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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숲은 드문드문 부지깽이가 꽂힌 듯 했다

28. 원자폭탄에 와해된 히로시마대본영
히로시마 대본영, 원폭 폭풍과 열기로 순식간에 완전 폐허
일제 50여년 동안 침략 전쟁…대본영 무너지자 결국 항복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은 가해사실 설명없이 피해만 강조

  • 웹출고시간2013.05.07 18:02:1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28. 원자폭탄에 와해된 히로시마대본영

1945년 8월 6일 원폭으로 파괴된 히로시마대본영.

■ 원자폭탄과 히로시마대본영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성 주변 일대를 휩쓸어버렸다. 먼저 폭풍이 몰아친 다음에 열기가 밀려왔다. 목조건축이 대부분인 히로시마성 일대의 병영 건물은 강력한 폭풍을 맞아 모두 와해되었다. 불에 탄 숲들은 땅에 드문드문 부지깽이가 꽂힌 것처럼 처참하게 변했다.

대본영 건물도 폭삭 주저앉았다. 2층 발코니를 받쳐주던 둥근기둥 4개가 뒤로 나란히 넘어진 위에는 마구 헤쳐진 지붕이 얹혀졌다. 뒤쪽 기둥 두 개가 허공을 바치고 있고, 하얀 대석만 처참한 건물 파편 속에 깔린 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폐허로 변한 히로시마성 주변 5사단 병영.

5사단 사령부 1호청사로 건축된 이 건물은 청일전쟁 기간 동안 메이지천황이 주재하여 성역처럼 된 곳이었다. 일본제국이 팽창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교육하던 견학 장소이기도 했다. 이제 조촐하면서 위엄 있던 모습은 원폭의 폭풍으로 일거에 사라졌다.

천수각 전시실에 있는 히로시마대본영이 붕괴된 사진은 참으로 중요한 역사기록이었다. 그 사진은 충격적인 사료였다. 1894년 조선 국왕과 백성에게 무자비하게 자행한 폭거를 이 대본영에서 시작했다. 청국 조야를 한껏 경멸하면서 시모노세키 강화회의에 온 북양대신 이홍장을 짓누른 힘의 원천인 제국군대를 이 건물에서 지휘했다. 무시무시한 그 대본영 건물이 산산이 무너진 형태로 거기에 나타났다.

■ 히로시마의 폐허를 촬영한 감독

붕괴된 대본영을 찍은 사람은 기록영화 촬영감독인 미키 시게루(三木茂, 1905~1978)였다. 1920년대 무성영화 시기부터 수많은 극영화를 촬영한 이 카메라맨은 1936년 개기일식을 기록한 '검은 태양'이 영화기술상을 받은 이후 기록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히로시마 원폭영화를 촬영한 미키 시게루 감독을 다룬 책

이때의 기록영화 주제는 승리하는 일본군만한 것이 없었다. 일본제국의 극성기의 침략전쟁은 가메이 후미오(龜井文夫, 1908~1987) 감독과 함께 찍은 '상하이(上海)' '싸우는 병대' 등에서 표현되었다. '상하이'는 노구교사건에서부터 우한(武漢) 점령에 이르는 과정과 상하이조계에 관한 기록영상물이고, '싸우는 병대'는 전쟁의 실상을 찍은 기록영화였다.

일본인의 전의를 고양시키려는 목적이었지만, 1938년 우한을 점령하고 성벽에 올라 만세를 부르는 전쟁사진과는 다르게, 중일전쟁의 기록영화인 '상하이'는 전쟁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효과를 가져왔다. 군부의 후원을 받은 '싸우는 병대'는 전투가 지나간 지역에서 집을 잃은 아이들이나 전사한 전우의 아내가 보낸 편지, 헤어진 군기 앞에서 벌어진 사열 등이 들어가서 검열에 걸려 공개가 금지되었다.

기무라 소토지(木村莊十二, 1903~1988) 감독과 찍은 '해군폭격대'는 적진을 공격하던 활동상을 기록한 것이다. 이 영화는 1938년 중국 후난성 형양(衝陽)의 공군기지 기습 과정, 즉 출격과 폭격 그리고 공중전과 위험한 귀환 등을 특수효과로 그려내서 인기를 끌었다.

제국시네마의 촬영감독을 거쳐 도호(東寶)영화주식회사에 있던 미키 시게루가 히로시마에 온 것은 9월 중순. 미점령군 관리하에 있던 원폭 피해조사위원회에서 기록영화 제작을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토목건축반에 소속된 미키 시게루는 히로시마의 피해상을 상세히 찍었는데, 모든 필름을 제출하지 않고 일부를 자기집 천정과 지붕 사이의 공간에 감추었다. 이 필름을 재구성한 작품이 유명한 원폭 기록영화 「히로시마·나가사키 1945년 8월」이다.

미키 시게루가 소속된 토목건축반에서 찍은 폭심지의 폐허 사진.

미키 시게루가 히로시마대본영이 와해된 사진을 찍은 것은 이때였다. 히로시 마대본영에서 전쟁을 시작한 일본제국은 51년 동안 침략과 전쟁을 계속하다가 이 대본영이 무너진 직후 항복했다. 중국 내륙으로 번진 전쟁의 실체를 카메라맨으로 목격했던 그가 폐허가 된 대본영을 찍을 것이라고 결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히로시마의 교훈을 외면하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는 인류사에서 가장 큰 비극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나라도 8월 6일과 9일을 축일로 삼지 않는다. 한 세대 이상 식민지 질곡 속에서 지내던 한국과 남경대학살이란 비참한 경험을 한 중국도 이 날을 기념하지 않는다. 일본군의 잔학상에 치를 떨던 필리핀, 말레시아,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도 축제의 날로 정하지 않았다. 원폭 투하가 가져온 비극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기념이나 종전 축하는 8월 15일에 한다. 쇼와천황의 항복 선언일을 기념일로 삼은 것이다.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가 종전을 앞당긴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그냥 지나가고 있다.

히로시마 상공의 원자폭탄 폭발지점을 보여주는 전시물.

그러나 일본은 이런 배려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매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나오는 평화선언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날 평화기념공원 위령비 앞에서 대규모 기념식을 한다. 원폭 사망자의 유족을 비롯 국내외 참가자들이 헌화와 묵념을 한 뒤 평화의 종을 울린다. 그 다음 비둘기를 날리기 전에 히로시마 시장이 평화선언문을 읽는다.

이 선언문은 1945년 어린이의 피폭 체험을 소개하며 히로시마는 원폭으로 희생되었다고 애절하게 호소한다. 그리고 핵병기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세계의 항구평화를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원폭을 폐절해서 인류사에 원폭 투하가 다시없도록 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진다. 이제 피폭자의 평균나이가 78세 이상이기 때문에 전승자 양성사업을 하겠다고 밝힌다.

여기에선 원폭 투하의 원인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평화로운 도시 히로시마가 갑자기 원폭을 맞아 폐허가 된 것처럼 표현한다. 비인도적인 핵병기의 폐절을 말하는 일본인은 가장 인도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이 된다. 반성이 전혀 없다.

일본제국은 온갖 이유를 붙여 침략과 전쟁의 시작을 합리화했다. 종전을 맞을 때도 똑같았다. 온통 천황 숭배의 광신도가 되어 잔혹하고 모질게 폭력을 행사한 전범 행위는 말하지 않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계획적인 전략에 의해 원폭 공격을 받았는데 유색인이니까 당했다고만 말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자 중 10%가 한국인이다. 70만 명의 사상자 가운데 7만 명 이상 피폭되어 4만 명 이상 즉사했고, 2만여 명은 귀국해 고통 속에 살았으나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대부분 강제징용으로 군사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매여있던 사람들이었다. 한국은 실제 두 번째 피폭국이지만 '평화애호국' 일본은 평화선언에서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 히로시마를 방문한 트루만대통령 손자

2012년 여름 원폭 투하를 결정한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 대통령의 손자가 히로시마를 찾아와 화제였다. 트루먼 대통령의 전기를 쓴 작가인 외동딸 마가렛(Mary Margaret Truman Daniel, 1924~2008)의 큰아들 클립튼 트루먼 다니엘(Clifton Truman Daniel, 1957~)이 8월 4일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한 것이다.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주요 뉴스로 다뤘다.

원폭 투하를 결정한 트루먼 미국 33대 대통령.

한 TV방송에서 시민 소감을 전했다. "어떻게 감히 히로시마에 오려고 했는지 그 용기가 가상하다." 그것이 일본의 여론이었다. 히로시마에선 일본제국이 평화를 대표하였고, 원폭을 투하한 미국은 '인류사에 다시없는' 폭력을 상징했다.

똑같은 역사적 대사건을 다르게 보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 일본여성의 증언이 핵심을 전해준다. "일본에서 살 때 한 번도 일본의 침략과 전쟁범죄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원폭 피해만 강조했으니 삐딱하게 트루먼 대통령을 보게 된 것이다.

히로시마 위령비에 이런 글귀가 있다. "편안하게 잠드소서. 잘못은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 누구의 잘못인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인가, 전쟁 종료를 위한 트루먼의 결정인가.

일본제국의 군사도시, 침략전쟁의 발신지, 동아시아 학살 원흉의 출발지인 히로시마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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