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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상인회 총무

미국 사람들은 밥을 먹고 나서 '배가 찼다'(I'm full)고 말한다. '찼다'의 반대어는 '비었다'이다. '비었다'는 것은 무엇이 결여돼 있는 상태를 뜻한다. 마치 자동차 연료 탱크에 기름이 없어 시동을 걸 수 없다는 말이고, 드라이브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배가 찼다'는 말은 탱크에 기름이 가득해 작동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미국 어디에서나 고속도로에서 주유소와 음식점을 겸한 휴게실을 볼 수 있다. 또한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기름 값을 주고 연료 탱크를 하나 가득 채우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배를 채우기 위해 미국인들은 큰 접시 하나에 온갖 음식을 다 쌓아 놓고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빨리 준비하고, 빨리 먹고, 많이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발달한 이유다. 식민지 개척 시대나 서부 개척 시대,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 미국 사람들은 한가하게 앉아서 밥을 먹을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나서 '맛있었다'고 말한다. '맛있다'는 말은 말하자면 작품으로 치면 어느 정도 수준 있다는 의미다. 귀족주의를 이상으로 생각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음식은 배를 채우는 연료가 아니라 세련됨을 경험하는 수단이다. 프랑스인들은 음식 하나에 접시 하나를 사용한다. 프랑스에서는 음식을 먹는 목적이 쾌락이며, 가정에서 만든 음식도 감상의 대상이 된다. 프랑스 레스토랑은 요리사와 웨이터, 와인 담당자, 지배인 등이 연주하는 교향악으로 비유된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훌륭한 요리사를 '세프'라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교향악단의 지휘자에게도 이같이 부른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배부르다'고 말한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한 시절, 서민이나 민초들은 항상 굶주려 살았다. 이들에게 '배고프다'는 것은 일종의 고통이었고, '배부르다'는 것은 고통에서 해방되었음을 뜻한다.

'배부르다'라는 말에는 또한 일종의 과시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다. '네'가 밥을 먹지 못해 배가 쏙 들어간 것에 비해 '나'는 배불리 먹어 배가 불룩하게 나왔다는 과시. 남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욕망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이름 있는 식당을 들먹인다. '그 식당 가봤느냐?'고. 가보지 못한 것은 어느 의미에서 수치다. 동양의 문화를 서양의 문화와 빗대 '수치문화'라고도 하는데, 이는 다분히 관계 지향적이고 상대적인 차원에서의 해석이다. 같은 경험의 공유나 소속의식을 바탕으로 관계를 만들어 보려는 시도이다. 함께 경험하지 못하거나, 소속돼 있지 않으면 배제되거나 배척당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보통 십여 개 정도의 각종 모임에 소속돼 있을 정도다.

한국 사람들에게 삼겹살을 먹는다는 것은 무슨 문화적인 의미로 해석될까? 20여 년 전 6시간에 걸친 위암 대수술을 받고 베드에 실려 나오신 아버지는 배가 고프다며 '하얀 쌀밥에 돼지고기 한 첨'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 좀처럼 육류를 섭취하기 어렵던 시절, 돼지고기를 먹다는 것은 고달픈 인생에서 잠시나마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소고기는 워낙 귀해 먹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으나, 번식을 하지 못하는 수퇘지라면 가끔 먹어 볼 만 한 음식이었다. 돼지고기, 아니 삼겹살은 그렇게 한국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다. 불우한 시절의 행복한 추억, 가난함 속의 부유한 기억, 소고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고기.

그래서 삼겹살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하염없이 지난 시절 고단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간장에 담가 구워 먹었던 '시오야끼'에 관한 추억들, 삼겹살을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경험, 고적한 시절 친구가 사줬던 눈물겨운 삼겹살 등등.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삼겹살은 추억과 소통의 코드를 갖고 있다. 추억하며 소통하는 것, 청주 삼겹살거리가 지향해야 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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