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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증평군 문화체육과장

며칠 동안 품질도 양호하고 몰래 떼어내기도 좋은 인간을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대상을 찾지 못했다.

"여태껏 알량한 양심 지키며 사는 걸 자부심이랍시고 버텨왔는데 이제 와서 남들 하는 짓을 따라해야하다니…. 휴~"

나는 신세한탄을 하며 개울둑에 줄지어 서 있는 벚나무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때마침 저녁노을이 천천히 지는 모습이 보였다.

"해가 뜨고 지는 이치가 있듯이 저승사자도 죽고 사는 이치가 따로 있을 텐데 뭘 그리 노심초사하는가? 이 한심한 사자야."

그저 앞일이 막막하여 자신을 탓하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콧노래를 흥얼대며 둑을 걸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온 여자를 보니 나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소녀티가 났고 어찌 보면 만고풍산 다 겪은 연륜이 보이기도 했다.

"이승에 저런 인간이 있다니. 희한하군. 천계에나 있을법한데…."

나는 여자를 무심히 내려다봤다. 여자는 버들강아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와! 벌써 버들강아지가 피려고 하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버들강아지가 몸을 푸르르 털며 여자의 손을 피해 고개를 젖혔다.

"아하, 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구나."

나는 버들강아지에게 말을 거는 여자를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사실 우리 사자들은 인간들의 삶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언젠가 때가되어 잡아갈 대상일 뿐이다. 이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자의 혼이 다른 인간의 혼과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흠, 썩 괜찮군."

나는 혼잣말을 하며 여자의 명을 보았다. 여자의 명이 다하는 시점은 2057년이었다.

"아직 한참 남아서 좀 미안하긴 한데…."

여자의 혼을 들여다보니 말랑말랑하고 탄력이 있었다. 더구나 색도 연한 옥색을 띠고 있어 일등품에 속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품질이 좋아서 세탁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겠어. 어리바리해서 혼을 떼어내기도 수월하겠고. 아직 손을 안타서 다행이야. 횡재했군. 흠."

여자는 한참동안 버들강아지를 들여다보며 조잘대다가 가던 길을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옛날과 다르게 요즘 인간들은 다들 바쁘다며 종종대는데 저 여자는 한없이 느긋해 보이는군. 암튼 색다른 인간이야."

여자는 콧노래에 맞춰서 고개까지 까닥대며 걸어갔다. 나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여자가 하는 양을 보며 따라갔다. 나의 첫 번째 작업이 수월할 것 같아 내 걸음도 저절로 가벼워졌다. 한참을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여자를 따라 고개를 까딱이며 콧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에이, 이 무슨 채신머리없는 짓인가. 어험."

인간이 내 목소리를 듣는 것도 아닌데 공연히 겸연쩍어 혼잣말을 했다. 이 짓을 한지 삼백여년 만에 인간에게 관심을 갖게 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여자는 이 노래가 끝나면 저 노래를 흥얼거렸다. 천계에서 듣던 음악과는 사뭇 다른 가락이었지만 그런대로 들을만했다.

나는 저승사자가 되기 전 인간으로 살 때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문득 인간이었을 때의 삶이 궁금해졌다.

"이러다 인간사에 관여하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게 되겠네. 어험. 흠."

나는 잠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으려고 헛기침을 했다. 저승사자는 인간과 얽히는 일이 있거나 인간의 수명을 제멋대로 조작해서 천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 들통 나면 이 우주에서 영원히 퇴출된다.

"허허. 별 걱정을. 아무렴 인간과 얽힐 일이야 있으려고……."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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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