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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상인회 총무

9개월 전 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상차림에 아예 된장찌개를 넣지 않았다.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을 쓰지 않을 바에야 공산품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는 것이 영 마뜩하지 않아서였다. 또한 다른 식당들과 다르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작용했다. 여느 삼겹살 식당에서 나오는 된장찌개 대신 조금 더 색다른 이바지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아욱 된장국이었다. 짜고 매운 된장찌개 대신 담백한 맛의 아욱국을 끓여 국이 떨어지는 대로 채워주기로 했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즐겨 찾는 시내 어느 삼겹살집을 모방한 것이었다. 30년 이상 삼겹살집을 운영해온 주인을 찾아가 식당 운영에 관한 조언을 얻은 뒤 받아들인 결정이었다. 사시사철 밍밍한 된장국을 끓여내는 그 집은 고기 맛 못지않게 주인장의 구수한 성격에 어울리는 담백한 된장국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런대로 평가가 나쁘지는 않았다. 아욱이나 시금치, 또는 무시래기 같은 제철 국 재료를 사용해 4개월 정도 된장국을 끓여내는 동안 그러나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구수한 된장국이 참 좋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그래도 삼겹살 식당에서는 뜨거운 된장찌개를 끓여줘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도 그럴 듯했다. 식사 처음부터 국을 내주다 보니 조금 지나면 국은 식게 마련이고, 식은 국을 먹기 싫어하는 손님들은 계속 따듯한 국을 원했다. 여름, 가을을 거쳐 날이 쌀쌀해지면서부터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를 찾는 손님들이 부쩍 많아졌다.

된장국과 된장찌개를 놓고 주방 아주머니와 논의 끝에 결국 겨울이 닥치기 전 된장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대신 향이 좋은 나물을 듬뿍 넣기로 했다. 결정적인 판단의 기준은 나의 소신이 아니라 손님들의 취향이었다. 무엇을 고집하고,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소신 없는 변화는 공허하고, 변화 없는 소신은 위태롭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내게 조언해주길 좋아한다. 한 번은 시내에서 제법 큰 병원을 운영하는 친구가 가족과 함께 들렀다. 대화 중 제주도에서 먹었던 삼겹살 얘기가 나왔다. 이제까지 먹어봤던 삼겹살 중에서 가장 환상적인 추억이라며 가족 넷이 12인분이나 맛있게 먹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멸치젓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짭짜름하면서도 비릿한 멸치젓과 삼겹살의 궁합이 환상이라며 멸치젓 사용을 적극 권유했다.

그러나 친구의 말대로 막상 멸치젓을 써 보니 비린내가 너무 났다. 비린내에 익숙한 바다 사람들과 달리 내륙 사람들에게 멸치젓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주방 아주머니가 갈치속젓을 제안했다. 갈치속젓에 갖은 양념을 해서 뜨거운 불판에 올려놓으니 비린내는 가시고 고소함은 더했다. 갈치젓 하나에 상차림이 더욱 깊어졌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대화 중 우연찮게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몇 번이나 식당에 들렀어도 주인이 손님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며 장난스럽게 푸념을 하시는 분이 술을 한 잔 권했다. 식도락이 있는데 운동을 하지 않다 보니 당뇨가 걱정돼 돼지감자를 먹고 있다고 했다. 돼지 감자! 순간 너무 기뻐 박수를 쳤다. 당뇨에 좋은 데다 이름도 '돼지'가 들어가니 금상첨화 아닌가. 다음 날 당장 돼지감자를 구해 돼지감자 샐러드와 빈대떡, 구이 등 돼지감자 삼형제 요리를 만들었다. 전에 쓰던 몇 가지 반찬을 없애고 대신 올린 돼지감자 요리는 이후 식당의 심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좋은 것도 문제는 없지 않다. 요즘 돼지감자 봄철 수확기가 끝나면서 가을걷이가 시작되는 10월까지는 공백이다. 또 다른 변화와 선택을 도모해야 한다.

사는 동안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길을 찾든, 가까운 사람의 조언을 수용하든, 또는 어쩌다 기막힌 아이디어를 만나든 소신과 무소신의 차이는 결국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다만, 성공 여부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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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