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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동화작가·증평군청 행정과

마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가에 난 잡풀을 뽑다가 서너 평 남짓한 텃밭에 눈이 간다. 텃밭이라야 마당 귀퉁이에 두둑을 만들어 고추며 상추, 방울토마토 몇 포기 심어놓은 게 고작이다. 그나마 제대로 관리를 못해 여름이면 풀이 더 많아 풀밭이 되기 일쑤다.

올해도 텃밭에 두둑을 만들어 고추를 심었다. 지난주에 말뚝을 박아서 지지대를 만들어주었더니 고춧대가 굵어지고 키도 제법 큰 것 같다.

마님은 잘 자라고 있는 고추가 대견스러워 요리조리 살피다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햐! 얘들 좀 봐. 언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매단 거야?"

마님이 엉덩이를 들고 키 작은 고추를 살피는 모습을 보고 삼돌씨도 궁금한지 들여다본다.

"뭘 보고 호들갑이여?"

"삼돌씨, 이것 좀 봐. 벌써 고추가 달렸어!"

삼돌씨가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고춧대 아래 부분에 달린 잎을 뚝뚝 따낸다. 마님은 소리를 지르며 삼돌씨를 벌컥 밀친다.

"삼돌씨! 뭐하는 짓이야? 이제 겨우 아기 고추가 달렸는데."

삼돌씨가 밭고랑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내가 뭐 어쨌다고 밀쳐?"

"이제 겨우 열매를 맺은 고춧잎을 다 따면 어떡해?"

삼돌씨는 짜증을 내는 마님을 올려다보며 밭고랑에 털퍼덕 앉아 흙 묻은 손을 탈탈 털며 핀잔을 준다.

"이런, 천하에 무식한 농사꾼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우리집 마님이구만."

"흥, 마님이 직접 일하는 거 봤어· 원래 마님들은 일꾼만 잘 부리면 되는 거야."

마님이 발끈해서 톡 쏘아붙인다. 천방지축 부부가 토닥거리는 걸 바라보고 있던 아기 고추가 공연히 무안한지 마른 꽃잎 속으로 숨어버린다.

"이렇게 첫 마디 밑에 달린 잎을 따 줘야 고추가 튼실해지는 거라고. 처음에 가지 하나가 성장하면서 두 개의 가지로 갈라지고, 그 가지에서 다시 갈라져서 네 개가 되고, 여덟 개가 되어 고추가 주렁주렁 달리게 되는 거지. 이게 바로 고추 순치기라고 하는 거네. 무식한 마님아."

마님은 삼돌씨 말을 듣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삼돌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딴청을 부린다.

"마님, 여기를 봐. 꼭 알파벳 Y 자처럼 생겼지· 고추는 요 사이에 달리는 거야."

마님 눈동자가 한꺼번에 여러 포기의 고추를 살피느라 데구루루 굴러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어, 진짜네. 다 Y 자 사이에 달렸어. 와, 신기하다!"

삼돌씨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며 어이없다는 듯이 껄껄 웃는다.

"마님, Y 자가 꼭 사람 가랑이 같지 않아· 그래서 가랑이 사이로 열린다고 해서 사람 거시기도 꼬추라고 부른다는 사연이 있다지. 아마. 흐흐흐."

"에이, 엉터리."

마님이 볼그레한 볼을 하고 삼돌씨 어깨를 툭 친다. 방금 전에 마른 꽃잎 속으로 숨어들었던 아기 고추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배시시 웃는다.

세상에 사연 없는 이름이 있으랴. 비록 사연 없는 이름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부르는 순간부터 새로운 사연이 만들어진다.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권영이(증평군청 행정과 근무)

위 파란색 부분은 신문에 게시될 때 굵은 글씨나 글씨체가 다르게 등 본문과 구분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본문내용을 함축한 작가의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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