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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4.04 17:55:4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권영이

동화작가·증평군청 행정과

마님은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겨우내 춥다는 핑계로 집안에서 웅크리고 지냈더니 뱃살만 쪘다고 작심하고 시작한 운동이다. 운동이래야 마을길을 걷는 게 전부지만 대단한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삼돌씨에게 큰소리까지 치고 나왔다.

"올봄에 3kg 정도는 빼야지. 흠흠."

"운동하고 와서 배고프다고 간식 먹고 더 찌지나 마셔."

"뭔 소리야· 그래도 내가 명색이 마님인데, 이름값은 해야지. 암."

마님이 인삼밭을 지나 과수원 길로 접어드는데 앞에서 경찰차가 오고 있었다.

'뭔 일로 이런 시골마을에 경찰차가 들어오지? 마을에 사고가 났나?'

마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막 지나치려는데 차가 마님 앞에 멈춰 섰다. 마님 가슴이 그만 덜컥 내려앉았다.

'나 잡으러 온 건 아니겠지. 설마 내가 운동하러 이 길로 온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거야? 아니, 그런데 내가 뭘 잘 못했지? 잘못한 거 없는 것 같은데…….'

그 짧은 찰나에 마님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엉켰다. 경찰관이 차에서 내려 마님에게 경례를 했다. 마님도 경찰관을 따라 오른손을 옆 이마로 얼떨결에 올리다가 얼른 내리며 방금 한 자신의 행동이 멋쩍은지 뒷머리만 긁적거렸다.

"사모님, 이런 늦은 시간에 인적 없는 길을 다니시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요즘 인삼밭을 싹쓸이하는 도둑들이 여기저기 출몰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멋쩍어하던 마님 얼굴에서 장난기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달빛도 마님 뒤로 슬쩍 숨어버렸다.

"아, 그래요? 어쩐지 제가 요즘 갑자기 마을을 순찰하고 싶어지더라니."

경찰관이 무슨 이야기냐는 눈빛으로 마님을 바라보았다. 마님 장난을 받아 줄 사람은 삼돌씨 밖에 없다는 걸 깜빡 잊어버린 자신을 나무라듯, 방금 전까지 장난기를 가득 담았던 얼굴을 감추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아, 아니에요. 가뜩이나 요즘 학교폭력 예방활동 때문에 바쁘실 텐데 고생이 참 많으세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마님은 그동안 경찰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통규범 위반자 딱지 떼고, 음주차량 단속해서 국민들에게 벌금 물릴 궁리만 한다고 투덜댔었다. 그래서 왠지 주는 거 없이 얄미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에 시골마을까지 순찰을 돌며 민생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그동안 얄팍한 정보를 가지고 함부로 판단한 자신이 매우 부끄러웠다.

마님 뒤를 졸졸 따라오던 달빛이 '마님이 하는 일이 늘 그렇지, 뭐.' 하며 놀리는 것 같아 달빛을 피해 냅다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삼돌씨, 마을에 짭새들이 다니던데. 요즘 인삼도둑들이 설치 나 봐. 근데, 경찰관을 보고 왜 짭새라고 하는 거야· 날개도 없고 부리도 없고만."

삼돌씨는 마님 이마에 알밤을 콩, 하고 먹이더니 진지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마님, 마당 쓰는 남자를 뭐라고 부르지?"

"그거· 응, 뭐더라. 아, 그래. 마당쇠야. 머리 나쁜 남자는 돌쇠고, 장작 잘 패는 울 실랑은 삼돌이고. 히히."

"와, 우리 마님, 센스 있으시네. 우리 선조들이 도둑을 잡으러 다니는 남자를 '잡쇠'라고 했대. 그러니까 '잡다'의 어간 '잡'에 '쇠'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이 '잡쇠'고, 된소리인 '짭쇠'로 부르다가 '짭새'가 된 거지."

"와! 삼돌씨는 언제 그런 걸 다 공부했어. 대단하다."

마님은 삼돌씨를 향해 존경스런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삼돌씨가 보기에는 마님 눈빛이 영 심상찮은 모양이다.

"어, 어. 마님 왜 그래· 운동 좀 했다고 힘을 쓰겠다는 거 아니지?"

"무슨 말이야· 새 중에 가장 유익한 새가 '짭새'라는 걸 알려준 삼돌씨가 고마워서 그러는 건데."

마님 눈꼬리에 장난기가 붙은 걸 눈치 챈 삼돌씨가 담배 피운다는 핑계를 대고 슬금슬금 마당으로 도망을 쳤다.

겨우 손바닥만 한 자신의 잣대로 넓디넓은 세상을 가리지 말자.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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