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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4.17 18:19:31
  • 최종수정2018.04.17 18:19:31

노동주 관장

ⓒ 강병조기자
[충북일보] 사각의 링 위에선 누구나 평등하다. 가진 것이라곤 맨몸이 전부다. 상대를 쓰러 뜨리는 건 둘째다. 제 주먹을 뻗는 이가 대결의 승자다. 그들은 안다. 보이지 않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 대결은 언제나 링 밖에서부터 시작된다.

올해로 24살의 앳된 나이다. 스마트복싱GYM 노동주 관장은 링 위에 다시 섰다. 화려했던 선수시절 링이 아니다. 새롭게 오른 링은 누군가의 꿈을 갈고 닦아줄 복싱 지도자의 길이다. 중학교 1학년에 시작해 고등학교 3년 끝마친 선수 생활 이후의 삶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6년이었다.

"그저 운동이 좋아 복싱을 택했습니다. 제겐 그 이유면 충분했습니다.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도 높은 훈련의 연속이었지만 복싱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겐 가장 큰 힘이었죠."

덤덤한 말씨에선 복서의 태가 여전히 묻어났다. 선수시절 그는 '독종'이었다. 새벽 5시 반부터 밤 8시까지 이어진 합숙훈련이 때론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청주 명암저수지를 운동장 삼아 달렸다. 낮밤 가리지 않았다. 오직 복싱을 위해 제 몸을 혹독하게 다뤘다.

"힘들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죠. 특히 시합 전 체중감량을 할 땐 정말 '죽을 맛'입니다. 계체량을 통과하려면 식단조절은 물론 운동량도 더 늘려야 하니까요. 하지만 제 스스로를 절벽 끄트머리에 밀어넣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어렸을 나이다. 힘들단 투정도 부릴 법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이 누구보다 필요한 소년이었다. 이른 나이에 소년에서 어른이 된 노 관장. 그가 이토록 '어른'이 돼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내 꼭 다물던 노 관장의 입에서 '가족'이란 말이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을 '홀로'라고 표현했다. 부모가 있었지만 서로 떨어져 살았다. 줄곧 할머니와 이모들 손에 자랐다. 복싱을 하겠단 말에도 부모는 '알아서 하라'는 말 뿐이었다. 학창시절 다른 선수들의 새 복싱 글러브나 운동화를 보며 부러움을 삭힌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가족이 함께 산 기억은 얼마 없어요. 아마 부모님이 자녀 육아엔 큰 관심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가끔 아버지께서 저와 남동생을 챙겨주셨죠. 전 이제 성인이 됐으니 괜찮아요. 걱정 되는 건 어린 동생이죠."

선수생활을 접었던 건 동생을 위해서였다. '가족사'에 사로 잡히지 않고 동생이 바르게 자라길 바랐다. 고등학교 3학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턴 노 관장이 가장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전국 아마추어 복싱대회 은상을 끝으로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 강병조기자
선배를 쫓아 낯선 서울로 향했다. 변변한 밑천이 없기에 코치 일을 시작했다. '줄넘기만 한다'는 옛 이미지를 벗어나 힐링을 내세운 복싱장이 추세였다. 묵묵히 운영 노하우를 배웠다. 2년 전 청주에 내려와 도장을 차리고 운동 프로그램, 내부 인테리어, 시설 등 새롭게 뜯어 고쳤다. 막막할 때마다 복싱을 떠올렸다. 흘린 땀을 믿었다.

"처음엔 역시 힘들었죠. 회원들마다 운동량과 방법을 달리해야 하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정신적 부분까지 챙겨야 하니까요. 그래도 보람있어요. 따돌림 당하는 학생도, 다이어트 중인 직장인도 운동이 끝난 후에는 건강한 몸 뿐 아니라 '자신감'을 갖고 가시거든요."

노 관장은 얼마 전 은행에서 빌린 복싱장 인수비를 모두 갚았다. 그런데도 그는 쉼이 없다. 뛰어난 선수, 능력 있는 지도자를 넘어 나눔을 향한 3라운드다. 그는 오는 5월부터 근처 주민센터와 함께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운동 나눔 활동을 진행한다.

링 위에 홀로선 노 관장. 그의 라운드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복서의 답은 짧고 묵직했다.

"주먹을 뻗기 위해 한 발 더 뛸 뿐 입니다."

/ 강병조기자 dkrm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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