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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1.29 17:25:08
  • 최종수정2019.01.29 17:25:08
[충북일보] 새벽 3시. 전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퍼진다.

어두운 골목을 맛있는 냄새로 채우는 건 고객의 시제(時祭)를 준비하는 제사음식 전문점 '청주제례당'이다. 아침에 제사를 모셔야 하는 특성상 모든 준비는 새벽녘에 이뤄진다.

이순영 대표는 1년에 12번씩 제사를 모시는 종갓집에서 자랐다. 힘든 내색 한번 없으셨던 어머니는 외동딸이 아까워 혼자 제사를 준비하셨다. 시키지 않아도 어머니를 돕다 보니 자연스레 제사 준비가 몸에 익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이 대표는 장남인 남편을 만났다. 결혼한 뒤에도 제사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맞벌이를 하던 이 대표지만 명절이나 제사 때는 역할을 맡았다. 어깨너머로 배운 상차림은 어느새 눈앞에 있었다.
평소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남편이다. 어느 날 아침 잠든 이 대표를 깨우며 제사음식을 만들어주는 일을 해보면 어떻겠다고 권유했다. '분명히 잘될 일'이라고 말했다. 절대 안 한다고 손사래 치던 그 날로부터 10여 년 후 청주제례당의 문을 열었다.

늘 가까이 있던 일이라 힘든 줄도 몰랐다. 무엇보다 홍보가 먼저였다. 종친회가 열리는 곳부터 찾아갔다. 온갖 짐을 싸 들고 경주까지 내려가 상차림을 선보였다. 정성이 가득 담긴 정갈한 한상은 조상을 모시는 이들의 마음을 감화시켰다. 한 번 이 대표의 손을 빌리면 다음 해에도 그 손길을 잊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고객의 수가 늘었다. 고객의 날들을 꼼꼼히 기록하다 보니 명절 외에도 기억해야 할 날이 많아졌다.
14년 운영하면서 고객층이 다양해졌다. 제사상을 직접 준비하는 여성들이 선호할 것 같지만 실상 주문을 하는 것은 남성인 경우가 많다.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들이 힘든 아내를 위해, 며느리를 위해 전화를 걸어온다.

힘에 부치지만 부모님을 기리고 싶어 하는 노년층의 정성 어린 마음이다.

젊은 층의 주문도 늘었다. 한 가지 음식을 해내기 위해 다양한 재료가 필요한 제사음식의 특성상 재룟값을 생각하면 그 또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기성품과는 달리 정성이 담긴 완성품을 찾는 합리적인 계산이다.

완성된 음식을 가지러온 주부들은 준비된 한 상 차림을 보며 "손해가 아니냐"며 이 대표를 걱정하기도 한다. 직접 만들어 본 이들만 아는 '이심전심'이다.

제사를 지낸 후 남는 음식을 처리하기 어려운 소규모 가족 단위도 많아졌다. 10여 년 전에는 없었던 '알뜰상' 품목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1~2인의 가족들도 형식에 맞춰 필요한 만큼의 음식으로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됐다. 불필요한 음식 낭비 없이 딱 맞는 음식만 사용하고 그날 소진할 수 있어 각광받는다.
제사상을 간소화하는 추세도 한몫했다. 긴 준비시간과 노동력 대신 주문한 시간에 준비된 음식을 받아 제사를 지낸 뒤 가족과 함께 휴일을 즐기려는 이들도 늘었기 때문이다.

제사의 종류나 지내는 장소에 따라 포장을 달리하는 섬세한 배려도 청주제례당의 특장점이다. 야외에서 제사를 모셔야 할 때 필요한 일회용품(가위, 칼, 접시, 크린백, 소주컵 등)에 쓰레기봉투까지 일괄적으로 제공해 더는 필요한 물품이 없도록 했다.

해마다 시제를 맡기는 것은 물론 주변 지인들에게도 소개하는 손님들이 늘었다. 가족 행사에 해마다 만나다 보니 가족과 다름없는 따뜻함마저 쌓였다. 제사를 잘 치렀다며 손편지와 함께 인사를 전했다는 한 고객의 마음이 몇 년째 이 대표의 책상에 고이 펼쳐져 있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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