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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함지락 대표

공자의 어록인 논어가 왜 하필 배움에 관한 얘기로 시작되는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배우고 익히면 내심 기쁘지 아니한가· 두 번째 문장에 왜 벗이 나오는지도 의아했다. 동지가 있어 나를 알고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춘추시대 그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당장 정치현실에서 써 먹을 수 있는 대책(對策)을 직접 말하지 않고 인(仁)이니 의(義)니 하며 에둘러 말하고 있으니 왕들의 입장에서 보면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바가지 주는 것이 아니라 샘을 파서 물을 마시라는 한가한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40시간의 상인대학 과정을 마무리하는 학습일정으로 지난 주 일요일 선진지 견학을 다녀왔다. 울산광역시 중구 옥교동 중앙전통시장. 그동안 이론적으로, 또는 사례를 통해 배운 내용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기회였다. 상인대학을 운영하는 시장경영진흥원에서 마련해준 대형 버스를 타고 담당 교수님들과 함께 44명이 아침 일찍 출발했다. 일주일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상인들에게는 달콤한 휴식이자 가볍게 흥분되는 나들이였다. 집행부에서는 차 안에서 먹고 마실 것들을 충분히 준비했다.

전 날 마신 술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회원 한 명이 흥을 돋웠다. 좌석을 돌아다니며 맥주를 건네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잡았다. 차 안은 갑자기 왁자지껄해져 가만히 두면 놀자하는 분위기로 바뀔 듯했다.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좋지만 차 안에서 노는 것이 위험천만하기도 하고 또 선진지 견학이라는 취지에도 맞지 않는 것 같아 제동을 걸었다. 마이크를 잡고 토론 주제를 하나 제시했다. 삼겹살 거리라는 음식 특화거리를 통해 부활해야 하는 서문시장의 지금 이름, 이대로 좋은가· 이성계는 왜 고려라는 이름 대신 조선이라는 새 이름을 지었는가, 왜 청주 수곡시장은 두꺼비 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는가 등 몇 개 예를 들며 새 술을 담기 위해서는 새 부대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수십 년 동안 사용하던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나이 많으신 회원들이 먼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서문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분들에게 서문시장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인생과도 같은 것이었다. 삼겹살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 회원들도 반대했다. 삼겹살 거리이긴 하지만 다른 식당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의미였다. 생계가 걸린 중대한 문제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삼시장이나 돼지시장, 또는 다산시장이라는 명칭이 거론됐지만 그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게 들렸다.

울산광역시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중앙시장도 서문시장과 비슷한 처지였다. 한때 울산에서 가장 번성했던 시장이지만 신도심 개발에 따른 상권 이동으로 급격한 침체를 겪으며 존폐위기에 몰렸다. 인근에 위치한 대형마트도 심각한 위협이었다. 몇 개 골목별로 상인회가 분리돼 있어 결속력도 약했다.

중앙시장 상인들은 생존 차원에서 자구책을 찾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상인회 통합 목소리가 나왔다. 마침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법제정이 이뤄지며 상인회는 중구청과 함께 내부역량 강화사업을 시작했다. 각종 상인교육을 이수하며 착실히 국비지원의 여건을 만들었다. 사재를 털어가며 시장 살리기에 나선 여걸 회장이 있었고, 재래시장 살리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정치력을 발휘한 민선 구청장도 있었다. 덕분에 중앙시장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골목을 정비해 화려하게 부활한 수범시장이 되었다.

서문시장 상인들은 중앙시장 상인들에게 끈질기게 물었다. 시장을 살리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과정은 무엇인지 물었고, 어떻게 이뤄냈는지 또 물으며 배웠다. 공자의 말처럼 근본이 서야 비소로 도가 생기는 것이다. 중앙시장 상인회는 오랜 친구처럼 우리를 반겨줬다.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 함께 뜻을 나누니 즐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들 행복하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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