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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 평화 vs 자랑스러운 승리…일본의 두 얼굴

히로시마성 안의 벙커 잔해엔 아직도 생생한 전쟁의 참화
히지야마 여고 비석은 열기속에 죽어간 당시 소녀들 위로
전국 호국신사, 야스쿠니신사 능가하는 전쟁미화 도구

  • 웹출고시간2013.04.30 16:41:4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27. 원자폭탄과 히로시마성의 5사단

■ 원폭 맞은 지하통신실

지하 벙커 잔해들.

히로시마성 안에 일본군이 작전사령실과 지하통신실로 사용하던 벙커 잔해가 그대로 있다. 대본영 터 정면 아래의 낮은 지대이다. 원폭 투하 직후에 찍은 사진 안내판이 처절했던 말로를 보여준다. 주변 위장숲의 나무들은 폭풍의 열기가 지나가 타버린 숯처럼 변했고 앙상하게 시멘트가 드러나 있다.

시멘트 벙커 위에 올라가자 환기구와 함께 벙커 속의 방과 방을 막은 구조물이 나온다. 그것을 보자 갑자기 울컥해진다. 이 아래서 근무하던 통신실 장병들은 1945년 8월 6일 8시 15분 동시에 몰살했을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 동안 풀밭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패전 당시의 일본 군사관할지도.

패전할 때 히로시마성은 유수5사단사령부를 겸한 쥬고쿠군관구(中國軍管區) 사령부였다. 시고쿠(四國) 지역은 빠져나가 별도의 군관구가 설치되어 히로시마, 야마구치, 오카야마 등지를 관할했다. 1945년 2월 본토결전을 결정하고 작전부대와 관구부대를 나누어 방면군사령부 예하에 두고 지휘했는데 쥬고쿠군관구는 15방면군에 속했다.

관내 각 부대에 모르스부호로 명령을 내려 보내던 무전기는 어디에 있었을까. 벙커에서 전선이 빠져나올 곳은 여러 군데 보인다. 뒤쪽으로 돌아서 내려왔다. 반지하 시멘트 구조물의 크기가 상당하다. 면적은 208m², 약 63평으로 천정 높이는 1.9m, 벽두께는 50m였다. 입구부터 정보실, 무선통신실, 지휘연락실, 작전사령실이 배치되었다. 방마다 공기순환을 위해 만든 창이 삐쭉 나와 있다.

직격탄을 맞지 않으면 산발하는 포탄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벙커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원자폭탄의 엄청난 위력에는 쓸모가 없었다. 한 줄기 섬광 속에 모든 것이 궤멸되었다.

■ 히로시마성의 위령비

히로시마성 쥬고쿠군관구 사령부의 지하 벙커 앞에 세운 위령비. 히지야마여고에서 동원된 학생들도 여기서 희생되었다.

매년 8월 6일 파괴된 벙커 앞 위령비에서 추도식을 갖는다. 히지야마(比治山)여자중고등학교가 주최하는 행사이다. 1945년 여름 이 여학교 학생들이 동원되어 사령부에서 잡일을 맡다가 함께 피폭이 되었다. 그래서 학교 관계자가 중심이 되어 위령비를 세우고, 원폭이 떨어진 시간에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의 실현을 맹서하고 있다.

지하 벙커의 창가에 드리운 색색가지 천조각.

비석 앞에 색색 천들과 함께 다섯 개의 패트병이 놓여있다. 원폭 열기로 죽어갈 때 갈증을 호소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여학생들의 절규가 벙커 속에 아직도 맴도는 것 같다. 패트병 앞에 나무아미타불을 쓴 목패도 있다.

위령비는 경건한 마음이 들도록 조촐한 모습이다. 이 위령비를 전후 68년 동안 새로 자라난 나무가 감싸고 있다. 이제 세월이 남겨주는 흔적이 배어난다. 돌이끼가 위령비를 받쳐주는 대석이나 호석에 가득하다.

벙커 출입구는 쇠문을 닫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철문 위의 시멘트를 보면 적어도 세 차례 겹겹이 쌓았다. 철근도 드러나 있다. 히로시마 고성 안에 본토결전을 위한 시설을 만들 줄은 몰랐을 것이다. 창구를 얼룩덜룩한 천으로 막은 것도 보인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 이런 글귀가 침략전쟁을 지휘하던 청일전쟁 대본영 앞의 안내판에 있는 것은 역설이다. 참으로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다. 그래도 이런 표현은 곳곳에 원폭의 피해를 일방적인 전쟁의 희생으로 바꿔놓은 글귀에 비하면 약과처럼 보인다.

■ 히로시마성의 호국신사

히로시마성 안에 있는 히로시마 호국신사. 전국에 이런 호국신사가 70여개나 있다.

폐허 모습의 지하통신실과 대조되는 것이 바로 앞에 있는 히로시마 호국신사이다. 2009년에 개축 준공된 이 신사는 모든 것이 새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각종 침략전쟁에서 죽은 9만2천여 전몰자의 신주를 안치했다. 그중에는 원폭에 희생된 근로봉사학생과 여자정신대 등 1만 명의 신주도 있다.

전쟁을 상징하는 군마 조형이 한 곁에 당당하게 놓여있다. 한쪽에선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말하고, 한쪽에선 전쟁을 일으키고 승리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신사의 새 건물을 배경으로 국화무늬가 박힌 진초록 군마 몸체가 주변을 압도한다.

근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숨진 전사자들을 합사해 떠받드는 신사는 야스쿠니신사뿐 아니다. 전국 현과 시에 산재한 호국신사가 70여개나 된다. 여기서 매일 아침 10시 공양제가 열리는 것은 물론 매월 월례제사를 지내고, 매해 첫날부터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사를 지낸다. 메이지천황과 쇼와천황의 생일도 중요한 제사날이다.

그뿐 아니다. 취직, 성적, 합격, 생일, 액땜, 장수기원, 결혼기념 등 갖가지 기원과 운동경기의 승리기원도 호국신사에서 한다. 그래서 프로구단이 선수단을 이끌고 줄을 지어 들어와 경기 승리를 기원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일어난다.

1급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만 문제가 아니다. 호국신사는 침략지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던 일본군의 영령을 받들면서 각종 행운을 오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장소가 되었다. 국가폭력의 수행자들을 미화하는 행사가 이처럼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한국과 중국에서 야스쿠니신사만 가지고 떠드는 것이 우스울 것이다.

■ 5사단 병영의 1만 장병

일본제국의 육군 5사단은 침략의 첨병사단이었다. 일제의 첫 침략지가 조선이었기 때문에 그 피해는 온통 조선에 쏟아졌다. 조선 정부에 동맹조약을 강요하고, 청과 벌이는 전쟁에 조선 관군을 이끌고 출동한 군대가 이 5사단이었다. 뤼순을 공격해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중국 대륙에서 마구 잔인한 행동을 저지른 부대도 5사단이었다.

원폭으로 5사단 병영이 파괴되고 1만 병사가 희생되었다는 안내판이 성문 앞에 있다.

히로시마성 주변 일대는 5사단 병영으로 빽빽했다. 거의 목조 2층 건물이었다. 히로시마는 5사단 병영이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군사도시였다. 그 병영 자리에 낡은 안내판이 하나 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폭심 400m에서 1200m 이내에 있던 5사단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되고 화염에 휩싸여 재로 돌아갔다. 무너진 건물 더미 중에 병사와 군마가 깔려있었고, 사령부를 비롯 보병, 포병, 병참대 약 1만 명의 병사가 죽거나 부상했다."

또다시 숙연해진다. 젊은 병사 1만 명이 동시에 희생되었다.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비극이 거기에 있었다. 원자폭탄의 참화는 아무도 가리지 않는다. 폭풍과 열기가 모든 것을 앗아간다. 그리고 폐허만 남는다.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근대일본의 지도자들은 침략과 전쟁을 지향했다. 그것이 바로 피해국에서 보는 '언덕 위의 구름'이었다. 그것은 수많은 학살과 파괴를 초래했다. 조선과 중국과 필리핀과 말레시아와 버마와 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결국 침략과 전쟁의 시작점인 히로시마도 폐허가 되었다.

지금 히로시마성의 천수각은 복원되었다. 커다란 북이 있던 누각과 회랑도 복원한 상태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5사단 병영은 복원되지 않았다. 안내판은 피폭 상태의 항공사진으로 처절했던 전쟁의 마지막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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