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함지락 대표

겨울 삼겹살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연탄난로 연기가 더 뽀얗다.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서나 삼겹살 연탄구이를 위해 설치한 예닐곱 군데 업소에서 나오는 연기가 정감 있게 느껴진다. 연기는 잠망경 같은 연통을 통해 밖으로 나온 뒤 아케이드에 걸려 하늘로 바로 오르지 못하고 넓게 퍼지며 사라진다. 그 짧은 연기의 직선적인 오름에서 문득 어릴 적 겨울 저녁을 떠올린 것은 불에서 연유하는 '물질적 상상력'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돌아가신 지 17년이나 되는 할머니께서 다시 살아오셔 40년 전으로 나를 데려가 금방이라도 "동진아, 저녁 먹어라" 부르시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수고로운 해가 잠을 자러 서쪽 연못으로 서둘러 내릴 무렵, 군불을 때는 아궁이는 언제나 따스하고 포근한 곳이었다. 사랑채 부엌의 할머니의 아궁이는 안채 부엌의 어머니 아궁이와 사뭇 달랐다. 어머니가 주로 밥과 국을 끓이는 살림 아궁이를 가진 반면 할머니는 소죽과 고구마와 밤을 익히는 군불 아궁이를 가졌다. 우리 형제들이 주로 탐내며 찾던 곳은 할머니의 군불 아궁이였다. 해거름 저녁이면 두 개 굴뚝에서 구름 같은 연기가 하늘로 하늘로 영혼처럼 승천했다.

소죽을 끓이는 할머니의 아궁이는 언제나 여러 땔나무로 메어 터졌다. 아버지가 겨울 채비를 위해 미리 준비하신 소나무나 참나무 장작 외에 겨우 내내 수시로 해오는 생나무들도 화마 같은 아궁이를 채웠다. 불기운이 센 것은 오히려 생나무들이었는데 솔가지나 가시나무 참나무 등이 제격이었다. 그러나 마르지도 않은 생나무를 때는 데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다.

우선, 나무를 많이 넣어야 했다. 아궁이가 터지도록 나무를 구겨 넣어 빈틈이 없도록 해야 했다. 생나무 몇 가지를 넣어가지고는 불이 잘 붙질 않았다. 사람의 손길이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불이 불을 붙이는 셈이었다. 둘째로는 여러 가지 나무를 넣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설사 가시나무가 대부분이라도 해도 사이사이에 잔솔가지며 옹이가 박힌 장작이나 때로는 잎나무 땔감까지 필요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잘 마른 나무에서 붙기 시작된 불은 스스로의 인화성으로 불기운을 키우기 마련이었다. 성마른 손길은 오히려 불을 꺼뜨리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여자와 불은 되도록 쏘삭거리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나. 할머니의 군불은 세상에서 가장 뜨끈뜨끈하게 사랑방을 덥히고 소죽을 끓이고 고구마를 굽고 손자들을 모이게 했다.

청주의 사랑방 삼겹살 거리에도 할머니의 군불이 필요하다. 아궁이가 메어지도록 나무가 필요한 것처럼 거리가 메어지도록 업소가 넘쳐야 한다. 다걸기에 다름 아니다. 그 땔감을 누가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지만 내년도 상반기 도심활력증진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제 나무를 받을 아궁이는 널찍하게 마련되지 않을까. 또한 가시나무 군불에 여러 다른 나무도 필요한 것처럼 삼겹살 거리에도 삼겹살 식당 이외에 여러 업종이 있어야 한다. 불은 불을 부르기 마련이어서 불이 붙기 시작하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서둘러 활성화하겠다는 조급한 생각에서 살아나는 밑불을 만지작거리거나 이리저리 흔들지도 말아야 한다. 안에서는 차분한 인내가 필요하고 밖에서는 지나친 기대나 근거 없는 비방이 없어야 한다.

아직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시각,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탄연기를 보며 내년도 이맘을 상상해본다. 청주의 사랑방 같은 삼겹살 거리 아궁이에 군불이 잘 붙으면 이 거리 사람들은 물론 청주가 더 따뜻해지겠지. 소죽을 끓이고 아궁이에 남은 잉걸불에 고구마를 구워먹거나, 타고 남은 알불을 화로에 담아 밤 같은 주전부리를 구워 먹는 것처럼 청주가 더욱 다채로워지겠지. 따끈한 사랑방에 손자들이 찾고 마실 손님들이 오는 것처럼 청주를 찾는 외지 손님들도 늘어나겠지. 올 한 해 내 삶을 받쳐 준 힘은 다름 아닌 군불 상상력이었다.

<끝>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