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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4.03 17:45:38
  • 최종수정2018.04.03 17:45:38

이상은 대표가 직접 포장한 꽃차 브랜드 상품.

ⓒ 강병조기자
[충북일보] "고마워, 예쁘게 자라줘서."

허리를 숙여 작은 꽃에 속삭인다. 온기를 담은 두 손으로 꽃잎을 어루만진다.

거친 잎들은 그제야 물에 서서히 잠긴다. 찻잔에 흐르는 푸른 빛이 꽃의 마지막 화답이다.

꽃차 가공업체 '꽃누리한' 이상은(35) 대표는 차를 만들기 앞서 작은 생명에게 감사의 말을 건넨다. 꽃의 마음과 감정을 정성스레 보듬어야 차의 온전한 맛과 향이 배어나온다는 생각에서다.

꽃차 만드는 일은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늘진 곳에 잎을 널어 놓고, 수분이 빠질 때를 기다린다. 적당히 남은 수분은 달궈진 솥에 직접 볶아 말려야 한다.

얇은 꽃잎이 타지 않도록 시시각각 온도를 조절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수분이 완벽히 제거되면 병에 넣어 잎을 재운다. 맛과 향, 빛깔을 자연 그대로 담는 과정이다.

"꽃은 사람처럼 예민해요. 만든 이의 태도와 자세가 차에 녹아들죠. 대충 만들거나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선 꽃차의 맛과 빛, 향이 모두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요."

이상은대표

ⓒ 강병조기자
서른 중반의 젊은 나이에도 이 대표의 말씨는 오랜 장인을 닮아 있었다. 미용 일을 하며 꽃차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스승'이 그의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대표를 가르친 이는 충북꽃잎문화협회 최윤정 이사다. 4년 전 우연히 들었던 최 이사의 강연이 이 대표의 마음을 흔들었다. 미용의 꿈을 내려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가 아직 생생해요. 금계국차를 내주셨는데, 맛이 순할 뿐 아니라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까지 느껴졌어요. 꽃을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를 닮고 싶었고, 제가 느낀 이 따뜻함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이 대표는 4년 동안 묵묵히 배우고 익혔다. '음식에 장난치지 마라, 누구나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차를 만들라'는 최 이사의 철학은 이 대표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조금의 독성이라도 있는 꽃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식 허용한 꽃들만 재료로 쓴다. 단순히 생김새가 예쁘다는 이유로 차를 만들지 않는다.
ⓒ 강병조기자
1년 전 창업한 꽃누리한에서도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스승의 품이 그립고 친근하지만, 제 꿈을 조금씩 실현하기 위해 1인 기업으로 운영 중이다. 꽃차는 가격이 비싸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세간의 평가를 줄여보자는 게 이 대표의 최종 목표다.

"꽃차라고 하면 노년층을 위한 건강 음료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아요.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바쁜 직장인이나 아픈 청춘들에게도 힐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꽃누리한은 온라인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 돼 따로 카페나 매장을 운영하긴 어렵다. 꽃차를 상업적 용도로만 쓰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기도 하다.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층들은 금새 꽃차에 매료됐다. '고귀한 목련의 아름다움 그리고 이별(목련꽃차)', '추억 그리고 나를 생각해 주세요(보리순팬지꽃차)' 등 감성적인 상품 이름도 취향에 맞았다.
ⓒ 강병조기자
최근에는 젊은 이들을 위한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꽃차를 쉽고 간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티백 형태로 만들고, 과일과 궁합이 맞는 꽃을 혼합한 '워터티'를 출시했다.

"꽃차 생산부터 판매, 유통, 홍보까지 혼자 하고 있어요. 밤을 새운 적도 많지만 제 차를 드신 분들이 남기는 댓글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카페나, 매장을 차리면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운영할 계획은 없어요. 질 좋은 차를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사람에 알리는 게 제 '초심'이니까요."

꽃차를 만들며 한결 차분해졌다는 이상은 대표. 그가 꽃이라면 어떤 꽃말이 어울릴까.

그가 내어준 연잎차 한 모금을 입에 댔다. 부드러움과 평온함이었다.

/ 강병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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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우리 사회는 아직 여성들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직장 내에서도 여전히 '유리벽'은 존재한다. 국가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여성들의 삶은 어쩌면 '혁명적 인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충북 진천 출신의 임근자 충북지방조달청장. 그를 만나 40년 공직생활의 궤적을 들여다보았다. 인터뷰 내내 웃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1979년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체신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제가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만 19세에 임용됐다. 첫 발령지인 충북지방조달청에서 16년간 근무한 후 대전지방조달청을 거쳐 본청으로 갔다. 본청에서 사무관 승진 전(2004년)까지 근무한 뒤 2005년 충북청에서 1년간 관리과장을 맡았다. 본청으로 다시 돌아간 후 여성 최초로 감사담당관실에서 사무관으로 3년간 근무했다. 그 이후 고객지원팀, 구매총괄과, 국유재산기획조사과장 등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업무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승진 때만 열심히 일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