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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상인회 총무

그동안 참 격조했네. 친구들과 이렇게 둘러 앉아 삼겹살을 먹은 지가 한참 된 것 같아.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나이에 각자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맘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는군. 백운(白雲)이 아닌 청운(靑雲)을 꿈꾸던 젊은 시절에는 어디 우리 인생이 이렇게 각다분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줄 생각이나 했는가. 삼겹살을 먹다 보면 예전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건 왠지 모르겠어.

일기, 자네를 생각하면 언제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하나 있어. 대학교 1학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우리 친구들이 쥐 집 드나들듯 하던 네 자취방에서 그날도 네가 해주는 점심을 먹었지. 잔뜩 배가 불러 난 방바닥에 넉장거리로 누웠고, 넌 이불을 꿰매야 하는데 실이 얽혔다며 마구 헝클어진 실타래를 만지작거렸어. 막실 한 타래라야 얼마 되지도 않는데 언제 그걸 풀고 앉아 있느냐며 난 핀잔주듯 말을 던졌지.

한숨을 자고 나서 보니 너는 웃통은 벗어 던진 채 팬티만 입고 그 실타래를 풀고 있었어. 한 가닥 한 가닥 요리 빼고 저리 넘기며 실을 풀더니 마침내 그 미친년 머리끄덩이 같이 얽혀 있던 실을 다 풀더군. 난 단숨에 낮잠이 달아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참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어.

이후 자네의 삶을 보면 그 실타래 풀던 모습과 영 다르지 않아. 네 성에 차기나 했을까 싶은데 지방은행에 입사한 뒤 세 번의 흡수 통합 과정에서도 너는 실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살아남았어. 굴지의 시중은행에서 지방은행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뉴욕지점 발령을 받은 것도 실타래 풀던 자네 모습과 오버랩되지. 간디의 물레 타는 모습이 연상돼. 존경하네, 친구!

성훈이, 자네 책상 벽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다'고. 행시 준비를 하느라 네 가방에는 언제나 두터운 고시 서적들이 담겨 있었어.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준비하는 너를 보며 언젠가는 합격될 거라는 믿음을 가졌었는데. 너를 보면 언제나 속으로 강해지려고 애쓰는 모습이 느껴졌어. 워낙 천성이 유순한데다 주변 사람을 많이 배려하는 타입이니 사람 독해지기가 쉽지 않았겠지. 이제는 대학에서 근무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는 너를 보면 그래도 네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존경하네, 친구!

규상이, 너는 친구들 가운데 문학적인 소양과 재질이 가장 많았지. 우리야 말만 문학도이지 어디 단편소설 하나 써 볼 엄두를 내보기나 했는가. 가끔 시 습작도 해보고, 소설 하나 써 볼 요량으로 줄거리나 흐름도를 그려보기는 했어도 자네처럼 세상에 대고 발표할 생각은 언감생심이었네. 가만히 보면 자네의 문학적인 소질은 후배들과 잘 어울리던 모습에서 읽히네. 한참 후배들과 맥주보다는 막걸리를 즐기며 논쟁이 아닌 토론으로 밤을 지새고는 푸석한 머리로 나오곤 해서 우리는 배추머리란 별명을 붙여줬지. 기자가 돼서도 가시 돋친 글보다는 사람 사는 얘기를 많이 다뤘어. 지금 너의 탁월한 전시기획력은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고 봐. 존경하네, 친구!

남길이, 자네는 또 어떤가. 군수님을 지낸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명예를 밥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지. 늦게 피는 꽃이 향기를 더 발한다는 말이 꼭 친구를 두고 하는 말 같아. 기필코 박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영국까지 건너가 짧은 기간에 박사 학위를 따오는 것을 보고 독한 놈이라고 생각했어. 다소 늦깎이지만 다들 부러워하는 대학 강단에서 청년들을 가르치는 동안 너만의 결기와 집념을 몸으로 보여주며 가르치지 않을까 상상해. 존경하네, 친구!

나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늦가을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결실 없이 지내왔네.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 남 얘기 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못내 안타까운데 자네들같이 좋은 친구들과 서로 힘이 되는 얘기를 나누니 내겐 더없는 행복이야. 고맙네,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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