주인은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비디오'라며 넘겨주었다. 반가웠다. 어찌어찌하다보니 개봉관에서 놓친 영화였지만, 꼭 보고 싶었던 1순위 영화가 아니었던가.

순제작비 7억원의 저예산영화로 전국 관객 41만 명을 끌어 모은 영화다. 이 영화는 올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시네마 디지털 서울 버터플라이상도 연이어 수상했다. 2010년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신인감독상, 2010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 2010년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다. 장철수 감독은 '김기덕 사단'의 일원이다. 그는 영화 '해안선' '사마리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서 조감독을 맡은 바 있다.


지난 2010년 8월에 열린 제2회 인천 한류콘서트에서 나는 뜻밖의 행운을 잡았다. 내 자리 바로 옆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만든 장철수(36) 감독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청바지와 허름한 와이셔츠를 입은 젊은 감독. 얼굴을 둥글게 감싸 쥔 임꺽정 수염이 잘 어울리는 그였다. 눈앞에서 SG 워너비의 열창이 끝나자 그는 "우리나라 한류 스타들의 힘이 놀랍다. 우리 문화의 힘이 새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한류 스타들의 열띤 공연을 보며 이따금씩 환호하는 일본 팬들의 모습이 신기한 듯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공연 내내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올해 그의 데뷔작인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그를 일약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어쩌면 그렇게 행복한 순간들이 겹쳐져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해원(지성원)은 휴가를 받아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살았던 무도로 향한다. 어릴 적 친구 복남(서영희)이 해원을 환대하지만 다른 섬 주민들은 해원의 방문이 반갑지만은 않다. 복남의 배려로 편안한 휴가를 즐기며 서울에서의 스트레스를 잊어가던 해원에게 어느 날 부터인가 평화로운 섬 풍경에 가려져 있던 복남의 참혹한 생활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에게 매를 맞고,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동생에게 성폭행까지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섬사람 모두 복남이 처한 상황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섬에서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고 있었다.


그녀를 견디어 내게 하는 유일한 희망은 딸 연희와 어린 시절 친구 해원이다. 하지만 유일한 탈출구로 여겼던 친구 해원도 자신과 딸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는 복남의 간곡한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게 된다. 그런데 딸 연희마저 의붓아버지인 남편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고 연희와 함께 육지로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한다. 그 과정에서 복남은 딸 연희를 남편의 손에 잃고 만다.

세상에서 지켜야 할 것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사람에게 세상이 만들어 놓은 법과 도덕은 무의미하다. 폭력의 방치자이며 무심한 관조자들인 섬사람들이 평상 그늘에서 한가로이 노닥거릴 때, 살 떨리는 자식을 잃은 복남은 뙤약볕 아래 감자를 미친 듯 캔다. 그리고 복남은 태양을 노려보며 중얼거린다. "태양을 한참 째려봤더니, 말을 하대유. 참고 살면 병난대유."라고 하며 낫을 휘둘러 주민들을 하나 둘씩 죽이는 것으로 무도에 잔혹한 피의 복수가 시작된다. 까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아라비아인을 살해한 이유를 '강렬한 태양'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방인, 강렬한 태양 그리고 살인…마치 사건의 퍼즐을 푸는 열쇠처럼 나열된 이 세 단어가 까뮈로부터 시공을 초월해 장철수 감독의 의식에 녹아든 것은 아닐까.

약자는 폭력 앞에 무기력하다. 폭력의 야비한 속성은 마치 폭력을 당해 치를 떨던 약자에게도 답습되어져 또 다른 약자를 위한 폭력이 자행된다. 인간사회도 결국 동물의 왕국이나 다름없다. 생존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장철수 감독은 "누군가 부당한 처우를 받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외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다. 요즈음 학교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왕따 당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폭행을 하는 아이보다 실은 옆에 있는 친구들이 폭행을 외면하는 행위에서 왕따 당한 아이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라며 "잘못을 저지르고도 너무나 당당한 인간들의 파렴치한 모습을 응징하려는 마음이 이 영화의 근간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공포 영화의 긴장감과 잔인함, 여기에 자기밖에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었다. 남편을 난도질한 복남이가 시체를 된장 범벅으로 만드는 장면은 복남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뒤에 "된장이나 쳐 발러."라고 했던 남편에 대한 통쾌한 되돌려줌이었다. 낫과 돌 그리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흉기화한 복남의 무자비한 복수에 관객들은 절대 공감을 표시한다. 마치 복남이의 억울함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감정이 전이되어 함께 분노를 폭발시키고 시원한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이다. 살면서 억눌린 감정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억울하고 답답한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폭력과 억압 그리고 분노……마침내 무서운 핏빛 복수극이 난무하는 장면으로 피곤해 할 관객들을 위해 장철수 감독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쉴 공간을 화면 곳곳에 배치해 놓고 있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 복남이의 집 뒤로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무들, 복남과 해원이 함께 피리 불던 어린 시절과 어른으로 다시 만나 함께 목욕하며 천진난만한 시절로 돌아가 장난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해원이 비겁한 방관자가 되어 복남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방바닥에 길게 눕는 옆모습이 무도의 섬 모양과 흡사하게 겹쳐지는 장면에서 절로 감탄이 새어나온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배우 서영희가 이제 비로소 '기억 남는 여배우'로 관객들의 뇌리에 행복한 방점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재능 있는 여배우는 장철수라는 신인감독을 만남으로써 그동안 분출할 수 없었던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섬 마을 사람으로 연기한 조연 배우들 역시 폭력의 섬 주민으로 용암처럼 기꺼이 녹아들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끔찍하고 묘사는 섬뜩하다. 하지만 장철수 감독이 가진 에너지는 가공하지 않은 원시의 힘처럼 용솟음쳤고, 김기덕 사단의 총아답게 우직한 연출로 영화가 끝난 뒤, 긴 여운마저도 관객을 매료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노란 풀꽃들이 만발한 섬의 들판에서 어린 해원과 복남이, 그리고 새끼 염소들이 뛰어 놀고 있다. 어린 여자아이들, 동물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 ……. 결국 감독이 말하고 싶은 이상향은 세상의 모든 약자들이 자연스럽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 환한 세상을 열어보이기 위해 영화는 지난한 폭력의 과정을 어쩔 수 없이 걸어와야 했던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