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권영이

증평군 문화체육과장

그동안 살얼음 같은 분위기라 불안했는데 그 살얼음이 깨지는 사고가 터졌다. 동료 사자의 실적을 가로채려다가 드잡이까지 하는 싸움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어제 오후에 부부가 함께 탄 자동차가 앞 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났고 현장에서 둘 다 즉사했다. 그 지역을 담당하는 사자가 사고 현장으로 즉각 달려갔다.

담당 사자는 처참한 사고현장에서 여자의 혼을 먼저 갈무리하고 나서 남자의 혼을 갈무리하려고 했지만 남자의 혼은 이미 사라졌다. 누군가가 먼저 혼을 훔쳐간 거였다.

순식간에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한 그 사자가 여자의 혼을 내려놓고 도망치는 사자를 향해 달려가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이놈이 벌건 대낮에 이게 뭔 짓이야!"

그 사자는 도망자의 머리를 휘어잡고 얼굴을 확인하고는 기가 막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뭐야· 너! 나한테 어떻게 이런 짓을……."

혼을 가로채간 사자는 다름 아닌 새내기 때부터 한동안 업무처리 일을 가르쳐 준 자였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아무리 막가파 세상이라 하지만 어떻게 네가 나에게……."

사자는 그 자의 손에 든 혼을 빼앗으려 했고, 그 자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드잡이를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사자의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사자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 자가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바람에 여자의 혼이 뭉개지고 말았다. 사고현장에서 처참하게 뭉그러진 몸과 다를 바가 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자도 그 자도 아연실색해서 서로를 바라봤다. 여자의 혼을 가로챈 사자는 고개를 푹 꺾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자의 머리를 휘어잡은 사자의 손이 부르르 떨다가 툭 떨어졌다.

"후, 내가 자네를 탓해서 무얼 하겠나."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다급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나봅니다."

두 사자가 다시 사고현장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남자의 혼도 누군가 가지고 달아난 후였다.

"이런 제기랄."

사자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고 그와 동시에 여자의 혼을 훔친 그 자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 자는 두 손을 펴서 뭉그러진 여자의 혼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이들은 인간들이 많은 지역은 예정된 일정에 맞춰 편안한 마음으로 죽은 자를 안내하면 되지만, 젊은 층이 많이 사는 곳을 담당하는 사자들은 자연사하는 인간들이 많지 않아 애를 먹는다. 그러니 실적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자들 담당구역까지 넘보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발악을 할 수 밖에 없다. 산자들의 마지막 길을 안내하는 중책은 명분뿐이고 도적놈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 일이 상부에 보고돼서 두 사자는 불려갔고 남자의 혼을 훔쳐간 사자를 찾기 위해 조사반이 꾸려졌다. 그동안 실적 때문에 혈안이 되어있던 사자들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조사반이 꾸려지면 지난 일들까지 조사해서 처벌을 하지 않을까 겁을 잔뜩 먹은 것 같았다.

동방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생글거리고 웃었다.

"하하. 이런 맹랑한 자가 있나. 자네는 다른 자들이 벌 받는 게 그리 좋은가·"

"에이, 그건 아니죠. 다 아시면서."

동방은 나를 올려다보고 여전히 생글거렸다.

"사자님. 이제야 제대로 된 질서가 잡히려나 봐요. 그렇죠·"

"그러면 좋겠지만 세상일이 그리 단순하기만 하지 않은 게 문제지. 더 두고 봄세."

동방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희망을 가져보고 싶어요. 이 일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줄 거라고 믿거든요."

나는 생글거리는 동방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젊음이 부러우이.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지 지금은 기억마저 희미하군." ⇒ 다음호에 계속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