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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상인회 총무

삼겹살 거리에 식당을 개업한 이후 처음 맞은 설날이었다. 3일 간의 짧은 설 연휴 동안 설날 당일을 뺀 이틀은 식당 문을 열었다. 영업도 영업이지만 귀성객들에게 고향의 삼겹살거리를 알려보자는 이유가 더 컸다. 전체적으로 문을 열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각자 알아서 하되 되도록 문을 열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다행히 7할 정도는 문을 열었으니 고향 먹거리 골목의 체면은 유지한 셈이다.

설 연휴 첫날이던 토요일 낮에는 후배 친구들이 몰려왔다.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고등학교 후배지만 언제나 깍듯한 그 후배는 내게 든든한 후원자다. 후배는 삼겹살 거리를 살려야 한다는 취지에 크게 공감하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으레 삼겹살 거리에서 하려고 한다. 후배의 고향은 원래 청원군 문의면이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5학년까지 다니다 부모님을 따라 고향을 떠났다. 청주시내 재래시장에서 자수성가하신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왕성하게 사업을 하면서도 시골 친구들과의 모임이 가장 정겹다고 했다. 친구들을 일일이 내게 소개했다.

초등학교 친구들 사이에 오가는 얘기는 거침이 없다. 욕을 해도 욕으로 하지 않고, 욕을 들어도 욕으로 들리지 않으면 그 욕은 욕이 아니다. 그냥 말이다. 초등학교 친구 모임이 아니면 이렇게 걸쭉할 수 있을까 싶다. 그 나이면 시키지 않아도 제 몸 관리하느라 알아서 술도 자제하기 쉬운데 이 친구들은 그게 아니다. 부어라 마셔라, 주거니 받거니 아주 술판이다. 초딩이 시절 있었던 추억들을 잘도 끄집어 낸다. 고기를 썰다가 여러 차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명절 마지막 날, 시간도 어중간한 오후 2시쯤 그녀가 활짝 열고 들어왔다. 웃으며 들어오는 그녀를 보고 처음엔 놀라고 다음엔 같이 웃고 그 다음엔 너무 웃지 않으려 애썼다. 바로 뒤이어 부모님, 아들, 동생 가족들이 들어서서다. 인천 귀갓길이라고 했다.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아 예약도 못하고 쳐들어왔다며 미안해 했다. 점심 무렵 고향의 삼겹살 거리를 찾은 귀성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느 새 내 전화에는 그녀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지난 추석 때처럼 혹시 올지 모른다 생각했는데 역시 왔다. 고기 중량을 재는 저울의 눈금이 한참을 넘었다.

가족 회식에서 역시 부모님 건강 문제는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으신다는 아버님께 그래도 가끔은 고기를 드셔야 한다며 그녀는 가장 부드러운 고기를 추가로 주문했다. 고등학교며 대학 입학에 관한 애들 교육 얘기가 이어졌다. 올해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내 딸을 자랑하자 애 엄마들의 관심이 작렬했다. 손님 같지 않은 그녀 가족 회식에 나도 붙박이로 한 자리 차지했다.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과, 그녀의 여동생과, 그녀의 제부들과도 주거니 받거니 잔을 건넸다. 몇 잔 술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그녀를 두고 내 웃음소리와 목소리만 허허롭게 커져 갔다.

오후 4시쯤에는 내 고향 친구가 찾아왔다. 이제는 대학생 딸 둘을 키우는 중년의 엄마가 된 여자 친구. 딸이 둘인데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하나같이 참하고 예쁘다. 둘 다 공부를 잘 하지만 작은 딸은 워낙 뛰어나 지난해 서울대에 들어갔다. 부모님을 모두 여의어서 형제 가족들만 모였는데 어째 쌍둥이 아들들이 보이질 않았다. 슬쩍 물어 보니 '쉿!' 하고 말을 가로챈다. 장가를 가지 않은 동생들이 형제 가족모임에 잘 오지 않는단다. 얘기꽃이 피면서 딸들은 가난했던 어릴 적 추억을 털어 놓았다. 부모님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는데도 좀처럼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가난이 뼛속에 사무쳐 죽어라 열심히 살았고,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이 마음에 사무쳐 애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이제는 먹고 지낼 만하고, 애들도 어엿한 대학에 들어갔다. 지금은 행복하다고 했다. 나도 오늘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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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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