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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상인회 총무

엊그제 부처님 오신 날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과 모처럼 축구를 했다. 인조 잔디가 깔린 집 근처 중학교 운동장에서 아들 친구들과 세 명씩 두 팀으로 편을 짰다. 골키퍼는 아들이 맡았다. 고만한 나이에 다들 스트라이커가 되고 싶어 안달인 것과는 달리 녀석은 골키퍼를 고집한다. 폼나게 슬라이딩 하며 공을 막거나, 세게 날아오는 공을 가볍게 막는 게 골을 넣는 것보다 훨씬 짜릿하고 재미있다나. 어린이 축구 교실에 다니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볼을 다루는 솜씨들이 보통이 아니다. 혹시 녀석이 아빠를 창피하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해서 더욱 열심히 뛰어다녔다. 다행히 아침마다 테니스를 쳐 온 덕에 따라다닐 만은 했다.

모교 중학교의 운동장은 여전히 넓었다. 운동장을 다 쓰기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골대 하나만을 가지고 '열 골 먼저 넣기' 시합을 했다. 아들은 아빠와 친구들이 함께하는 축구시합이 너무 좋았는지 30분 정도 걸린 열 골 내기가 끝났는데도 또 다시 하자고 했다. 겨우 말린 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아내가 준비한 김밥과 닭튀김을 나눠 먹었다. 아들과 두 시간 정도 축구를 한 뒤 간단히 씻고는 오후 영업을 위해 식당으로 갔다. 서둘러 출근하는 내내 나중에 커서 축구 캐스터가 되겠다며 하루도 빠짐없이 국내외 축구 경기를 모니터링하고 아빠에게 자랑하는 아들과 그동안 이렇게 하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다.

사실 미안한 것으로 따지면 양가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일요일 오후에도 영업을 하면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아들이 가지 않으니 며느리나 손자들도 자주 가질 않는다. 가질 못하니 미안한 마음에 식당으로 나오시라고 노인네들한테 주문한다. 형제들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동생들이며 제수씨들, 조카들과 다함께 만나려면 일정 잡는 게 큰일이다. 자연스레 형제간 가족 회식도 줄어든다. 자영업자인 아빠, 아들, 남편, 형은 요즘 세상에서 사람노릇 하지 못하는 죄인들이다.

까짓것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 영업을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은 맞다. 요즘같이 경기가 좋지 않은 시절에 하루 장사라 해봐야 별 것도 아니어서 윤택한 삶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면서 재충전을 해야 심신 건강에도 좋은 것도 맞다. 그러나 삼겹살 거리가 갓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 혹시 주말에 찾아오는 외지인들 눈에 그렇지 않아도 보잘 것 없는 거리가 더욱 썰렁하게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상인들은 문을 닫지 않고 있다. 자영업의 암울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 사이에서 자영업자들의 마음은 눈을 따라 밖으로 나와 대상들 속에서 방황한다.

며칠 전 중소기업중앙회 충북지역본부가 도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영상황 조사 결과가 눈에 아른거린다. 물론 어제 오늘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10명 중 9명은 현상유지 내지 적자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흑자를 보는 경우는 8.8%로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았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갈수록 경영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다. 현실이 이러니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기 쉽지 않으며, 가업으로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날 리 없다. 조사 결과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게 문제다. 이 불안한 현실 속에서 일요일이라고 맘 편하게 쉬기는 그래서 쉽지 않은 것이다.

가정이 소중하니 가정의 달을 만들었고, 가정 해체가 심각하니 여럿 가정의 달 행사가 마련된다. 그러나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도 주먹의 물처럼 남는 게 없으니 자영업자들에게 가정의 달이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지난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내걸었던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일요일 하루라도 있는 삶이 간절하다. 사람을 줄여 아들과 축구를 하든가, 아니면 나중에 공무원 같은 것 하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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