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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디센던트(The Descendants)

생의 파고를 함께 넘는 가족 영화

  • 웹출고시간2013.02.03 19:17:2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삶의 역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역설법을 설명할 때 흔히 예로 드는 김영랑의 서정시다. 슬픔이란 감정은 결코 찬란함으로 수식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울릴 수 없는 '찬란'과 '슬픔'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삶의 모순을 더욱 극대화하게 된다. 이는 전쟁터에서 한 젊은 병사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비바람이나 눈보라 휘몰아치는 벌판보다 오월의 봄꽃이 눈부시게 피어 있는 초원 위에 그의 주검을 눕힐 때, 그 죽음이 더욱 쓰라리고 아픈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디센던트'의 배경인 '하와이'의 아름다운 정취는 이 같은 삶의 역설적 아이러니를 잘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은 하와이가 사람 사는 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그저 평범한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한 달 가까이 병실에서 식물인간이 된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다."

주인공 맷(조지클루니 분)의 나레이션처럼 현재 퍽퍽한 신산을 겪고 있는 육지 사람들은 하와이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햇살처럼 밝고 행복할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몰디브, 피지, 푸켓 등 동남아의 수많은 섬들이 한국인들에게 펼쳐지기 전, 우리에게 있어 하와이의 이미지도 지상 최고의 낙원이었다. 투명한 햇살과 바다, 그 위로 넘실대는 나른한 음악, 귀 뒤에 커다란 하이비스커스꽃을 꽂은 미녀들의 훌라춤……. 그러나 하와이에 잠깐 머물다 가는 관광객이라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하와이를 즐기겠지만, 그곳에 붙박힌 주민들은 지구상의 어디와도 똑같이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갈 뿐이다.

삶과 죽음의 교차점

맷은 가족들에게는 무심한 채로 자신의 일에만 묵묵히 성실한 워커홀릭 변호사이다. 남편의 잔정을 받지 못한 아내는 보트 타기에만 열중하던 중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다. 맷은 그동안 일에 바빠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던 아내에 대한 미안함에 병실에서 기거하다시피 아내의 수발을 들며 간병을 한다. 그리고 아내가 나으면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세계일주 여행이라도 떠날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아내는 결국 뇌사 판정을 받는다. 의사들은 그에게 아내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할 권한을 맡긴다.

그 와중에 반항적인 큰딸과 당돌하며 말썽꾸러기인 작은 딸까지 돌보아야 하는 그는 갑자기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어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버지의 역할은 지원병이거나 대역인데 말이다." 맷의 이러한 생각은 그동안 두 자녀에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얼마만큼 소홀했는지를 말해 준다.

삶(두 딸을 돌보는 것)과 죽음(아내의 뇌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조지 클루니의 연기는 그동안 다른 영화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매끈한 상류층 바람둥이이거나 전문직 종사자로서 스타일리시한 모습만을 보여 왔던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그는 구부정한 등, 처진 어깨, 약해보이는 시력, 펑퍼짐한 뒷모습 등 전형적인 중년의 무력한 아버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는 이 영화로 2012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맷은 아내가 평소했던 말처럼 그녀의 의미없는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내의 친지와 친구들을 불러 그녀와의 마지막 작별의 자리를 만들어주고자 애쓴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삐딱한 큰딸은 자신의 행동을 나무라는 아버지에게 충동적으로 엄마의 부정(不貞)을 폭로하고야 만다. 그동안 왜 엄마와 불화를 겪어 왔는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과 아울러 아버지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한 마음도 있을 터였다. 엄마와의 마지막에 엄마의 참모습을 알아야 진정한 이별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과거와 미래의 변곡점

맷은 아내의 바람핀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지만 곧 그 상대에게 아내의 죽음을 알려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을 느낀다. 부동산중개업자인 브라이언 스피어라는 그 사내는 단지 잠시 일탈에 빠졌을 뿐,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사실에 그는 오히려 아내에게 연민을 느낀다.

맷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의 일 뿐만 아니라 조상에게 물려받은 하와이 해변가의 막대한 땅을 관리하고 처분해야 할 가문의 일까지 맡고 있다. 하와이 원주민이었던 할머니 대에서부터 내려온 땅을 팔아서 일가친척들은 돈방석에 올라앉을 꿈에 부풀어 있다. 맷은 그 땅을 신탁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땅 처분에 대한 결정을 좌우할 권한을 갖고 있다. 땅을 판다면 그곳은 곧 개발되어 놀이공원이나 위락시설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일에 아내의 정부가 관련되어 있다. 땅이 매매된다면 브라이언 스피어는 막대한 중개 수수료를 챙기게 되어 있었다. 망설이던 맷은 친척들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결국 땅을 팔아넘기는 것에 서명을 하지 않는다.

아마 브라이언 스피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친척들의 성화에 떠밀려 땅을 팔았을지도 모른다. 가혹한 시련이 오히려 그의 땅을 지킬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땅은 맷의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의 후손을 위해 원시의 천연성을 간직한 순수의 모습 그대로 남겨 두기로 한 것이다.

한 물결로 넘실거리는 가족


큰 파도를 함께 넘긴 가족들은 텔레비전을 보며 쇼파에 느긋이 앉아 무릎까지 이불을 덮고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버지와 막내딸이 각기 아이스크림통을 들고 TV를 보는데 큰딸이 옆에 와 앉는다. 그들은 서로의 발치에 이불을 덮어준다. 큰딸은 아버지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갖다 먹고, 아버지는 작은 딸의 아이스크림을 끌어다 먹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부성애가 매우 강하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다.

"가족은 군도와도 같다"

영화 속에서 가족을 보듬으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맷이 중얼거리던 말이다. 제각기 독립적이며 흩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 밑을 흐르며 섬들의 주변을 감싸는 것은 하나의 바닷물이다.

'디센던트'는 거대한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서로를 따뜻이 감싸주는 배려이며 사랑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한 가족을 통해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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