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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상인회 총무

6개월 전, 난생 처음으로 고기를 썰다가도 수은등 켜진 삼겹살 거리 전봇대를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수십 가닥의 전깃줄이며 통신줄이 얼키설키 매달린 전봇대가 마치 연 걸린 대추나무 같기도 하지만, 전봇대 어깨 위에 덩그러니 매달린 수은등이 노안(老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즘 웬만한 시장 통에서는 수은등을 보기조차 어렵다. 수은등보다 더 밝고 전기세도 덜 나오는 헬륨등이 한동안 주류를 이루더니 요즘에는 LED가 대세다. 인근 성안길이나 육거리 시장이 불야성을 이루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철제 셔터가 내려진 삼겹살 거리 점포들을 보면 가슴이 막막했다. 오래되고 지저분한 건물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굳게 잠긴 셔터문이 영원히 말 할 것 같지 않은 입술 같아서였다. 500여 미터 삼겹살 거리 곳곳에 굳게 다문 입술들이 아무도 미래를 말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두렵기까지 했다. 화려한 인테리어에 건물 외벽까지 고급스러운 거리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이 이 누긋하고 침침한 골목에 눈길 하나 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또한 삼겹살 거리 곳곳에 말뚝처럼 박혀 있는 주차 차량들을 보면 화가 치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좁아터진 골목에 촘촘히 들어차 있는 차량들이 인근 공원에서 밀려 온 노숙자들처럼 꼴불견이어서였다. 삼겹살 식당에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차람? 주차난이야 전국 어느 시장을 가더라도 없지는 않지만 주차장 하나 없는 삼겹살 거리에 도대체 어떡하라고. 주차장 하나 없이 삼겹살 특화 거리라고 전국에 나발을 불어 댄 청주시가 야속했다.

지난 달 시장 상인들과 전주 한옥촌을 다녀왔다. 김대중 정권의 대대적인 지원과 전주시장의 확신에 찬 의지가 비벼져 전주 한옥촌은 성공적인 비빔밥으로 거듭나 있었다. 거리는 말끔했고, 빈 점포는 없었으며, 대형 주차장도 모자라 2층 대형 주차장이 건축 중에 있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가족여행 갔던 부산 국제시장도 그랬다. 저녁 무렵 찾아 간 국제시장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골목골목 차별화된 주제로 거리가 조성돼 있었고, 사람들은 넘쳐났다. 대한민국 제 2의 도시인데다 엄청난 재화가 넘쳐나는 곳이니 그렇지 하면서도 가슴이 먹먹했다.

고기를 썰면서 서문시장 삼겹살 거리가 예전의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청주에서 가장 번화하던 서문시장이었다. 고속버스 터미널 뒤편에 있던 서문시장은 애나 어른 없이 기웃대고 싶었던 곳이었다.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는 그런 시장이었다. 그러나 터미널 이전과 급격한 도심 공동화를 거치면서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한 서문시장은 급전직하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요즘 고기를 썰면서 우리 삼겹살 거리가 지금의 '나' 같다는 생각을 한다. 텅 비어 있어 오히려 채울 것이 많은 상태. 이제 칼을 들면 차분해진다. 두툼한 면장갑을 끼고 반듯하고 정갈하게 고기를 썬다. 어서 이루겠다는 조급증을 베어낸다. 한꺼번에 해내겠다는 욕심을 잘라낸다. 기대고 싶은 심약함을 걷어낸다. 비계 덩어리만도 못한 질투, 부러움을 버리고 고분고분한 배움을 얻으려 한다. 고기는 칼을 따라 썰리지 않고, 먹은 마음을 따라 썰린다.

열흘 삶은 호박에 도래송곳 안 들어간다. 반구제기(反求諸己) 하듯 모든 걸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청주시는 자연도태 대상이던 이곳을 재래시장 부활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들려 한다. 충북대학은 정부의 '구 도심 개발 프로젝트' 사업을 수주하면서 그 대상지로 서문시장을 선정했다. 맞다, 향후 도시개발 방향은 팽창개발이 아닌 구 도심 개발이다. 상인들 또한 이번이 서문시장의 존폐가 걸린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머잖아 삼겹살 거리의 수은등이 사라지고, 셔터문이 올라가며, 주차장이 들어설 거라는 기대는 사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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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