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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동방과 그 여인이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던 그날 밤에 그 여인의 시모는 드디어 끈질기게 거부하던 저승안내를 수락했다.

동방이 그 여인의 입을 통해 노모의 아들은 객지에서 혼을 갈취당해 아직 저승으로 갈 때가 안 됐지만 갈 수밖에 없었노라고, 그러니 이제 아들이 돌아올 때를 기다려봤자 소용없다고, 여기서 돌아오지 않을 아들을 기다리느니 얼른 저승으로 가서 만나는 게 훨씬 빠른 길이라고 설명하자 그 노인은 쾌히 그러겠노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아들과 함께 있고 싶어 가지만 혼자 남겨진 며느리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보시오. 젊은 양반. 저 아이는 망나니 내 아들이 사십이 넘어 바다 건너 먼 나라에 가서 데려온 색시라오. 그때 나이가 겨우 열아홉 이였다오.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남의 자식도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내가 참으로 못 할 짓을 했지. 그 어리고 어여쁜 것을. 그러니 어쩌겠어. 인연이 그리 된걸."

노인은 그때 일을 회상하며 그 여인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고 했다.

"어찌나 이쁘고 착한지. 하늘나라 선녀도 그보다는 못할 거요. 젊은 양반이 보기에도 그렇지·"

"네. 네. 그렇고말고요. 저도 저렇게 맑고 영롱한 혼을 가진 인간은 처음 봤습니다."

"우리 며느리는 마음도 이쁘고 얼굴도 이쁘지."

"아, 네. 네. 맞습니다. 아주 예쁜 혼을 가졌죠."

노인은 동방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젊은이가 벌써 귓구멍이 고장 났구먼. 마음이 이쁘다니까! 혼이 아니고. 물론 얼굴도 이쁘지만."

동방은 그때서야 인간들은 혼이라는 단어를 죽음과 연관 지을 때나 주로 쓰지 보통 때는 잘 안 쓴다는 걸 떠올리고 아차, 싶었다고 한다.

"아이고, 어르신. 죄송합니다. 죄가 그만 말실수를……."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번지면서 마지막 당부를 마치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젊은이. 내 자네를 믿고 먼저 가네. 나와 약속한 건 꼭 지켜주시게."

동방은 노인의 손을 꼭 잡아주며 걱정 말라고 했다고 한다.

"저 아이는 들에 난 풀도 꽃도 다 좋아한다네. 그저 앞으로 남은 생은 꽃밭이나 가꾸며 살아줬으면 좋으련만……."

나는 동방의 말을 듣고 마음이 먹먹했다. 노인도 망나니인 그의 아들도 딱하지만 무엇보다 혼자서는 의식주를 전혀 해결하지 못할 저 꽃 같은 여인이 딱해서 여간 심란하지 않았다.

"동방. 이 노인은 자네가 내 대신 좀 안내해주게나. 어차피 자네와는 대화도 잘 통하니 가는 길에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면 좋지 않겠나."

동방이 쾌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자네가 다녀오는 동안 나는 이 여인의 거취를 어찌해야할지 방도를 찾아봐야할 것 같으이."

동방이 갑자기 내게로 다가와 내 허리를 꼭 껴안았다.

"어이, 징그럽게 왜 이러는가?"

"헤. 사자님이 고마워서요."

"뭐가 말인가?"

"저 여인을 이리 알뜰히 챙겨 주시니까요."

"허허.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수상하이. 저 여인과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동방이 배시시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에이, 다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나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뭘 말인가? 난 아는 게 하나도 없네."

"우리 인연이야 다 이승에서 인간으로 살 때부터 얽힌 인연이란 건 사자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야. 나도 알지. 그렇지만 우리는 어떻게 얽혔는지 전혀 기억하지를 못하잖은가· 그런데 자네는 그걸 아는 것 같아 하는 말일세."

동방이 펄펄 뛰며 부인을 했다.

"사자님. 그런 무서운 말씀 하지 말아주세요. 누가 들으면 제가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자라고 소문이 나서 여기서 쫓겨나면 어쩌시려고……."

나는 동방의 다소 과장된 몸짓에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자네야 이미 이번 퇴출자로 거의 확정된 것 같은데 뭘 새삼스럽게 그러나?"

"아, 참. 그렇지. 요즘 저도 자꾸 깜빡깜빡한다니까요. 아무래도 제 혼도 누가 도적질해가는 거 아닐까요?"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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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