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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클린마운틴 - 함우석 주필의 청주천리(5)

청주의 산 따라 물 따라

  • 웹출고시간2023.08.27 15:57:13
  • 최종수정2023.08.27 15:57:13

글 싣는 순서

1,우암산
2,상당산
3,구녀산
4,낙가산·것대산
5,선도산·선두산
6,양성산·작두산
7,부모산
8,미동산
9,목령산
10,동림산
11,은적산
12,옥화구곡
ⓒ 함우석주필
고봉이 없는 청주에서 500m는 꽤 높다. 선도산과 선두산 모두 500m가 넘는다. 한남금북정맥의 청주본류 주능선이다. 상당산성에서 남쪽으로 기지개를 편다. 풍경 대신 간간이 터지는 조망이 더 좋다. 지금 시기 파란 들녘이 발아래 펼쳐진다.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모습이 풍요롭다. 해질녘 꼭두서니 빛은 정말로 신비롭다. 기도와 그리움이 동시에 만나는 공간이다.
[충북일보] 잠시나마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 쉼표를 찍고 싶다. 어느 나무 그늘 아래서 졸고 싶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떠돌고 싶다. 길을 만든 역사의 군상들과도 만나고 싶다. 길은 산속의 인대다. 봉우리와 능선을 잇는다. 청주의 산길과 물길 12곳을 선정해 둘러보기로 한다. 청주의 산길 물길 나들이다. 그곳에는 훌륭한 문화가치가 산재해 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새길 앞에 무엇이 돌출할지 모른다. 산과 숲, 물에 숨은 속살을 글과 사진으로 엿보려 한다.

수레너미 마을 느티나무.

ⓒ 함우석주필
5,선도산(547m) 선두산(526.5m)

세상만물이 기지개 켜는 이른 아침이다. 동살이 퍼진 낭성 들녘이 푸르스름하다. 부지런한 농부가 트랙터를 몰고 나간다. 농부들의 일상화된 고단함이 묻어난다. 목련공원을 지나 현암 삼거리에 닿는다. 청주시 월오동과 낭성면을 잇는 고개다. 한남금북정맥의 산줄기에 직접 걸친다. 길은 수레너미 마을 묵집 앞서 시작한다.

수레너미에서 선도산까지는 3.4km다. 수레너미 마을의 느티나무가 들머리다. 마을보호수인 느티나무 뒷길을 따른다. 수묵화 같던 아침 풍경이 곧 맑게 바뀐다. 아침 감상에 젖어들 무렵 현실을 만난다. 숲에 들어서자 날파리가 극성을 부린다. 8월 하순 여름더위가 산객을 괴롭힌다. 햇살도 바람도 구름도 여전히 여름이다.

오래된 소나무와 잡목들이 뒤엉켜 있다. 하지만 어느새 바람이 행복을 나눠준다. 흐린 하늘 열심히 이고 날라 맑게 바꾼다. 짙은 녹음 속으로 순한 길이 쭉 이어진다. 숲속의 기운이 산객의 정신을 맑게 한다. 장마와 태풍의 뒤 끝에도 청량한 숲이다. 한남금북정맥에 짙은 녹음이 피어난다. 길과 산, 숲이 사람의 삶을 아름답게 한다.

선도산 정상석.

ⓒ 함우석주필
녹음 짙은 정맥 길 위로 흰 구름이 흐른다. 한여름 진녹색의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한동안 산책하듯 가볍게 발을 내딛는다. 고요한 숲에서 뒷짐 지고 가볍게 걷는다. 스님들의 포행 흉내도 제 마음껏 내본다. 최고의 자연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린다. 푸른 숲이 그늘로 뒤덮이니 더 아늑하다. 차라리 덜 붐비고 덜 유명해 아주 더 좋다.

유장한 능선이 녹색으로 한참을 흐른다. 수많은 시간을 품고 속리산까지 달린다. 가끔은 별거 아닌 숲속 경관이 신비롭다. 여름에 내는 색이 수묵담채화처럼 곱다. 언제 봐도 시원한 녹색의 그림풍경이다. 걷기가 일상의 고된 짐을 내려놓게 한다. 걸을수록 활기찬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푸르디푸른 청춘을 닮아가게 도와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숲속 길이 울창해진다. 입추와 처서 지나니 더위가 한풀 꺾인다. 가끔 소낙비가 무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그래도 푹푹 찌는 한낮 폭염은 강렬하다.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이 돼야 서늘하다. 데워진 몸은 찬물 신세 져야 시원해진다. 이 생각 저 생각하다 가 선도산 정상이다. 대리석으로 만든 조그만 표지석이 있다.

우거진 나무의 그늘이 햇살을 가려준다. 내뿜는 피톤치드가 청량감을 더해준다. 어두운 원시림 속에 말갛게 자란 숲이다. 숲 사이로 길게 난 정맥길이 오솔길이다. 한 여름 태우는 소리가 바람 타고 흐른다. 새소리 매미울음이 성장소리로 울린다. 무인산불감시초소 옆 철망이 화려하다. 개인·단체 알리는 표식기들이 펄럭인다.
ⓒ 함우석주필
숲이 가장 우거진 계절은 늦은 여름이다. 어느 때보다도 나뭇잎들이 넓고 푸르다. 숲은 울울창창하다 못해 아주 빽빽하다. 여름 햇볕을 방해 없이 바로 받은 덕이다. 그만큼 넓고 진한 그늘을 숲에 드리운다. 바람은 나뭇잎에 스며들며 시원해진다. 숲의 내음과 함께 새로운 향기를 전한다. 산객의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후텁지근 더운 공기가 점차 시원해진다. 시간 지나며 더위가 조금씩 누그러진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순도가 맑아져간다. 숲길의 수종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수많은 꽃들이 돌아가면서 피고 또 진다. 기승을 부리는 염제 치하를 곧 벗어난다. 역시 산이 답이고 이열치열이 신무기다. 숲이 내는 청량한 피톤치드를 만끽한다.

바람이 살살 불면서 더위가 누그러진다. 순하고 부드러운 흙길이 길게 이어진다. 숲속 길은 눅눅하고 땀은 온몸을 적신다. 구름이 산 능선을 타고 올라 회색빛이다. 짙게 흘러가는 구름이 지금을 선물한다. 내려오는 길에 구름 뒤로 숨은 해를 본다. 평범했던 삶의 순간이 순식간 달라진다. 남은 인생을 저 고운 구름에 맡기고 싶다.

안건이고개

ⓒ 함우석주필
선도산 오른쪽은 목련공원과 이어진다. 북쪽계곡은 무심천 주요 수계지역이다. 길은 것대산 활공장까지 길게 이어진다. 두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물줄기가 흐른다. 이 물이 가덕면에 한계저수지를 만든다. 손맛 보려는 꾼들이 즐겨 찾는 낚시터다. 환히 웃으며 손짓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이제 수변공원이 조성돼 산책하기 좋다.

선도산은 청주시 행정구역상 제일 높다. 선두산까지 이어서 가는 길은 꽤 곡지다. 미테재에서 월오동으로 내려가면 쉽다. 한계지서 안건이 고개를 따라 가도 된다. 말구리재에서 한계지로 내려서도 된다. 선도산은 한남금북정맥 주능선에 있다. 전설 등 많은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다. 주말이면 정맥종주 산악인들이 보인다.

신속하게 방향을 바꾸어 다시 출발한다. 속리산 방면 참나무 능선길을 따라 간다. 완만한 능선에는 그저 잡목만 빽빽하다. 평화로움이 정상의 미진함을 대신한다. 길 위로 튀어나온 잔돌이 발목을 잡는다. 가파른 내리막길에선 땀이 줄줄 흐른다. 미끄러지듯 살짝 내려서니 안건이재다. 출발한 지 2시간 지나 고갯마루에 닿는다.

안건이재의 낡은 이정표가 길을 알린다. 선도산 선두산 쪽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낭성면 지산리 마을회관이 멀리 보인다. 쉼도 없이 선두산 쪽으로 길을 이어간다. 능선이 곧게 뻗어 헷갈릴 일이 거의 없다. 한참 고되게 비탈 올라서면 또 비탈이다. 경사 심한 흙길이 한동안 길게 이어진다. 동서남북으로 산마루금이 길게 흐른다.

멧돼지 진흙목욕장.

ⓒ 함우석주필
무거운 발걸음을 선두산으로 옮겨간다. 선도산 쪽으로 가는 길은 나름 부드럽다. 상대적으로 가는 길이 비교적 완만하다. 소나무와 참나무 숲이 사면을 대신한다. 선두산 쪽은 산정까지 힘들게 이어진다. 안건이재에서 정상까지는 꽤 가파르다. 숲은 금방이라도 산짐승이 나올 듯 깊다. 멧돼지가 헐떡이며 달려 나올 풍경이다.

길옆엔 산짐승 지나간 흔적이 뚜렷하다. 파헤쳐지고 아직 마르지 않아 촉촉하다. 멧돼지 발자국이 여기저기 흔하게 있다. 낙엽위의 까만 똥은 아마도 영역표시다. 헛기침과 종소리로 존재를 알리며 간다. 숲길은 한동안 급한 경사지로 이어진다. 나무뿌리가 많이 나와 미끄러지기 쉽다. 가파른 길을 느릿느릿 쉬어가며 걷는다.

가파른 비탈 힘겹게 오르니 또 비탈이다. 숲이 워낙 깊어 꼭대기까지 한참 걸린다. 동행의 도움을 받아 닫힌 길을 열어 간다. 마침내 펼쳐진 푸른 장관의 숲을 만난다. 늘씬한 소나무들이 하늘로 곧게 향한다. 서로 서로 자랑질 하며 멋지게 도열한다. 저마다 가지를 버리고 키 높이를 키운다. 뻗어 올라간 수세가 후련하고 시원하다.
ⓒ 함우석주필
산 벗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 고즈넉하다. 걸으며 먹는 사탕 맛이 피로를 잊게 한다. 쉬어가라 내준 바위에서 다리쉼도 한다. 이따금 나타나는 조망에 마음이 즐겁다. 편히 앉아 산 아래 고요한 풍경을 즐긴다. 충만해진 가을 기운이 산길에 배어든다. 자연이 사람에게 주는 위안이 정말 크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내내 행복하다.

정맥길 구름들이 엷게 흩어지며 떠간다. 선두산이 숨긴 이야기보따리를 만난다. 구불구불 산길을 휘저으며 에둘러간다. 사위가 조용한데 심장이 마구 고동친다. 구름과 바람이 길옆으로 함께 다가선다. 땀 좀 나는 정맥 숲길을 지나니 개운하다. 자연이 만들어낸 풍광 조화가 신비하다. 산객들의 잦은 발걸음을 금방 확인한다.

늦여름 초록 채색에 사방이 만화경이다. 이끼마저 파래서 곧 정령이 나올 것 같다. 시공 초월한 세계에서 영혼이 맑아진다. 청주근교 산의 원시림이 주는 선물이다. 수백 년 산 나무 풍경은 경외감을 준다. 시간을 되돌려 유한 존재임을 잊게 한다. 유한 시간을 잊고 선계에 무한 머무른다. 잠시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 행복이었다.
ⓒ 함우석주필
오래된 숲길에선 오감이 더 싱싱해진다. 숲에 들어서야 비로소 진가를 확인한다. 알싸한 나무향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몇 번의 호흡만으로도 온몸이 청량하다. 청정한 숲길에서 나는 나무 향이 진하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귀를 활짝 열어준다. 숲의 여유가 앙금을 치유하는 힘이 된다. 선도 선두 산길이 어느 때보다 넓고 깊다.

종일 땀 흘린 몸에 스르륵 소름이 돋는다. 박하향이 스미듯이 시원하게 퍼져간다. 서늘해진 숲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피톤치드 기운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간다. 차가운 바람이 화선지 먹물처럼 번진다. 바람도 햇살도 사람들도 잠시 쉬어간다. 속세 뛰어넘는 녹색의 풍경이 뒤덮는다. 시간 잊고 숨은 선도산 선두산 숲길이다.

숲에선 빛과 바람의 소리가 들려야 한다. 그런 숲길이라야 은밀한 보루처럼 남는다. 늦여름 숲길이 곱게 남아야 사람이 찾는다. 화려하기보다 예쁘고 고와야 친근하다. 선도 선두 산길이 그런 깊이를 선물한다. 짙은 녹음이 여름 산길과 잘도 어울린다. 숲속의 시원한 감정을 오롯이 담아낸다. 숲길은 시원의 길일 때 정말로 가치 있다.

가다보면 녹색 숲이 파란 하늘과 만난다. 하늘 땅 두 빛이 찬란하게 세상을 만든다. 철지난 주황의 나리꽃이 환히 웃는다. 생명 다한 고사목도 한 풍경을 돕는다. 기도와 그리움이 동시에 만나는 공간이다. 산길과 물길, 사람길이 정말 다르지 않다. 좋은 친구들과 걸으며 깨달음을 얻는다. 좌우봉원 위학일익이 산길에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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