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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증평군청 행정과

지난가을 마님을 희롱한 두타산에게 3개월간 마을로 내려오지 말라는 판결이 내려진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지금쯤은 두타산 가슴 부위가 불그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도 아직 아무런 기미도 없다. 들판의 곡식도 모두 고개를 숙인 체 풀이 죽어 있다.

집 앞에 있는 들판을 내려다보는 삼돌씨와 마님 얼굴도 시무룩하다.

"삼돌씨, 지금쯤 벼가 익어야 되는 거 아냐· 추석도 며칠 안 남았는데……."

"아무래도 잦은 비 때문인 것 같아."

"비 좀 왔으면 할 때는 안 오고, 오지 말았으면 할 때는 퍼붓고 난리야. 삼돌씨, 아무래도 하늘님은 심술탱이인가 봐. 그치?"

삼돌씨가 '어, 말 한번 잘했네.' 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늘님이 딱, 우리집 마님 스타일구만."

"무슨 말이야· 내가 가끔 사고는 치지만, 심술탱이는 아니다, 뭐."

삼돌씨는 마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입까지 실룩이며 웃는다.

"아이구, 그러시남유. 어리바리에, 사고뭉치에, 심술까지 있는 거 아니었슈?"

마님은 빈정대는 삼돌씨에게 눈을 흘기고는 주방으로 가서 커피물을 끓이며 찻잔을 꺼낸다.

"마님! 나는 블랙으로 줘."

"흥, 우리 집은 이제부터 모든 게 셀프야. 자기 것은 자기가 타 먹어."

"그런 게 어딨어· 타는 김에 내 것도 타 줘."

마님은 향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커피를 홀짝이며 삼돌씨 옆에 와서 바짝 붙어 앉는다.

"에이, 지금 사람 약 올리는 거야?"

"나보고 심술보라며· 그래서 커피향으로 심술 좀 부려보려고."

삼돌씨는 마지못해 커피를 타서 들고 오며 중얼댄다.

"지금쯤 두타산도 가을 물이 들기 시작해야하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

마님은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고 깔깔대며 웃는다.

"왜 웃어?"

"지난 가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두타산이 요 앞 들녘에서 가을걷이 하는 어르신들에게 막걸리를 얻어먹고 술김에 우리 거실로 쳐들어 왔잖아?"

삼돌씨는 무슨 얘기냐는 듯이 마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작년에 마님을 희롱한 죄로 3개월간 마을에 내려오지 말라는 판결을 받았었잖아. 그때부터 주눅들은 것 같아. 하긴 아직도 집행유예기간이니까."

"아, 맞다. 1년간 집행유예 기간이라고 했지."

마님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툴툴댄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옛일 때문에 지금 할 일을 안 하다니. 삼돌씨, 당장 올라가서 혼쭐을 내줄까?"

"이 사람이, 맘 잡고 잘 있는 두타산은 왜 또 흔들어· 조금 더 기다려 봐. 태풍도 지나가고 가을빛이 며칠만 내리쬐면 곧 붉게 물들 거야."

"피, 막걸리만 먹이면 금방 벌겋게 될 걸. 가을햇빛을 언제 기다리고 있어."

마님은 지난 가을에 거실로 얼큰하게 취해 들어 온 두타산 자락을 떠올리며 삼돌씨가 듣지 못하도록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말을 꿀꺽 삼킨다.

마님네 집 뒤 두타산이 곧 단풍 옷을 준비하려는지 나뭇잎을 요란하게 흔든다. 마님 가슴도 덩달아 설렌다.

기다림은 여러 색을 품어 따뜻한 빛을 내는 가을 단풍을 닮았다.

- 천방지축 마님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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