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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지난 사월 중순에 마님은 호박, 옥수수, 상추씨와 봉선아, 분꽃, 채송화씨를 사다 포토에 정성스럽게 파종을 했다. 그리고 날마다 물을 주고 들여다보며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채송화야! 어서 나와서 얼굴 좀 보여주렴."

마님이 포토 앞에 쪼그리고 앉아 혼자 중얼대는 모습을 삼돌씨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한테 저렇게 여수를 떨면 만날 업어주겠지만 말도 못하는 꽃씨를 보고 뭔 짓이랴."

삼돌씨는 연신 툴툴댔다. 그러는 며칠 사이에 포토마다 파란 싹이 쏙쏙 올라왔고 마님은 포토를 들여다보는 재미로 사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 해가 마님네 집 지붕이며 창살, 마당, 연못, 나뭇가지, 흰둥이 털 사이까지 파고든다. 그 모습을 보며 컹컹 짖어대던 마님네 흰둥이가 몸을 후르르 턴다. 털 사이를 파고들던 햇빛이 푸르르 날아오른다. 모처럼 늦잠을 자려던 마님이 바깥에서 나는 소란이 궁금해서 하품을 하며 나온다.

"흰둥아! 왜 이래 시끄럽니?"

흰둥이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난리법석을 떤다. 마님은 그런 흰둥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양지바른 곳에 줄지어 놓은 포토 곁으로 다가오다 말고 가뜩이나 왕방울만한 눈을 더 크게 뜨고는 말까지 더듬으며 놀란다.

"어! 어! 어! 얘들이 왜 이래?"

쥐똥나무 울타리 전지를 하던 삼돌씨는 호들갑을 떠는 마님을 힐긋 돌아보고 하던 일을 계속 한다.

"삼돌씨! 이리 좀 와 봐. 얘네들 허리가 자, 잘렸어!"

삼돌씨도 포토마다 파릇파릇하게 올라오던 새싹들이 댕강댕강 잘라져 있는 모습을 보고 는 상을 찡그린다.

"새들 등살에 농사도 못 짖는다니까. 이거야 원. 우리야 재미삼아 하는 거지만 진짜 농사 짖는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상할까."

삼돌씨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들판을 내려다본다. 이제 막 밭갈이를 끝낸 밭도 있고, 두둑을 만들어 검정 비닐을 씌운 밭도 있고, 이미 씨앗을 파종한 밭도 보인다. 제발 저 밭에 심은 씨앗만은 별탈이 없기를 바라는 얼굴이다.

마님은 그런 삼돌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댕강 잘린 싹들을 들여다보고 어떡해, 어떡해만 연발한다.

안되겠다 싶은지 삼돌씨가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양파를 담았던 망사를 가지고 나와서 아직 잘리지 않은 포토를 골라 모자처럼 씌우면서 속상해하는 마님을 달래준다.

"이렇게 해두면 괜찮을 거야. 우리 마님을 속상하게 한 이놈들! 나한테 걸리기만 해 봐라. 그냥 콱 잡아서 새구이를 해먹을 테다."

삼돌씨가 과장된 몸짓을 하고 너스레를 떨자 방금 전까지 울상이던 마님이 피식, 하고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애꿎은 흰둥이한테 은근슬쩍 책임을 떠넘긴다.

"흰둥이 넌 도대체 집을 어떻게 지킨 거야· 그깟 새들도 못 쫓아내고."

흰둥이는 영문도 모른 체 저를 혼내고 있는 마님 손등을 핥으며 좋다고 꼬리를 흔든다. 때마침 마당가 텃밭으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며칠 전에 심어 놓은 콩을 파먹는다. 마님이 화가 나서 콩콩콩 뛰어가며 쫓는다. 참새가 쫑쫑 걸음으로 도망가다 푸르르 날아간다.

"냅더. 지들도 살자고 그러는데. 우리가 조금 덜 먹자고."

나에게 평범한 일상이 다른 이에게는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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