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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순양함, 아산 앞바다에서 청국함정 기습 공격

18. 한중일역사분쟁사= 청일전쟁 발발
일본제국의 전쟁은 선전포고 없는 기습 공격으로 시작
일본군은 군신(軍神)이란 상징을 만들어 병사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도고 헤이하치로와 노기 마레스케는 해군과 육군의 대표적 군신(軍神)

  • 웹출고시간2013.02.12 16:56:4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18. 청일전쟁 발발

도고 헤이하치로

시바료타로가 소설 「언덕 위의 구름」 에서 아키야마 사네유키에게 왜구의 전법을 전해주었다고 한 오가사와라 나가나리(小笠原長生)는 필생의 사업이 따로 있었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1848~1934)를 미화하는 일이었다.

도고는 군신(軍神) 반열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군신이라면 천황보다 계급이 높은 것인지 모른다. 아니라면 천황이 여러 신(神)을 천상에서 지배하는 절대자로 보는지 또 모르겠다. 여하튼 복잡하지만 오가사와라가 도고를 선전하는 책은 여러 권이다.

1904년 『일본제국해상권력사강의』부터 1927년 『도고원수상전(東鄕元帥詳傳)』, 1934년 『만년의 도고원수』 『도고원수』, 1935년 『고 도고원수를 말한다』, 1935년 『도고원수의 위업』, 1936년 『격멸:일본해해전비사』, 1940년 『성장동향전전(聖將東鄕全傳)』, 1941년 『약전도고원수(略傳東鄕元帥)』 등 줄기차게 썼다. 1930년에는 도고의 글을 모아 『도고 헤이하치로전집』 3권, 1932년에는 『애국독본』이란 책도 냈다.

도고 헤이하치로의 생애, 일화, 전투, 평가 등 거의 모든 것이 이런 글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도고종교의 신자라는 말까지 있다. 오가사와라 그 자신이 가라쓰번주인 아버지의 작위를 계승한 자작의 위치에 있었는데 여기서 드러내려고 한 것이 무엇일까·

첫째는 도고에게 애국심을 배우라는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모델이 여기서 만들어졌다. 둘째는 강대국 러시아에 승리한 함대의 지휘관을 영웅으로 추앙해서 제국 일본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도고는 그럴만한 위인인가. 시바료타로는 그리 대단한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지휘관으로서 역량도 그렇고, 발틱함대와 전투한 공로도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소설 주인공인 아키야마 사네유키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풀어갔기 때문에 도고는 거추장스러운 조연처럼 보인다.

도고의 이력을 찾아보면 결정적인 결점이 떠오른다. 근대 해군장교로서는 결코 가려질 수 없는 행위를 조선의 풍도 앞바다에서 범한 것이다. 고승호 격침사건이 그것이다.

■ 전쟁의 참상을 가린 군신들

도쿄 황거(皇居)의 남쪽에 있는 문이 사쿠라다문(櫻田門)이다. 그 앞에서 시작되는 큰길 주변에 중앙 관청가가 펼쳐진다. 이 관청가의 서쪽에 의회가 있다. 의회를 지나 계속가면 아카사카에 마치 작은 숲처럼 보이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 황태자가 사는 동궁이 있고 여기서 몇 블록 더 서쪽으로 가면 시부야의 메이지 신궁(神宮)이 보인다. 바로 그 근처에 도고신사(東鄕神社)가 있다.

노기 마레스케

메이지시기의 대표적인 전쟁 영웅이 '육지의 노기, 바다의 도고'였다.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1849~1912)는 여순 포위공격 때 막대한 희생을 냈던 3군사령관으로서 메이지천황 장례식 날인 1912년 9월 메이지의 사진 앞에서 부인과 함께 자결한다. 여순에서 무모한 공격으로 곤경에 빠졌을 때 메이지천황이 "내가 살아있는 한 자결을 금지한다."는 명을 내렸다. 결국 메이지천황의 장례식에 할복 자결했는데 고대사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순사(殉死)라고 칭송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노기의 신사는 고향인 야마구치의 시모노세키와 도쿄, 교토, 도치기, 홋카이도 등 각지에 세워진다.

노기의 도쿄신사는 집터인 아카사카에 있지만 도고신사는 메이지 신궁 근처에 있다. 도고는 죽어서도 메이지를 멀리 떠나지 못했다. 아니 일본제국 군부가 메이지 곁에 묶어둔 것이다. 도고가 죽자 한때 그의 부관이었던 해군대신 오스미 미네오(大角岑生)가 '도고원수기념회'를 만들었다. 이 기념회의 중요 사업이 메이지신궁 옆에 도고신사를 건립하는 것이었다.

이런 인물들이 죽어서 군신이 되었을 때 전쟁의 참상은 사라지게 된다. 전쟁영웅과 천황! 아니 천황과 전쟁영웅! 얼마나 그럴싸한 제목이었을까?

도고를 미화한 「도고원수상전」

이런 최고지휘관이 아닌 軍神도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군신이 히로세 타케오(廣瀨武夫, 1868~1904) 소좌이다. 화물선 후쿠이마루(福井丸)의 선장인 그는 여순항 입구에 접근해 배를 침몰시켜 통행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결국 러시아군 포대에서 날라 온 직격탄을 맞아 죽고 작전은 실패하지만 그를 미화하는 창가가 유행하게 된다. 이것이 전쟁을 미화시키는 또 다른 무기였다.

이런 창가를 만든 군신은 또 있다. 러시아군을 공격하다가 전신에 총상을 입었으나 일보도 후퇴하지 않고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다치바나 중좌(橘中佐)'이다. 상해사변 때 중국혁명군의 진지에 설치된 철조망을 넘기 위해 점화된 폭탄을 가지고 돌격해서 폭사한 이른바 육탄 3용사도 군신이 되었다.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면서 특수 잠함정인 고효데키(甲標的)를 타고 돌입한 후 돌아오지 않은 9명의 공격대도 '구군신(九軍神)'을 추앙되었다.

■ 풍도 앞바다와 일본의 연합함대

조선침략을 목표로 청과 전쟁을 결정한 일본은 히로시마에 주둔한 육군 5사단을 파견하였다. 조선정부의 요청에 따라 청군이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조선을 파병하자 전쟁의 기회로 잡은 것이다. 선발대로 5사단 예하의 혼성 제9여단이 군함을 타고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들어왔다. 조선정부에서 항의해도 막무가내였다.

이어 일본 해군도 조선 해역에 들어왔다. 해군 연합함대에 서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근거지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여기에 청군 수송선단과 호위함대의 파쇄명령도 덧붙였다.

연합함대 사령관은 이토 스케유키(伊東祐亨, 1843~1914) 중장이었다. 그는 사쓰마번 사무라이 출신으로 가고시마의 조카마치 출신이다. 당시 육군 핵심은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같은 조슈 인물판이었고, 해군 핵심은 사쓰마판으로 짜여졌다. 사쓰마 출신인 이토는 초대연합함대 사령관이 되어 청의 북양함대와 대적하게 된다.

이토는 번에서 설치한 개성소(開成所)에서 서양학문을 익히고, 고베에 있던 해군조련소에서 항해술을 배웠다. 해군조련소는 막부의 해군을 총괄한 가쓰 카이슈(勝海舟, 1823~1899)가 건의해서 문을 연 해군사관 양성소였다. 이때 길러낸 사람 중에 사카모토 료마와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1844~1897)가 있었다. 료마는 메이지유신 직후 암살되지만 무쓰 무네미쓰는 1894년 외무대신이 되어 청일전쟁 지도부에서 핵심으로 역할한다.

일본 해군 함정이 풍도 앞바다에서 청 함정을 기습한 장면과 개선식 그림

이토가 이끌고 온 연합함대 중 제1유격대가 서해안을 타고 올라가다 청의 북양함대에 속한 군함과 조우한다. 청의 군함은 제원호(濟遠號)와 광을호 그리고 조강호였다. 이 함정은 병력을 수송중인 영국 상선 고승호(高陞號)를 호위하기 위해 풍도 앞바다에 머물러 있었다. 일본 제1유격대는 순양함들인 요시노(吉野), 아키쓰시마(秋津洲), 나니와(浪速)로 구성되었다.

■ 선전포고 없는 풍도 앞바다 해전

1894년 7월 25일 아침 요시노함이 풍도 앞바다에 있는 제원호를 향해서 포탄을 발사하였다. 이 포성은 청일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수송선 호위의 임무를 맡은 청의 함정에 포격을 하는 것으로서 전쟁 개시를 알렸다.

일본 군대가 조선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명분으로 출동시키면서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측이 그린 당시 청일전쟁 전황도이다.

일본제국이 시작한 전쟁의 특징은 선전포고 없는 기습이었다. 조선의 왕궁인 경복궁을 공격한 것이나 풍도해전은 물론 러일전쟁시 인천의 러시아함 공격에서 사전 선전포고는 없었다. 미국을 공격한 진주만 공격도 같은 방식이었다. 청의 군함은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기습을 당한 것이다. 왜구가 조선 연안과 중국의 해안가를 기습 공격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풍도전투에서 고승호를 격침시키는 상상도.

일본 해군의 군신으로 추앙된 인물인 도고 헤이하치로는 풍도해전에서 이름을 날린다.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조선의 아산만에서 커다란 일을 벌였던 것이다. 수송선 고승호를 격침한 것이다. 해군 장교는 명예를 중시한다. 흰 바탕에 멋진 해군 장교의 정복은 이런 명예를 상징하는 것인데 도고는 결코 명예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 기록에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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