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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보는 맛있는 영화에세이 - '미드나잇 인 파리'

세계인들의 향수어린 도시 '파리'

  • 웹출고시간2012.11.18 18:24:5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파리'는 마음 속 축제의 도시

어린 시절의 내게 파리는 음울하고 어두운 도시였다. 빅톨 위고의 '노틀담의 곱추' 때문이다. 그 책 속에 등장하는 파리의 뒷골목은 걸인과 부랑자들이 들끓는 무법천지였고, 오직 춤추는 소녀 에스메랄다만이 음지에서 피어난 서늘한 장미처럼 내 가슴에 시리고 환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파리는 마음 속의 축제다'

영화에 등장하는 헤밍웨이의 말이다. 이 말처럼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접한 파리의 이미지는 가본 적 없으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도시가 되었다. 파리는 장차 다가올 축제일처럼 가슴 한 켠에 기대감으로 자리하고 있다. 명색이 불문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아직 프랑스를 가보지 못한 것은 어쩐지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처럼 멋쩍기도 하다. 또한 불문학을 공부했으므로 언젠가는 파리지앵처럼 세느 강변을 천천히 거닐 운명이 예정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레임도 갖고 있다.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파리의 판타지

영화를 보면 파리에 대한 판타지는 아시아사람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의 주인공 길은 약혼녀 이네즈에게 파리에 '마음만큼 자주 못 오는게 안타깝다'라고 말한다. 커다란 수영장이 딸린 화려한 미국식 대저택에 살고자 하는 이네즈와 하늘이 가까운 파리의 다락방을 꿈꾸는 길은 서로 약혼한 사이지만, 어쩐지 그들이 갈 길은 서로 달라 보인다.

영화는 낭만적 색소폰 음악과 함께 파리의 아름다움을 구석구석 비추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불빛을 품은 야경의 에펠탑, 몽마르트 언덕,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 나무로 도열된 샹젤리제 거리, 베르사유 궁전 등 명소도 많지만 그저 작은 골목의 정취가 배어나는 풍경들도 무척 많다. 낡은 필름지에 인화된 것 같은 파리의 고풍스런 건물과 거리들은 스치듯 지나는 화면으로만 접하기에는 너무도 아쉽다. 꽃집과 빵집은 건물에 우아한 생기를 부여하고, 커피잔을 앞에 놓은 노천카페의 사람들에게서는 삶과 철학의 향기가 배어난다.


고풍스런 건물들 위에 낮게 깔린 구름의 하늘, 보도와 섬세한 조각의 다리, 그 밑으로 흐르는 강물…. 카메라를 든 이는 어디에서 바라볼 때 파리가 가장 아름다운지, 파리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구도의 자리를 잘 알고 찍은 것 같다.

영화 포스터에 파리 건물들 위로 고흐의 별 그림이 겹쳐져 있는 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울 정도로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파리가 무대인 이 영화는 이미 그 배경만으로 90% 이상 성공인 것처럼 보인다. 배경 못지 않게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는 영화의 내용도 아름답고 우아하다. 1900년대 초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영화는 무겁지 않고 시종 유쾌하다.

예술가들의 황홀한 이름

길은 이네즈와 파리 여행의 일정에서 자꾸 의견이 어긋난다. 사업가인 이네즈 아버지의 파리 출장길에 동행하게 된 길은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내키지 않는 관광과 시간을 함께 하는데, 특히 이네즈의 친구인 폴과는 더욱 뜻이 맞지 않는다. 항상 '내가 이건 좀 아는데'라며 시작하는 현학적이고 과시적인 폴의 자세는 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로댕의 조각상 앞에서 또 아는 척 떠들던 폴에게 프랑스인 가이드는 '까미유 끌로델은 부인이 아니라 정부였다'고 바로잡아준다. 그 가이드가 바로 프랑스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카를라 부루니 여사다. 잠깐 등장하는 카메오 역할이지만 실제보다 젊고 지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현실적이고 화려한 파리를 즐기고 싶어하는 일행들과 달리 파리의 고전적 모습을 동경하던 길은 어느 밤 일행과 떨어져 산책하던 중 낯선 자동차에 올라타게 된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달려온 1920년대의 오래된 푸조 자동차에는 샴페인잔을 든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이끄는대로 파티가 벌어진 어느 집에 들어가게 된 길은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만다. 그를 처음 맞은 사람은 바로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 하지만 그를 더 충격에 빠뜨린 것은 바로 오만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헤밍웨이였다. 더구나 헤밍웨이는 길의 소설을 거트루드 스타인에게서 평을 받아보자고 제안한다.


1920년대의 작가이자 예술비평가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은 당대의 대표적 여류 지식인이었다. 스타인의 집에서 길은 피카소와 그가 그린 모델 아드리아나를 만나게 된다.

아드리아나로 분한 마리옹 꼬띠아르, 이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는 정말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우아한 품격의 섹시함을 갖추고 있다. 길은 예술적으로도 풍부한 감수성을 갖춘 아드리아나에게 점차 빠져든다.

처음으로 회귀하는, 순환의 시간

낮시간은 다시 2010년대의 파리다. 길은 아드리아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네즈의 진주귀걸이까지 몰래 가져갈 정도로 아드리아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드리아나와 가스등이 켜진 밤의 파리를 산책하던 중 그들은 달려온 마차에 동승하게 되고 아드리아나가 동경해마지 않던 벨에포크 시대, 즉 1890년대로 시간 이동을 하게 된다.


그들이 들어간 레스토랑에는 로트렉, 드가, 고갱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드리아나가 그 시대를 찬탄하자 드가는 '르네상스 시대야말로 골드에이지'라며 지금의 현실은 지루하고 부박하다고 말한다. 드가의 말에서 길은 비로소 무조건 과거의 시대를 동경했던 자신의 허점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머물러 다시 1920년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아드리아나와 결별하게 된다.

"누구나 현실에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과거를 동경하는 거죠. 저들도 르네상스가 황금시대라고 하잖아요."

피츠제럴드가 과거에 대한 향수는 '고통스런 현재의 부정'이라고 한 말의 의미를 비로소 길은 깨달은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미래를 계획하기보다 자꾸 과거를 뒤돌아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인간이 상정한 밤 12시라는 시간은 저무는 날고 새 날이 맞교대하는 시간이다. 결국 일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을 새로이 시작하는 시간으로 매기는 것은 무언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얻어내어 최적의 상황을 만들려는 인간의 자기최면인지도 모르겠다.


스토리에 긴박한 설정이나 박진감은 없지만 예술적 감성과 도시의 정취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의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흥행한 영화라고 한다.

"파리는 비올 때 제일 예뻐요."

길은 이렇게 서로 지적 정서가 통하는 파리지엔느 가브리엘을 만나 함께 비오는 파리의 밤거리를 걸어간다.

비에 젖은 파리의 밤은 몽환적으로 아름다웠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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