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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동화작가·증평군청

마님은 모처럼 동서와 단아하게 꾸며진 야외 음식점을 찾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동서가 먼저 돌계단을 올라가서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마님은 뒤따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마님이 계단을 다시 내려온다.

"어머! 맷돌이네."

마님은 곰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투박한 맷돌을 보고 반가워 죽겠다는 듯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만져본다. 먼저 들어간 동서가 기다려도 마님이 들어오지 않자 밖으로 나와 마님 하는 양을 보고 코웃음을 친다.

"참내, 형님은 별걸 다 궁금해 하시네."

"동서, 너무 반갑잖아. 우리 어렸을 적엔 집집마다 마루 한 귀퉁이에 맷돌이 놓여 있었는데, 요즘은 부잣집 정원이나 이런 야외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으니……."

"그렇긴 하죠."

동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님 말에 동조를 해준다.

"그땐 집집마다 다 같은 모습으로 보였던 맷돌이 요새는 왜 달라 보일까· 아마 사용하려고 놓아둔 게 아니고 보여주려고 놓아 둔 것이라 그런 가봐."

마님은 맷돌을 들여다보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먹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의 어머니 손은 마술 손이었다. 어떤 재료도 어머니 손만 닿으면 먹을거리로 변해서 나왔다. 그만큼 어머니는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다. 특히, 여름철에는 맷돌에 갈은 시원한 콩국 물에 국수를 말아 주셨는데, 시큰한 열무김치를 얹어 후루룩거리며 먹을 때면 세상에 더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행복했다.

지금도 콩국수를 먹을 때 마다 어머니의 맷돌질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오른손으로는 적당히 불은 콩을 떠서 맷돌 구멍에 넣고, 왼손으로는 쉴 새 없이 맷돌을 돌리셨다. 어머니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맷돌에서는 하얀 콩물이 울컥울컥 나왔다.

마님 형제들은 맷돌 가에 쭉 둘러앉아 마른침을 삼켰다. 어머니가 맷돌질을 하시고 계신 동안에, 아이들은 시원한 콩국 물에 쫄깃한 국수가닥을 입 안 에 가득 넣고 씹는 상상을 하며 어머니의 맷돌질이 빨리 끝나길 기다렸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마음이 가장 배부르던 시절인 것 같다. 아직도 마님에게는 엊그제 일 같은데, 팔뚝에 푸른 심줄이 설만큼 힘 있게 맷돌을 돌리시던 마님 어머니는 팔순을 넘긴 할머니가 되셨다. 마님 어머니 팔뚝에는 푸른 심줄 대신 거뭇한 검버섯이 만개했다.

그 시절 마님 어머니는 콩, 녹두, 메밀을 갈면서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수 없었던 가난과 설움을 맷돌에 넣고 갈기도 하셨다. 할머니 손때가 반질하게 묻은 맷돌 손잡이를 어머니가 물려 잡으면서, 어머니는 할머니가 짊어지고 사신 세월을 고스란히 받아 안고 마님을 낳고 기르셨다. 마님은 그분들이 돌린 맷돌에서 나온 양식이고 희망이었을 것이다.

마님은 맷돌 앞에 쪼그리고 앉아 동서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동서, 우리는 지금 우리 어머니들처럼 아이들을 위해 맷돌에 뭘 갈아 주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잘 챙겨주지도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좀 무겁네."

"우리 형님은 욕심도 많아요. 직장도 다니고, 아이들 잘 크고, 작품도 쓰고,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래요·"

마님은 동서를 올려다보고 아니라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아이, 배고파 죽겠어요. 맷돌타령은 이제 그만하고 얼른 밥이나 먹으러 들어가요."

마님 동서는 마님을 두고 후다닥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마님은 동서를 따라 계단을 오르다말고 다시 맷돌을 보며 중얼거린다.

"더도 덜도 말고 어머니 절반은 닮아야 할 텐데."

이다음 내 아이의 추억 속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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