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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증평군 문화체육과장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었다.

"뭐라고· 좋아하는 여자라고·"

동방은 두 눈을 내리깔고는 발로 바닥을 연신 찼다. 그의 발에 차인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그렇다고 하지 왜, 죄 없는 흙에게 화풀이를 하는 겐가·"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고개를 숙이고 몸을 꼬는 동방의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났다. 귀엽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했다.

"자네,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린 여자애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 같은데. 맞는가·"

동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뇨. 절대 아니에요."

"그럼, 누구에게 마음을 빼앗긴 게야·"

"그건 말 못해요. 절대로 말하면 안 되거든요."

"허허. 그거 참. 그렇담 표시나 내지 말던가. 자네는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소질이 많아. 혹,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가·"

동방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헤, 하고 웃는데 웃음 끝에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자네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인물이야. 어디서 무엇을 하러 여기로 온 사자인지……."

나는 먼 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 복잡함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두려웠다. 동방은 나에게 언제까지나 천진스러운 신입 사자이기를 바라고 있었나보다.

얼마 전부터 불어 닥친 살벌한 조직 분위기에서 동방마저 곁에 없었다면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이 지옥이었을 것이다.

"동방, 앞으로 어디 갈 때는 나에게 어디를 얼마간 다녀오겠다고 말 좀 해 주겠나·"

"왜요·"

"왜기는. 자네가 안 보이면 궁금하니까 그렇지."

"헤헤. 김사자님. 저한테 중독되셨구나. 그쵸·"

생글거리며 웃고 있는 동방을 와락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동방을 만나고부터 전에 없던 감정들이 피부를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내 몸에 하나씩 생겨나는 깃털 같은 감정들. 간지럽거나 시리거나 아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 같지만 놓아버리기에는 아까운 그것들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사자들에게 이런 감정들은 무익하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맡겨진 일만 하는 자들이 더 많다. 일을 하는데 효율적으로 세팅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는 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내 피부를 뚫고 밖으로 나오려는 까닭을 모르겠다.

"동방. 자네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전에 없던 요사스런 감정들을 자네가 불러낸 것 같단 말이야."

동방은 맑은 눈을 깜빡였다.

"전혀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는 겐가·"

동방은 고개를 끄떡였다.

"시치미 떼지 말게. 자네가 나타나고부터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자네도 아는 눈치인데."

동방이 이번에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저는 도통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걸요."

"자네 밖에 없어. 이 모든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자가."

동방은 고개를 갸웃대며 내 이마를 짚었다.

"사자님. 오늘 이상해요.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왜· 내가 미치기라도 한 것 같은가·"

"헤헤. 차라리 제가 미치면 모를까. 사자님은 미치면 안 돼요."

동방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무슨 말인가. 그게·"

"제 생각은요. 사자님을 메모리 카드로 쓰는 것 같단 말이죠.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 와도 멀쩡하게 버티셔야할걸요. 메모리 카드가 고장 나면 그동안 입력된 내용들이 엉켜서 써먹지를 못하잖아요·"

"이 자가 지금 뭔 놈의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릴 하는 게야·"

내 손바닥이 동방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가자 동방이 잽싸게 피하며 도망쳤다.

"헤헤, 사자님이 수상하다는 거 알만한 사자들은 다 알고 있거든요. 물어보세요. 제가 진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지 아닌지."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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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