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3.10.20 16:18:17
  • 최종수정2013.10.20 16:18:17

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함지락 대표

테니스장으로 가는 아침 길, 어느 집 담벼락 옆의 감이 샛노랗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에 탐스런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게 하도 신기해 자전거에서 내려 한참을 쳐다봤다. 진녹색 감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위안과 생명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는데, 어른 주먹만 한 감까지 보게 되니 아침 운동하는 사람에게 여간 더한 호사가 아니다. 지난 여름, 예전에 없던 무더위와 지리한 장마까지 꿋꿋이 견디더니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고얀히 콧등이 시큰거렸다.

참새의 잦고 발랄한 노래, 송뢰(松·)보다 시원한 감나무 바람소리, 곰삭은 두엄을 한 삽 흩뿌려주던 교회 집사의 손길은 하나로 나무를 키웠다. 따가운 햇볕, 서늘한 아침이슬, 밑동까지 흔드는 바람, 어치의 위협은 또한 하나로 열매를 키웠다. '덕분에'와 '불구하고' 모두 있어 감나무는 노란 결실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러고 보니 좋은 거, 나쁜 거 따로 없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하는 것들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많은 것들이 합력해 선(善)을 이루었으니 마땅히 그 선은 선하게 써져야 하는 것이다.

민물고기라고는 전혀 없어 영혼 없는 하천이라고 생각했던 미평천에 작은 물고기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너무 일찍 단정해버린 사악함에 스스로 낯이 부끄러웠다. 저래서 청둥오리들이 무리지어 물갈퀴 질을 했던 모양이다. 물고기라고는 살 것 같지 않은 냇물에 작으나마 물고기가 사는 데는 냇물의 갖가지 수생 생물을 헤집고 다니던 오리의 숨은 덕도 있다. 차집관로를 묻어 오폐수를 차단한 것이 결정적이기는 하지만 둔치 옆 작은 버드나무며, 도둑놈풀, 말풀도 미평천의 생명력을 도와준 것이 분명하다. 저렇게 작은 물고기를 키워 냄으로써 물은 헤아릴 수 없이 풍성한 물의 덕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되살아난 물길도 아니고, 아직은 탐스런 결실을 맺지도 못한 곳이지만 삼겹살 거리 는 이 가을에 더욱 감사하다. 부족한 재정에도 형평성 범위 내에서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행정당국이며, 침침하고 불편한 공간에도 불구하고 애정으로 찾아주시는 시민들, 먼 길 마다않고 방문해 주시는 외지 손님들, SNS 활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주신 인근 통신사 직원들은 이 거리의 몸집을 키워주셨다. 더불어 개선되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해주신 시민의 따끔한 충고, 재방문 의사를 꺾게 하는 상인들의 불성실을 꼬집어 주신 시민들의 애정 어린 충고 등은 이 거리의 힘을 키워주셨다.

오늘도 이만함에 감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으킨 함지락은 이 가을 더욱 감사할 따름이다. 한동안 격조했던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참신함과 도전에 대한 인정과 격려는 나아갈 수 있는 명분을 주었고, 저급함과 소아병적 시각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지적과 조언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루터기가 되었다. 삼겹살 거리와 상인들은 분에 넘치게 받은 덕을 어떻게 베풀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지역에서 촉망받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스스로 몸을 주저앉히거나 영어의 몸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들과 친소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럴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혹감이 더 크다. 공직자가 고위직에 오른 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울타리가 되어주고 자양분을 공급한 고마운 손길들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업가가 상당한 부를 쌓았다고 해서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 또한 아니다. 격려와 애정을 보내 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수없이 음덕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주변에 대해 감사하고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때 감나무에 매달린 감 하나는 더욱 탐스러워 보이고, 미평천 탁류의 물고기 한 마리는 더욱 생동감 있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삼겹살 거리에 보내는 손길 하나하나에 감사하고 보답할 때 삼겹살 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끝>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